| 2026-06-02 03:06 | 조회: 28 |

※ 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대표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22. 약속의 쐐기
이제 검은 구름은 사라졌고 조금 전 마지막 빛기둥도 산으로 떨어졌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마법진들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난 뒤, 피난 행렬도 잠시 멈춰 있었다. 루는 제일 먼저 일어서서 마차 안부터 살폈다. 잔뜩 웅크렸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소녀는 마차 밖으로 두 팔을 내밀어 루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누누, 괜찮아?”
“그래, 너는 다친 데는 없느냐?”
“응.”
소녀는 저 멀리 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구름이 사라지고, 별도 달도 다시 보였다.
“누누, 아저씨가…케이브 아저씨가 구름도 만들어? 검은 구름.”
“그, 그래.”
“아저씨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아는 것 같아.”
“어쩌면…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구름이 사라지기 직전 황금빛으로 물들 때였다. 순간이었지만, 소녀의 눈에는 구름이 덮은 영역이 선명히 남았다. 그 검은 구름은 유독 소녀와 루가 있던 마을 끝까지 덮어주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어떤 기억이 섬광처럼 소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소녀는 루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누누…동굴에 가자.”
“뭐?”
소녀의 눈이 다시 그렁해졌다.
“아저씨, 케이브 아저씨는…나 때문에 저기에 있는 거야.”
“그런, 무슨 이유로?”
소녀는 눈을 닦아냈다. 참으려 했지만, 자꾸 눈물이 배어 나왔다.
“내, 내가 지켜달라고…했어. 나무를. 우리가…심은 나무.”
“그렇다고 그가 정말로….”
루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 이유로 카멘이 저 산에 있다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평화로운 나날이, 그들만의 시간이,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위험한 곳으로 소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녀는 울먹이며 고집을 부렸다.
“난 가야 해. 지금 아니면…영영 아저씨를 못 볼 거 같아. 누누. 부탁이야.”
소녀의 그렁한 눈에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
어둠의 창에 청동빛 대포가 완전 박살이 나버렸다. 절벽이 무너져내리고 연기가 산을 덮을 듯 흘러넘쳤다. 일대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세이튼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는 한참을 콜록거리고는 겨우 몸을 추슬렀다.
“뭐야. 루페온의 성물도 별거 없구만.”
세이튼은 먼지를 휘휘 저으며 주위를 살폈다. 약삭빠른 황혼 놈들은 죄다 사라지고, 웬 비실거리는 사제 한 놈만 보였다. 붉은 머리의 사제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왔다.
“어차피 장난감인데요. 뭘. 아니면 상대가 나빴을 수도요. 말했잖아요. 상대는….”
세이튼의 새하얀 눈자위가 더 크게 확장됐다. 붉은 머리의 사제는 어느새 카마인이 되어 있었다.
“…카멘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카마인! 네놈의 짓이렸다.”
“어디서 화풀이인가. 그들에게 루페온의 성물을 빌려달라고 한 건, 너희 그림자들이지 않나? 난 그들에게 빌려주라고 슬쩍 밀어줬을 뿐. 오히려 내게 고마워해야지.”
세이튼이 이를 갈며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그의 뒤로 그림자가 모여들었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남기며 세이튼은 성큼성큼 다가갔다.
카마인은 여유롭게 뒤를 눈짓했다.
“진정해.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니까.”
카마인의 뒤로 모험가가 나타났다. 카마인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포탈을 열었다.
“잠시 계승자와 놀아주라고. 나는 놓칠 수 없는 드라마가 있어서 말이지.”
“뭐라고?”
세이튼의 의문에도 카마인은 웃으며 포탈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입조심 하도록. 노예들.”
“이게 정말!”
세이튼이 지팡이로 내리쳤지만 카마인은 이미 포탈과 함께 사라진 뒤였다. 세이튼은 식식거리며 모험가를 마주했다. 모험가는 약이 바짝 오른 세이튼을 향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제 끝장을 내줄 때였다.
***
루는 달렸다. 소녀를 태우고서.
막무가내로 아저씨에게 가겠다는 소녀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치유 사제의 눈길을 피해 행렬에서 빠져나왔다. 앞길로 가봤자 루테란의 군대가 있었고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것이다. 소녀와 루만이 아는 길로 가야 했다.
소녀의 집 근처, 암벽 사이의 길. 늘 오가던 그곳으로.
소녀의 집으로 가려면 돌아가야 했지만 루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소녀의 집이 무너져있었다. 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 앞에 멈춰 섰다.
“어찌, 이런.”
소녀는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훔쳤다. 소녀는 재촉했다.
“가자, 누누. 아저씨한테.”
둘만의, 아니 셋만의 길. 그들의 운명을 이어준 길.
그 길이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루가 통과하기에는 길이 작아져 있었다. 소녀는 루에게서 내렸다. 소녀가 먼저 암벽 사이로 들어가고 루가 다시 시도해 보았다. 암벽 사이에 끼어 루가 버둥거렸다.
“길이 이렇게 비좁았던가.”
“누누, 네가 너무…커진 거 같아.”
“안 되겠구나. 일단 너 먼저 가거라. 나는 다른 길을 찾아볼 테니.”
암벽 사이의 길로 나아가려다 소녀는 다시 돌아왔다.
소녀는 루를 끌어안으며 콧등에 뺨을 비볐다.
“고마워…누누.”
“그래. 어서 가보거라. 나도 곧 따라가마.”
“응.”
소녀는 암벽 사이의 길로 걸어 나갔다. 루는 잠시 지켜보다 몸을 뒤로 뺐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돌아서려던 루는 괜스레 소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어둠 아래 비틀거리면서도 소녀는 계속 나아갔다. 소녀가 걱정스러웠지만 루는 고개를 흔들고는 달려 나갔다. 어딘가 무너진 암벽으로 넘어갈 만한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동굴의 천장에 또 다른 구멍이 생겼다.
그 아래서, 카멘은 검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갑옷 곳곳에 금이 갔다. 부서진 투구 아래 드러난 턱을 타고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상관은 없었다. 이 모습에 크게 미련을 두진 않았다. 단지 전투에 필요한 껍데기일 뿐이었다. 상처는 금방 아물 것이다. 다만 가슴 아래에 난 구멍이 메꿔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피조차도 없이 휑하게 뚫린 몸속에서 검푸른 혼돈이 소용돌이쳤다.
카멘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가 거하던 바위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나무는 무사했다. 새어든 달빛 아래 나무의 잎사귀마다 여린 빛이 감돌았다. 가디언의 작은 힘과 검은 비가 자아낸 알 수 없는 조화는 어린나무를 순식간에 저리 키워냈다.
태초의 빛이 건네준 선물이자 쐐기.
그것이 왜 족쇄가 된다고 했는지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검에 머리를 기댔다. 투구의 푸른 눈이 감겼다. 소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약속해요. 아저씨가 지켜주는 거….’
이내 카멘은 눈을 부릅뜨며 일어섰다. 그는 제 손을 들어보았다. 깨진 건틀릿 속에서 상흔이 남은 피부가 보였다.
족쇄?
족쇄 따윈 끊어 내면 그만이다.
이건 내 선택이다. 내 의지다.
카마인도, 카제로스도, 그림자들도 아닌, 오직 자신만의 의지.
그때,
“…아…저씨.”
아주 작고 미약한 소리였다.
카멘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소녀는 벽을 짚고 천천히 걸었다. 저 안에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소녀가 돌덩이의 잔해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에 상처가 났다. 소녀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가 조금 더 자세히 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무서운 갑옷의 모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케이…브 아저씨.”
소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저씨가 돌아보는 듯했다. 가면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이젠 무섭지 않았다.
늘 뛰어서 오가던 통로가 오늘은 왜 이리 힘들지.
소녀는 또 발을 헛디뎠다. 앞으로 곤두박질치던 소녀의 몸이 멈췄다. 어느새 바로 앞까지 온 아저씨가 한 손으로 몸을 받쳐주고 있었다. 딱딱한 갑옷의 손이었지만 소녀는 그의 팔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무서운 가면의 아저씨가 있었다.
파리한 소녀의 얼굴 위로 배시시 웃음이 떠올랐다.
“아저씨. 동굴…아저씨, 안녕?”
그렇게 인사하며 소녀가 두 팔을 내밀어왔다.
카멘은 막지 못했다.
소녀가 목을 감싸며 안겨들어도 그는 그대로 두었다.
소녀의 시야에 턱을 타고 흐른 검붉은 피가 보였다.
“아저씨, 다쳤어?”
소녀의 작은 손이 깨진 투구 아래 뺨으로 향했다. 어설픈 손짓으로 검붉은 피를 닦아내었지만, 핏기는 다 가시지 않았다.
“아저씨, 아프지 마.”
소녀는 이제야 그의 가슴에 난 구멍도 보았다. 검게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기운을 보며 소녀의 눈에 걱정과 불안이 맺혔다.
“어, 어떡해…아저씨.”
아저씨는 대답이 없었다. 소녀는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한없이 미약하고 사라져가는 힘에 카멘의 어깨가 내려갔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소녀는 딱딱하고 차가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저씨, 이제…괜찮아. 나무는…지키지 않아도 돼. 아저씨…위험하면…도망가. 나랑 같이…가자.”
소녀의 말이 점점 작아져 갔다.
“난 아저씨가…케이브여도…좋고, 카멘이어도…좋아.”
소녀의 꾹 감은 눈썹 아래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망울진 물방울은 검은 갑옷까지 툭 떨어졌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올랐다.
카멘은 한 손에 잡은 어둠의 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녀의 몸을 두 팔로 감싸 안아 올렸다. 이전 날, 절벽 위에서 소녀를 안아 올렸던 때처럼. 그리고 몸을 돌려 걸었다. 소녀가 좋아하던 공간. 나무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어둑한 동굴이었지만 달빛과 어우러진 나무의 잎사귀가 영롱하게 빛났다. 은은하게 밝혀주는 빛을 보며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나무를 보자 소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새겨졌다.
“…예쁘다. 나무가…빛나.”
소녀는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그렁한 눈을 닦아내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고마워…아저…씨. 나무…지켜줘서.”
그리고 투구 아래 드러난 창백한 뺨, 검붉은 핏자국이 채 지워지지 않은 그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나도…누누도…지켜줘서…고마워. 동굴…아저씨….”
카멘은 방금 소녀의 행동이 무언지 몰랐다. 다만 소녀의 숨결이 점점 작아진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소녀가 눈을 감았다는 것도.
천장의 구멍으로 보이던 달이 조금씩 기울어갔다.
달이 반쯤 가렸을 때, 그는 더 이상 소녀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멘은 그렇게 소녀를 안고 멈춰 있었다.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어둠이 식어갔다.
스며들던 달빛이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달은 저물고 세상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나무의 은은한 빛만이 그들 곁에 머물렀다.
카멘은 자세를 낮춰 소녀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걸음 물러섰다. 깨진 투구 아래, 그의 입에서 작은 숨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바람도 멈춘 듯, 살랑거리는 잎사귀도 멈춰 있었다.
나무의 빛만이 내려와 소녀를 비춰주었다.
나무에 기대어 누운 소녀가,
에보니가 그저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운명이란 비참해.”
카마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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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인을 싫어하진 않지만-(좋아하는 편에 가깝지만)- 엘가시아에서 그 꼴받는 표정은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 사람 빡치게 하는 그 표정.
정재헌 성우님이 정말 밉상 될 뻔한 캐릭터를 살린 1등 공신이란 생각은
5년 전 로아를 처음 시작하고 카마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더랐죠.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https://blog.naver.com/lafa 다 죽은 폐가에서 조금 일찍 보실 수 있습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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