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1. 동굴의 재앙



페트라니아의 무질서한 하늘과 달리 고요한 어둠의 공간이었다.

카마인은 손을 들어보았다. 푸른 피부를 타고 검푸른 피가 흘러내렸다.


“이거…예상 밖이로군.”


그의 당황한 표정은 불편한 기색으로 변해갔다.

발치 앞에 움푹 파인 지면은 대지를 가를 듯 좌우로 뻗어있었다.


“카제로스가 네게 무슨 장난을 친 거지? 카멘.”


그의 질문에 답할 자는 없었다. 떨어진 건틀릿 파편에서 검은 연기만 피어올랐다.

카마인의 손에서 흐르는 검푸른 피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손에 난 상처도 아물어 갔다. 피는 멈췄지만 아문 상처는 기묘하게 일그러져있었다.

마치 균열이 난 것처럼.



한밤 어느 산에 무언가가 혜성처럼 떨어졌다. 

그것은 산을 뚫고 들어갔다. 단 한 번의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산을 넘어, 일대로 번졌다. 나무가 흔들리고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 조용해졌다. 

떨어진 무언가는 어느 동굴에 내려섰다. 동굴 속은 바위 파편이 떨어지고 먼지가 일었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달빛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선 갑옷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는 위를 올려보았다. 그가 보았던 달은 대부분 붉은색이었지만 이 세계의 것은 달랐다.

아크라시아.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차원을 넘어 익숙한 곳에 도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이곳에 붉을 달과 함께 왔었지만 지금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상관없었다.

고요했다.

그는 침묵이 필요했고, 달빛이 들지 않는 어둠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꽂아 세운 검에 머리를 기댔다. 투구에서 흘러나온 푸르스름한 안광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산 아래의 마을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좀처럼 내려오지 않던 위험한 야수들이 마을 주변을 배회했다. 어딘가 숨어 있던 조무래기 악마 몇 놈이 출몰하기도 했다. 악마란 소리에 예민해진 루테란 본성에서는 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기사와 자경단의 활약으로 소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마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이 사건은 본성에 짧게 보고되었다.

깊은 산속 동굴에 머무는 재앙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재앙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얼마 전 막 눈을 뜬 작은 생명체였다.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순백의 털에 염소인지 사슴인지 모호한 형태의 작은 생물이었다. 그것이 동굴을 향해 울어댔다.

“삐이-”

가디언 루.

한때 위대한 가디언의 신, 에버그레이스 옆에서 빛의 가디언을 통솔했던 존재였다. 그 목소리라기엔 너무도 맥이 빠진 소리였다. 동굴의 안팎 경계를 서성이던 루는 다시 목소리를 내보았다.

“메에-엥”

울음소리는 나뭇잎 하나 흔들지 못했다. 그래도 한때는 적이었던 가디언의 소리였건만, 동굴 속 존재는 미동조차 없었다. 입구에서 빛과 어둠의 경계를 오가기 여러 번. 

루는 결국 얼마 없는 영력을 모두 개방했다.


[어째서 그대가 여기에 있는가? 카제로스는 이미 소멸하였다. 떠나라. 얼마나 더 이 아크라시아를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어둠 속의 존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날카로운 검기가 한번 스쳤고 루는 가까스로 피했다. 

검기는 맞은편 암벽까지 갈라내고는 사라졌다. 풀밭에서 뒹굴던 작은 가디언은 버둥거리다 재빨리 일어섰다. 보통 사람의 검기였다면 놀랄 솜씨였을 것이다. 루는 검기가 그답지 않게 절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침묵을 원하고 있다.

루도 자신의 현실을 되새겼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얼마 없는 영력을 저 어둠의 존재에게 경고하기 위해 모두 소진했다. 다른 가디언을 부를 힘도 없었다. 루는 동굴의 속 어둠을 바라보며 철퍼덕 주저앉았다. 어린 생명체의 몸은 저 위험을 감시하기엔 너무나도 약했다. 그렇다고 가디언의 사명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아크라시아의 거대한 위협을 지켜보는 것만이 전부였다.



며칠 동안, 루는 동굴 입구에 드리운 그림자의 경계를 들락날락해보았다. 어둠 속 존재는 별 움직임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얄팍한 운은 오롯이 저 어둠 속 재앙의 기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가늠할 수 없는 운명은 어느 날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인간 소녀 하나가 동굴 앞에 나타났다.


“와, 너 되게 귀엽다. 너처럼 예쁜 아기염소는 처음 봐.”

[염소라니. 나는 가디언이다!]


소녀에겐 메에-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이 꼬리 좀 봐. 염소는 꼬리가 이렇게 길지 않던데. 그럼 사슴인가? 아니, 사슴도 꼬리 짧은데.”

[가디언이라니까. 염소도, 사슴도 아니야. 이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소녀는 루를 쓰다듬으며 동굴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이렇게 큰 동굴이 있는지 몰랐어. 너의 집이니? 여기서 살아?”


루는 소녀를 밀어내었다.

작은 새끼염소의 머리가 소녀를 막지 못했다. 소녀의 호기심은 동굴로 향했다.


“이 안에 너의 엄마도 있어?”


소녀는 동굴 입구 언저리에서 멈췄다.

극명하게 갈린 빛과 어둠의 경계. 동굴의 입구는 거인이라도 드나들 듯 충분히 컸지만, 소녀는 어둠의 경계 안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계세요?”


용기를 낸 물음에 대한 답은 메아리였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동굴 깊숙한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빛이 내부를 비췄지만, 대부분은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저 멀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실루엣도.


“저기…어.”


소녀는 말을 잃고 멈춰 섰다. 실루엣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소녀의 앞을 루가 가로막았다.


[천지 분간 못하는 어린아이일세.]


소녀에겐 새끼염소가 저 어둠 속의 형상을 향해 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대가 나설 이유 따윈 전혀 없어.]


어둠에 익숙해지자 실루엣이 조금 또렷해 보였다.

무언가 굉장한 갑옷의 형상이었다. 소녀는 책에서 보던 베른의 검은 기사 같다고 생각했다. 곧, 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쩍 뒷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여, 염소예요? 너, 너무 예뻐요. 헤…헤.”


답은 없었다. 소녀는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이제 동굴의 경계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실루엣이 천천히 눈을 떴지만, 소녀는 그 눈에서 새어 나오는 안광을 보진 못했다.

소녀가 빛으로 나온 뒤에도 동굴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루도 뒤따라 나왔다. 소녀는 다시 활짝 웃으며 루의 귀 옆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아, 너희 아저씨 기사야? 그거 알아? 우리 아빠도 기사였다. 근데 너희 아저씨는 좀 무서운 사람인 거 같아.”

[내 아저씨가 아니란 말이다! 사람도 아니고.]


가디언의 경고는 귀여운 소리가 되어 소녀에게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일 또 너를 보러올게. 안녕.”

[어딜 온다는 게냐! 와선 안 된다. 저자는 그 누구보다 위험한 악마란 말이다!]


소녀는 돌아서다 메에-거리는 소리에 다시 돌아왔다. 한번 새끼염소를 쓰다듬어 주고는 저 멀리 달려갔다.

루는 풀밭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고한 어린 인간이 위험했다. 동굴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동굴 속의 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였어도, 아니 숨 한 번만 내쉬었어도 충분했다. 자신은 그 어둠에서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아크라시아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시점에 너무 급하게 눈을 뜬 까닭일까?

눈을 떴을 땐, 이미 카제로스는 소멸하였고 에버그레이스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고 어린 몸에 본래의 권능은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았다. 영력을 모아 다른 가디언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얼마 없는 영력을 저 동굴 속 재앙을 향해 경고하기 위해 모두 써버렸으니. 개탄스럽도다.

루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은 여전히 고요했다.

루는 부디 인간 소녀가 이곳을 잊어주길 바랐다.



루의 바람과 달리, 다음날에도 소녀가 왔다.

루는 필사적으로 소녀를 동굴에서 멀어지게 했다. 소녀에겐 그저 새끼염소의 장난일 뿐이었다. 소녀는 동굴만 쳐다보고는 루를 마음껏 쓰다듬고 돌아갔다. 이후로 소녀는 거의 매일 찾아와 놀다 가곤 했다. 가끔 소녀가 동굴 쪽을 쳐다보긴 했지만, 동굴이 내린 그림자의 경계를 넘지는 않았다. 며칠이 반복되자 루의 경계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하루는 소녀가 제 몸통만 한 양배추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소녀는 그것을 루의 앞에 내려놓았다.


“선물!”


루는 큰 눈으로 눈앞에 떨어진 선물과 소녀를 번갈아 보았다. 소녀는 방긋 웃으며 저편의 암벽을 가리켰다.


“어느 날 보니까 저기에 작은 길이 생겼어. 원래 바위산으로 막혀있었는데. 덕분에 너도 만날 수 있었던 거야. 누가 만든 걸까? 원래 여길 오려면 빙 돌아와야 하는데. 아마 저 길이 생기지 않았다면 여기 와보지도 못했을 거야.”


루는 일전에 동굴에서 날아간 검기를 떠올렸다. 가까스로 피했길 망정이지. 그리고 웬 인간 소녀가 찾아왔다. 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불행에 가까웠다. 저 길이 어린 소녀에겐 위험한 통로가 될 터였다.

이를 모르는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 통로를 가리켰다.


“우리 집은 저 너머에 있어. 오늘 보니까 엄마가 심어두었던 양배추가 다 자란 게 있더라. 전쟁 때문에 울타리가 부서져서 못된 짐승들이 망쳐놓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에 큰 짐승들이 안 보이여. 그 덕분에 몇 개는 남아서 이렇게 자랐어. 그중에서 가장 큰 걸 가져온 거야.”

[어허, 고맙구나. 인간의 아이야.]


루는 이파리 하나를 뜯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도 좋았다. 소녀는 루가 먹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너 정말 잘 먹는구나. 괜히 토실토실한 게 아니었네.”

[영력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단다. 내 권능의 회복을 위해서는.]


얼마나 맛있으면 이렇게 메에-울면서 먹을까? 소녀는 활짝 웃으며 새끼염소를 쓰다듬었다.

루가 향긋하고 신선한 채소에 정신이 팔린 사이, 소녀는 동굴 앞에 섰다. 동굴 앞에 드리운 선은 넘지 않은 채,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동굴 아저씨. 오늘은 아기염소를 위해 선물을 들고 왔어요!”


활달한 목소리가 의도치 않게 크게 나갔다.

그 소리에 놀라 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흐-읍.”


소녀도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이미 동굴에 울린 메아리가 검은 실루엣에 닿은 뒤였다.

검에 기대어 있던 투구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


소녀는 동굴 속의 존재가 움직인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루가 급하게 뛰어와 소녀의 치맛자락을 물었다. 새끼염소가 뒤로 이끄는 중에도 소녀는 동굴 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동상이 아니었네. 다행이야.”

[다행이 아니란 말이다! 동상인 편이 훨씬 나았어. 이리도 어리석어서야. 쯧.]


소녀는 계속 메에-우는 새끼 염소의 목을 끌어안아 주었다. 남은 양배추를 들어 새끼 염소에게 내밀었지만, 이 작은 녀석은 멀리 끌어가기에 바빴다. 동굴에선 그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루는 그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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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션 게시판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5년 가까이 게임만 즐기다가, 

반년 전 쯤부터  갑자기 카멘이 좋아짐. 

한참 시즌도 아니고 이미 탈영한지 일년이 넘어가는 캐릭터인데,

날 수포자에 이어 4포자로 만든 캐릭터인데,

왜 카멘에 꽂혀 버렸는지 모를 일이네요.

(뒤늦게 3막 트라이하고 카멘 익스트림까지 하면서 정이 들었던 것 같은 의심.)

3개월에 걸쳐 쓰고 보니 책 한 권 분량. 20회정도 올라갈 것 같습니다. 

제목은 '동굴 아저씨', '완성되지 않은 자.' , '종말의 시' 중에서 고민하다가 '종말의 시'로 잡았습니다. 

*대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