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로스트아크 세계관과 카멘을 바탕으로 한 비공식 2차 창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과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게임 내 1부 시나리오 이후를 바탕으로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 카멘 및 메인 스토리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대표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25. 외전



베른에서 저명한 학자의 특별 강의가 있었다.

여러 학생과 학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작 좋은 자리는 전혀 상관없는 귀부인들의 차지였다. 이는 사일러스 교수의 중후한 매력에 빠진 귀족들의 극성이 한몫한 결과였다.


“…르가드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혼돈의 그림자였습니다. 정확하게는 태초의 어둠이라 할 수 있겠군요.”


강의 내용은 귀부인들을 화마 군단이 아닌 수마 군단으로 잠식했다. 꾸벅꾸벅 조는 귀부인들 뒤에서 에보니가 손을 들었다.


“어둠 군단장과 관련이 있다는 뜻인가요?”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둠 군단장의 기록도 얼마 전 복구된 자료에서 나온 것인데, 아주 열정적인 학생이군요. 여러 악마 군단장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기묘한 건 어둠 군단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이름도 후에 정리 과정에서 복원된 것에 가깝습니다. 우린 가장 경계해야 할 악마의 이름조차 한동안 잊고 지냈죠.”


사일러스는 모범적인 질문을 한 학생에게 옅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여러 자료가 말해주고 있지만 당시의 직접적 기록은 이상하리만치 공백이 많습니다. 혹자는 그가 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다시….”


에보니는 공백이란 단어에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학자들의 호기심만큼이나 그 공백이 궁금했다. 사일러스 교수의 강의는 유익했지만, 에보니의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핵심은 얻지 못했다.




아크의 계승자이자 세상을 구한 영웅, 그 모험가가 혼돈의 위협을 막아내고 아이가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에보니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이제 마을에서도 제법 유명한 치유사가 되었고, 이곳저곳에서 찾는 이들도 많았다. 기사와 사랑에 빠진 베른의 공주님이 없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깨달았지만, 대신 유명 학자의 강의를 듣기 위해 며칠간의 베른 여행을 다녀온 차였다.


에보니는 루테란으로 돌아와 곧바로 배꽃나무 자생지로 향했다. 기운차게 욕설을 내뱉는 스승은 며칠 만에 보는 제자에게 역시나 잔소리를 쏟아냈다.


“아직도 그 무서운 악마에 대해 찾겠다고 난리인 게냐. 악마가 악마지. 그것도 아주 고약한 악마. 그놈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고, 저리 아픈 사람들이 얼만지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냥, 악마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에보니는 잔소리하는 스승을 어르고 달래다 지친 발길을 돌렸다. 베른 여행의 여독이 남아있었기에, 오늘만큼은 스퀘어홀을 타고 이동했다.


에보니는 호수 근처의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동굴과 산이 있었던 자리에 호수가 생겼고, 나름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달빛 아래 은은한 빛을 내는 거대한 흑단나무가 사람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보이는가 보다.


에보니는 그 나무에 케이브란 이름을 붙였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왜 케이브라 했는지 잘 몰랐다. 그냥 그곳에 산이 있었고, 동굴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붙인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 어느새 호수의 흑단나무는 ‘케이브 나무’라 불리게 되었다.




오래전, 세상이 또 한 번 뒤집힐 만큼 난리가 난 뒤였다. 모험가가 혼돈을 몰아냈다는 소문이 돌 때쯤, 공포와 절망을 몰고 왔던 악마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에보니도 동굴 속 어렴풋한 존재가 그 악마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세상은 왜 그 이름을 잊고 있었는가 이해하지 못했다. 에보니도 알 수 없었다. 세상이 말하는 악마가 그녀의 기억과 괴리가 컸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세상은 곧 그 이름을 다시 잊어갔다. 이번에는 망각이 아니었다. 좋지 못한 기억과 상처가 많기에 떠올리지 않는 것일 뿐. 에보니는 그것이 슬프기도 했다.




달이 밝은 날이었다. 그날은 누누가 찾아왔다.

에보니는 집채만큼 자란 누누의 본래 이름이 ‘루’라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구름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누누가 특별한 가디언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도 에보니에게 그는 항상 누누였고, 루도 그 이름을 좋아했다. 에보니는 가끔 찾아오는 누누를 위해 항상 앞마당에 채소를 심었다. 누누는 이전처럼 식탐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에보니가 열심히 준비해둔 것들을 야무지게 먹어 치웠다.


에보니는 2층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루의 콧등을 쓰다듬었다. 에보니가 그날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루는 따뜻한 눈길로 답해주었다.


“세상이 말하는 것도 틀린 게 아니란다. 그는 분명 카멘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 다르잖아.”

“그 또한 카멘이었지. 그래서 어려운 거란다.”


에보니는 턱을 괴며 벽 한 칸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누누와 함께 그려진 엽서만 한 그림 옆에 어릴 적 비뚤배뚤한 추억도 함께 걸려있었다. 색 바랜 그림 속의 얼굴도 기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이렇게 웃지 않았다.


다시 그려보려고도 했지만,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도, 목소리도, 그가 호박색 눈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데.

도무지 다시 그릴 수가 없었다.


“누누, 너는 기억이 나?”


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게도 남은 건 함께했던 시간과 어렴풋한 형상, 그 존재뿐이구나.”


루는 곧 구름을 몰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갔다. 흑단나무 옆에서 호수를 거니는 가디언을 보기 위해 찾아오던 사람들은 한동안 아쉬움을 달래야 할 것이다.


루가 떠나고 에보니는 한숨을 쉬었다. 둥그런 달이 속절없이 밝기만 했다. 에보니는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호수로 향하는 길은 달빛과 케이브 나무의 은은한 빛이 어우러져 그리 어둡지 않았다. 늦은 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을 시간이었다.

에보니가 자기만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


호숫가에서 에보니는 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남은 사람이 있었다.


흑단나무 옆에 후드 망토를 두른 누군가가.

어렴풋한 기억 속, 그리운 모습으로.


에보니는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나무까지 이르는 얕은 호숫가, 발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첨벙첨벙 다가갔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 새하얀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 모습.

그리고 호박색 눈동자.

한때는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었던 무서운 악마.

한때는 안도와 추억을 남겨주었던 그리운 사람.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그 모습인 채로.


에보니는 이제 어릴 적 비뚤배뚤한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검은 눈망울이 젖어갔다. 그리움과 안도를 녹여낸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에보니는 그리움만큼이나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 동굴 아저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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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을 쓰면서 종종 관련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이번엔 오일 파스텔을 많이 쓰게 되네요. 



여태 팠던 다른 작품들은 임산부, 노약자, 다 큰 남자가 보면 안 되는 망측한 망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상하게 카멘은 건전하게 망상이 돌아가더라.

하지만 내면의 썩은 속내가 언제 튀어나올지는 모른다.

‘페트라니아의 불타는 융합’이라던가,

‘혼돈의 야릇한 합체’라던가,

이런 망측한 망상이 솟구치기 전에

스마게가 다른 스토리 떡밥과 함께

카마인과 카멘의 서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풀어주길.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후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log.naver.com/lafa/224310050372 

다 죽어가는 블로그 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