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게임계 종사자가 아닌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누락된 부분이 있거나 사실관계가 잘못 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에 대한 수정/정정/의견이 있으실 경우,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1년, 처음 프로젝트 R1의 발표를 보았을 때 '드디어 다시 할 만한 M(M)ORPG가 나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악튜러스의 팬으로 집에 악튜러스 패키지만 네 장을 가지고 있고, 라그나로크의 오픈 베타 때 부터 함께 해 왔었던 입장에서 김학규 사장의 작품은 내 인생에서 가장 복잡하던 시절 함께 해 왔던 친구였고,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신뢰의 보증 수표와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웃긴 문구긴 하지만 분명 네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게 나였다.

 

하지만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이러한 나의 신뢰를 철저히 배신했다. 그래픽과 BGM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지만, 그 그래픽과 BGM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엉성하고도 엉성한 세계였다. 고급목재로 멋진 통나무집을 원했건만, 내 눈에 보여진 것은 청동기 시대, 간신히 움집에서 벗어난 인류가 만든 정방형 집이라고 해야될까. 그것도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새는.. 그런 집 말이다.

 

물론 믿음이라는 것은 쉽게 사그라 들지 않기 때문에 꽤나 오랜 기간 나는 그 집에서 기거했고, 부족한 나를 믿고 와 주신 분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전력을 다 했다. 하지만 이 집의 관리인은 외형은 커녕, 물이 샌 부분을 막으면 또 다른 구멍이 생겼고, 다시 물이 새더라도 최소 일주일간 방치하였다. 관리인에게 있어 소수 직군의 버그 같은, 사소한 구멍은 집이 지어진 순간부터 외면되었던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하더라도 달라질게 없는 부분이겠다.

 

이 시점에 와서, 나는 이 집을 떠나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물론 '길드의 장' 이라는 입장은 쉽사리 이 게임을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게임에 대한 애정'은 식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게임을 접는 것은 아주 쉽다. 그냥 접속을 안하면 되니까.

 

하지만 '왜 게임을 접는가'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 보고 싶어졌다. 이 글이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IMC게임즈와의 작별, 그리고 존경해 마지 않는 우리 길드원 분들에게 작별의 전조 정도(물론 당장 접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로는 부족함이 없는 글은 될 것 같다.

 

 

능력 이상의 계획을 꿈꿨던 회사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의 초기 이력은 알려진 바가 적다. 애시당초 게임 인물사에 대한 부분은 연구 된 바가 적고, 철저히 본인의 인터뷰 내용에 따라서만 알려지기 때문에 그 내용이 발언 때 마다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빛나는 순간만이 보여지고, 그 내면에 있는 흑역사, 인물들간의 갈등은 '비지니스적 측면'에 의해 무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김학규 사장, 혹은 총괄 디렉터인 김세용 부사장의 이야기는 악튜러스를 전후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악튜러스는 김학규 사장이 처음 주도 해 본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최근 서양 게임들의 오픈월드급의 수준은 아니지만, 못해도 당시 국산 수준 게임 수준에서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 게임이었다. 문제는 김학규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개발력(혹은 개발 규모)이. 악튜러스 구현에 필요한 개발력(개발 규모)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악튜러스는 당대 양대 PC RPG 개발사인 손노리가 참여했고, 자금적으로는 김정률의 투자를 받았고, 일부 3D 동영상쪽은 PC판 열혈강호 등을 제작한 KRC의 3D 개발팀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당시에야 '국산 최초의(혹은 흔치 않은) 협업 사례'로 포장했지만, 생각 해보면 이곳저곳의 힘을 빌려 간신히 완성한 게임이 악튜러스였던 셈이다.

 

이후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손노리+a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GFC엔진을 개량하여 만들다가, 말 그대로 '게임만 만든채' 김정률 사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쫒겨나게 되었는데, 사실상 우리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라그나로크', 특히 운영 관련해서는 김정률 사장 산하에서의 운영이었던 셈이다.

 

그라비티에서 퇴사한 김학규 사장은 이후 IMC게임즈를 만들고 '그라나다 에스파다'를 제작, 서비스 하게 되는데, 이 역시 '한빛소프트'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한빛소프트는 IMC게임즈의 설립 당시 약 50억 상당의 주식지분 구입 및 투자를 하였다. IMC게임즈의 운영권 자체는 60%의 지분을 가진 김학규-김세용 연합 주주(?)에 의해서 유지되었지만 40%의 주식 지분으로 '명목상의 대주주'는 한빛소프트였고, 2005년 빅3 중 하나로, 어느곳을 퍼블리셔로 해도 되었을 법한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현재도 지금도 그저 그런 수준의 한빛소프트를 퍼블리셔로 삼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한빛소프트의 런칭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라나도 에스파다..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런 내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노토리우스 사건'이라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 역사계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가 있음에도 그 이상으로 계획을 짜고, 당연히 부족하게 될 무언가는, 어딘가의 투자과 지원로 해결 해 왔다. 물론 현대 사회의 회사에서 100% 자사제작을 하는 곳도 없고, 같이 악튜러스 개발하던 리즈시절 손노리의 재무재표를 봐도 어디 벤쳐 투자 업체에서 투자한 흔적이 남아 있는게 사실이지만, 제작했던 게임 게임마다 모두 이러한 흔적이 있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리즈시절 손노리도 '게임회사' 로써 투자는 받았지만, 각 게임 타이틀별로 투자를 받거나, 혹은 인력 부족으로 게임 핵심 파트까지 도움을 받았던 것은 그다지 대두되지 않았다.(단, 어스토2나 소울리스 등 타 업체의 투자를 받아 개발을 진행하던 게임은 있음. 다만 손노리 주식회사 당시 강철제국, 악튜러스, 화이트데이 개발시 각각 게임에 대하여 투자 받았다는 내용이 대두되지는 않음.)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제작을 해 왔던 IMC게임즈에서 나온 트리 오브 세이비어 역시 마찬가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개발력 이상의 세계관을 구축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이 보여질 수 밖에 없었고, 오픈 베타 이래 3개월이 넘어가는 이 시점까지, 이 부족한 부분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노토리우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오토 프로그램 사용 등에 관련된 운영자-유저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유저들의 의심 역시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덤이다.

 

이러한 IMC게임즈가 터트린 구체적인 문제들은 아래와 같다.

 

클룡인이 아닌 트룡인의 대두, 테스트 서버의 문제점

 

'별이되어라' 관련 커뮤니티에서 처음 사용(클라우드 길드 + 천룡인)되었으며, 트리 오브 세이비어에 건너오면서는 '클로즈 베타 테스터 유저'와 만화 '원피스'의 특권계층인 천룡인의 합성어로 사용된 '클룡인'은 상당한 파급력을 미치며 뿌리 깊게 정착하였다.

다만 '클룡인' 이라는 단어는 이후에 있을 몇몇 유저들의 정보 과점 및 왜곡된 정보 유포와는 큰 상관이 없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약 3차례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그리고 이후에 클로즈 베타 테스터 유저 중 일부를 대상으로 수 개월 간의 테스트 서버를 오픈하였는데, 길어봐야 10일도 되지 못했던 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동안 유저들을 기만 할 정도의 사냥터/필보 정보 등을 긁어 모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자 역시 3차 CBT 때 하루에 클크딥딥을 키우느라 수 시간씩 했었지만, 결국 5랭을 찍지 못하고 10일을 소진했다. 필자가 3차 CBT 중 알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딥디르비는 키우기 어렵다' 정도였다.

 

현재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필보 독점 및 사냥터 정보 등은 모두 수 개월간의 '테스트 서버'에서 나온 정보들이다. 따라서 '클룡인'이 비록 대중적으로 퍼진 용어이긴 하지만, 적어도 정확한 대상자를 지칭 할 때에는 '클룡인' 이라는 단어는 옳지 않다.

 

물론 '클룡인'이든 '트룡인'이든 현재의 논의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정보 과점이 비판 받아야 할 것인지, 아닌지도 역시 플레이어들의 판단에 걸린 문제다. 이 글에서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IMC이고, 다소 길었던 문장의 서문 역시 IMC를 비판하기 위한 기초 정보의 제공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CBT 게임은, 오픈 이전의 게임 서버를 수 개월에 걸쳐 제공하지 않는다. 업계인도 아닌 필자가 개발사들의 개개별 내부적인 사정까지는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개발중인 게임의 모든 것을 알려주기는 부담스럽다.'는 작은 이유 중 하나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IMC는 오히려 라그나로크의 전례를 들어,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한 테스트 목적'으로 장장 수 개월에 걸친 테스트 서버를 진행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러한 테스트 서버가 진행된다면, 테스트 서버 이외의 유저라면 두 가지의 희망사항을 가질 수 있다. 하나는 테스트 서버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게임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취득하지 않기를, 또 하나는 테스트 서버 기간 중 게임 내 버그를 해결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게임 모니터링을 통해서 직업간 밸런스나 금전적 이익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고, 후자를 위해서는 테스터들의 버그 리포트를 성실히 접수하여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IMC는 둘 다 하지 않았다. 테스트 서버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오픈 베타를, 테스트 서버 유저들은 콘솔 게임의 '2회차'를 즐기듯 빠르게 돌파 해 나갔고, 선의의 테스트 서버 유저들이 제보한 정보(심지어 필자가 3차 CBT때 건의한 딥디르비 관련 버그조차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테스트 서버의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테스트 서버는 차라리 열지 않았어야 했다. 차라리 내부 QA인력을 더 동원하여 내부 테스트를 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코토리우스 사건'과 엉켜버린 스탭

 

그러한 와중에 벌어진 '코토리우스 사건'은 IMC의 스탭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코토리우스 사건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하지는 않겠다.)

 

단순히 보자면 코토리우스 사건은 몇몇 유저가 버그가 있는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 '개인적 일탈'로 간과할 수 있지만, 조금 더 넓게 보면 게임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가 나타났다. '쉽게 200렙 까지 올릴수 있다'는 공언과 달리 퀘스트 렙업의 한계로 5랭에서 6랭으로의 진입 난이도가 매우 높다는 점, 그리고 필드 사냥과 렙업 위주로 설계 하였으나 렙업 구간에 막힌 유저들의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사냥터의 갯수.(당시 마족수용소 2층의 사냥터난을 직접 겪어본 분들이라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6랭의 높은 진입 난이도와, 이 난이도를 한층 더 높여버린 사냥터 필드 부족(+자리싸움 등)이 코토리우스 사건에 더욱 분노한 이유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IMC는 두 가지 정책을 바꾼다. 하나는 경험치 이벤트나 인던 신설/개선 등을 통하여 레벨업 난이도를 낮췄고, 또하나는 필드 지향의 정책에서 인던/미션 지향의 정책으로 바꾼 것이다. 이전까지 50/90/130/175/190/200/217으로, 하위 레벨대에서는 보조 수준에 그쳤던 인던이 세분화 되어 50/90/115/130/145/160/175/190/200/217/240으로, 하위 레벨대까지 15단위로 인던을 '파편화' 한 것이 이 시점이다. (160인던은 존재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으나 경험치 획득량이 미비하고 난이도가 높아서 사람들이 잘 안 돌던 곳이었다가, 이후 경험치 패치가 되었기 때문에 초기 인던으로 포함하지 않습니다.)

 

레벨업의 용이성과 인던의 파편화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았으나, 결국 조삼모사급의 결과를 낳았다. 유저들의 레벨업이 용이 해 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유저들의 컨텐츠 소모가 심해진다는 것이고, 소모하는 컨텐츠 수준으로 컨텐츠를 보충할 수 없다면 결과적으로 유저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결과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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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는 레벨업 난이도 하향과 인던 중심 컨텐츠로 인해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 논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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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임씨는 게임 개발시 스케일을 회사 규모에 맞지 않게 크게 기획하고, 그 결과 부족한 무언가가 나타나는 패턴이 정형화 되었었음.

2. 긴 테스트 서버 기간동안 필보/직업간 수입 등을 조정하지 않았고, 제보한 버그도 안고침.

3. 코토리우스 사건으로 인해 레벨업 난이도를 낮추고 인던 중심의 레벨링 정책을 도입하였으나 조삼모사, 동족방뇨식의 정책이 되어버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