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은 서버를 닫지 않는 한 무한히 열린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의 컨텐츠 개발 속도는 유저들의 컨텐츠 소모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고, 언젠가 게임 내 주어진 모든 컨텐츠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모든 컨텐츠를 사용한 시점과 새로운 컨텐츠가 업데이트 시점 사이의, 기약 없는 지루한 시간(미리 공지를 한다면 기약 있는 시간이 되겠지만, 현 시점에서 트오세에서는 이러한 것을 공지 해 두고 있지는 않다.)이 생기는 것이다. 

 

이럴 때 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유대, 즉 커뮤니티이다. 컨텐츠를 모두 소모 한 시점부터, 플레이어는 게임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즐기기 위해 게임에 접속한다. 게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쌓아가며 게임 에서의 또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필자는 이러한 생각으로 제법 이른 시기에 길드를 세웠다. 1000만 실버라는 당시로서는 고액의 자금, 500만 실버에 이르는 길드 타워 비용, 그리고 '악튜러스' 라는 길드명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7랭을 찍기 전 마지막 몇 일은 PC방에서 보내면서, 마지막 날 PC방을 나설 때 PC방 아르바이트가 멋쩍게 나에게 인사할 정도로 낭비했던 시간들 등.. 많은 것을 희생했다면 희생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두근거림에 의해 뒷순위로 밀렸다.

      

그리고 이틀 뒤, 길드 설립 요건이 완화되면서 트오세는 '대길드시대' 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수 많은 길드들이 등장했다.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길마님들도,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길마님들도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향이 되었든, 이제 이 길드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게임 커뮤니티의 중추가 되어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길드 설립으로부터 50일이 지난 지금, 많은 길드들이 사라졌다. 길드원간의 갈등이라던가 전쟁 등의 요소로 사라진 길드도 있었지만, 한 때 많은 인원들로 북적거렸던 길드들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갔다. 구체적인 길드명을 적시할 수는 없으나, 아우슈리네 서버 초창기에 있었던 길드 중 살아남은 길드가 몇 개 이며, 살아남았더라도 그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길드가 몇 개나 있는가. 하나의 커뮤니티의 이야기가 고작 두 달도 안돼서 끝나버린 것이다.

 

 

앙상한 길드 시스템

 

현재 길드 시스템은 미완성에 가깝다도 아니고, 그냥 미완성이다. 이렇게 잘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보통의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들이 제공되지 않고, 길드 성장의 속도는 매우 더디지만 부담이 심대한데 있다. 현재 일종의 준화폐로 통용되는 탈트만이 성장에 사용 되는 문제점, 느린 길드 성장 속도, 부길마/간부 선임 시스템 미구축, 친추창보다 빈약한 길드 정보창에서의 길드원 조회, 무분별한 길드간 전쟁 등은 약 한 달 전에 필자가 지적 했던 사안이었다 

(관련글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4621&name=nicname&keyword=%ED%94%84%EB%A6%AC%EC%85%80%EB%A1%9C%EB%82%98a&l=1110)

 

물론 위의 문제점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글을 작성한 이래로, 길드 시스템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변화가 없었다. 악튜러스 길드 부길마는 한달전이나 지금이나 회원 가입 권한 없는 '이름만 부길마'이고, 본캐/부캐 접속 여부는 길드창보다 친구창에서 확인하는게 더 정확하다. 길드마스터 이양도 불가능하며, 길드 타워를 통해 입장 가능한 길드 아지트는 딜겔레 농사(최근에는 길드 레이드로 나오는 부산물도 생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바뀐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달라진것을 굳이 꼽자면, 하나는 (지금은 버그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는)길드 이벤트가 생겼다는 것이고, 하나는 한 달동안 사람 몰리는 시간에는 가뭄에 제한급수하는 정도로 열렸던 길드 채팅이 원활해 졌다는 것 정도다.

 

고렙 중심, PVP를 권하는 길드 시스템

 

길드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위처럼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그나마 '길드 단위'로 할 수 있는 컨텐츠들을 보면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개발진이 생각하는 '길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단적으로 한 줄로 요약하면, 이 게임에 순수 친목 길드는 없다. 친목 길드는 개발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 게임에서 순수 친목 길드는, 25+a 정도가 입장 가능한 대형 채팅방의 이름과 같다. 길드 단위의 컨텐츠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길드 레이드와 길드 간 전쟁 뿐이기 때문이다.

 

일예로 최근(이라 해도 몇 주일 전에) 업데이트 된 '길드 레이드'의 보스 레벨은 전원 285이다.(보스 이외의 잡몹은 다소 낮다.) 레벨이 약 20 가량 차이가 나면 데미지가 1밖에 박히지 않는 이 게임의 특성상, 길드 레이드에 주력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길드원은 265 이상이다. 몬스터의 스펙은 그대로 두더라도 레벨만 낮춘다면 많은 인원이 참여 가능할텐데 말이다.

(* 방깎+회피력 감소 같은 꼼수를 쓰면 264 이하의 길드원도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스킬들을 가진 직업들이 상황 좋게 모여 있을 가능성은 낮고, 두 스킬이 중첩되는 시간은 한정되고, 아직 몸빵이나 체력적 요소가 약한 저렙 길드원들이라면 안정적인 데미지 제공이 사실상 어렵다.)

 

거기다가 265 이상 유저들이 모여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수의 길드들은 길드 보스 사냥 및 길드 레이드의 버그로 인해 정상적인 플레이가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버그가 약 한 달 가량 지속되고 있음에도, 아직 개발진에서는 이것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참고자료 : 길드 보스/레이드 관련 문의한 내용의 답변. 참고로 문의로부터 약 1주일이 지나서야 답변이 왔다.)

 

또한, 수 차례에 걸쳐 PVP 지향 길드들이 서버 전체의 길드에 선전포고 했음에도, 개발측에서는 이에 관련한 대응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개발진에서는 한 길드가 (대부분 PVP를 지양하는) 백여개 이상의 서버 길드 전체에 전쟁을 걸고, 길드 타워를 부시고, 인던 입구 근처에서 매복 해 있다가 매칭을 기다리고 있을 때 기습해서 죽이는 현 상황에 대해서 정상이라고, 혹은 비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길드를 만든 목적은 서로 다르고, 친목 길드는 PVP 전문 길드에 친목을 강요하지 않음에도, PVP 전문 길드는 친목 길드에게 전쟁을 강요 할 수 있는 일방적인 시스템을 왜 묵과하는 것인가. ‘길드를 만들었다는 것은 공격을 허락한다는 것이다라는, 다른 게임에서는 망언취급 당할 말이 현실이 된 곳. 이곳이 바로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세계이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에서 원하는 길드는 (필보)고렙 길드, 혹은 PVP길드 뿐이고, 유감스럽게 현재 컨텐츠를 잘 즐기는 길드들도 이들 뿐이다.

 

모여서 할 것이 없는 게임

 

사실 길드 컨텐츠부실하다면 큰 문제는 없다. 의외로, 대부분의 게임들은 길드라는 군집 자체를 위한 컨텐츠보다 길드라는 매개를 통해 모인 다수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의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이러한 컨텐츠, 파티 단위 이상의 다수가 즐길 수 있는컨텐츠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전조가 느껴졌던 것은 인던 플레이 후, 자동적으로 1(그나마도 최근 신설 인던은 30)후에 튕겨져 나가는 것에서 부터였다. 당시 서버가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곤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오락실에서 원코인 클리어를 하고, 순위에 내 이니셜을 새기고 올라오는 엔딩 스크롤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에 휩쌓여 있을 때 주인 아주머니가 앞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있으니까 비켜!’ 하면서 나를 밀치고 전원 리셋하고 다음 친구를 앉히는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서버에 대응되는 비싼 게임기를 몇 대 씩 두어놓기는 어렵고, 사람 기다리고 있는데 엔딩 스크롤을 본다고 계속 앉아 있다면 뒤의 사람들에게는 비매너겠지만. 마비노기나 여타 던전형 게임에서 던전/인던을 모두 클리어 했음에도 모닥불 같은 것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면서 서로 친해졌던 기억을 생각하면 왠지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나 내 예전 친추창의 90%가 인던플레이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친추창의 친구 대부분은 런타임 에러때문에 삭제하긴 했지만.)

* 런타임에러 : 1월말 ~ 2월 중순까지 있었던 버그 중 하나로, 추가한 친구가 많거나 차단 목록이 많을 경우 캐릭터 선택으로 나갈 시 런타임 에러경고문을 띄우고 게임이 완전 종료되었던 버그. 이 때문에 친구나 차단목록을 다이어트 한 유저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줄어들면서 서버에는 여유가 생겼지만 굳이 고칠 필요가 없는 클리어 후 1분 후 나가는것은 유지되었고, 그나마 파티 구성으로 인던/미션을 돌 때에는 대기시간 1분간 최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냈었지만 갓동이 만들어지면서 빨리 나가서 다음 매칭을 해야 하기 때문에사람들과 이야기 할 이유는 더욱 없어졌다. 인던의 경우 대탑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위권 유저들은 직보만 돌며, 미션의 경우는 그 1분조차도 캐선을 하는게 현재의 세태 아닌가. 비슷한 레벨대의 길드원이 많아도 직보 이외에 차마 인던/미션을 같이 가자고 하지 못하는, 그리고 각자가 매칭을 해서야 우연히 만나는게 현재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시스템이다.

 

현재로서는 채팅 이외에, 파티 단위를 초과하여 협동할 수 있는 것은 길드 PVP, 길드 보스(레이드), 필드보스, 그리고 (사람 모이는 것만 본다면)시위 정도 뿐이다. 물론 길드 PVPPVP길드 전용 컨텐츠일 뿐이고, 길드 레이드는 버그 때문에 못 도는 길드들이 많다. 그렇다면 유일한 것은 필드 보스인데, 물론 이것도 참여자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고, 기본적인 보상은 파티 단위. 거기다가 필보에 대한 정보량이 유저/길드에 따라서 천양지차이고, 레벨이 낮은 필보는 순삭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쉽게 죽어버린다. 따라서 보편적인 단체 컨텐츠라 보기는 어렵다. 시위의 경우는 유저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저들의 피 섞인 목소리를 '구경거리 컨텐츠' 정도로 칭하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니 논외로 한다.

 

뭔가 꼬투리를 잡아서 단체 컨텐츠가 있음에도 없다고 우기려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모아서 뭔가 해 보고 싶은 길마의 입장에서 한 번 이거 하게 모여볼까요?’ 라는 유인가 있는 컨텐츠가 현재는 없는 것은 사실이다. 헛탕을 칠 수 있거나, 별 것 아닌 컨텐츠에 길드원을 모으는 것도 몇 번 이상은 어렵고, 컨텐츠를 즐긴다는 명목으로 친목 길드를 24시간 PVP길드나 필보 추적 길드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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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약 한 달 이상 지속되었던 채팅 먹통이라던가, 거래 시스템의 부재(후에는 열악한 거래 시스템), 각 채널당 적은 수용 인원 등 유저와 유저가 만날 수 있는 장이 적은 원인도 커뮤니티를 약화시킨 원인으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다만 해결된 것도 있고, 저것들에 대하여 글을 길게 써 내려갈 자신이 없어 사족 쯤으로 붙여놓고 마무리 합니다.

지금까지 게임의 주요 사건들을 짚어가며 무미건조하게 글을 이어나간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까라는 것을 적기 위함이었습니다. 역사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죠.

다음에는.. 쓸 주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종합편인 제언을 적고 싶지만, 가운데에 버그나 운영진의 대처에 대해서 넘어가고 적고 갈지, 아니면 바로 마지막 글을 쓸지, 아니면 둘 다 합해서 쓸지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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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아닌 3줄 요약

1. 길드 시스템이 매우 빈약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드의 친목기능의 강화보다는, 사실상 고렙만 참여 가능한 길드 보스(레이드), PVP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신경쓰고 있다.

3. 굳이 길드 시스템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할만한 컨텐츠가 없고, 시스템이 점점 시간 단축을 목적으로 향해가면서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