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게임 내에서 명백히 밝혀진 이야기나 정보가 아니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추측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는 대화가 잘 성립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게임 내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알더라도 모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소위 어디까지가 오피셜이고 뇌피셜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잘 하지 않으려는데, 며칠 전 새벽에 같이 스토리 떠드는 사람하고 나눈 대화가 자꾸 기억에 아른거리더라고요. 이걸 정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습니다.



 1. 세상이 윤회한다는 것

 우선 게임 내에서 알려진 정보들을 추려봅시다.
 에다니아에서 세상이 윤회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다른 정보들까지 잘 추려서 종합해보면, 앞으로 다가올 멸망 이후에 다시 창조가 있을 것이고 여태까지 그렇게 반복해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시작과 멸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흑정령과 에다나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흑정령과 공생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에다나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에다나는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두 번째 삶을 살아갑니다.
 다만, 이 두 번째 삶이 첫 번째 삶보다 과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설정이 무척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에다나의 등장이 이미 정해진 사건이 아니고서야 성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더해,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론, 세상은 창조부터 멸망까지 정해진 일이 끊임 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만약 에다나의 환생에 시간을 거스를 힘이 없을 경우) 에다나는 과거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환생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매번 같은 인물과 사건이 발생할 테니, 이전 세상의 에다나가 다음 세상에서 두 번째 삶으로 나타난다면, 그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현재의 인물이 과거에서 환생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이 경우, '에다나의 환생에서 어떻게 두 번째 삶이 첫 번째 삶보다 과거에 있을 수 있는가?' 의문이 해소됩니다.

 또한, 실비아의 목적인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 또한 태초의 어둠, 하둠에 의한 예정된 멸망을 피하고 세상의 윤회라는 굴레를 끊어내는 것이란 유추도 가능해집니다.

 누아르 바탈리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그림자를 베어넘겼다.'는 표현은 좀 애매하긴 한데, 멸망이 어둠으로 빗대어지듯 그 반대되는 창조는 빛으로 빗대어서 표현되거든요? 연관 지어서 생각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2. 흑정령과 검은돌의 기원에 대한 추측
 흑정령, 검은돌 등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추측입니다.
 흑정령과 검은돌의 기원은 모릅니다. 게임 내에서 알 수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신의 파편일 가능성도 생각하는데, 이쪽보다는 다른 쪽이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아예 세상과 신 자체보다 더 넓은 단위의 우주에서의 에너지가 각각 물질과 인격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일단 상술했듯 검은돌과 흑정령의 기원을 유추할 만한 단서는 없거나 엄청 모자라지만, 어쨌든 이렇게 전제하겠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위에서 설명한 세상의 윤회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이 멸망할 차례라는 의미로 수축의 때가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블랙홀의 이미지를 보여줬었거든요? 그래서 세상의 탄생을 빅뱅으로, 세상의 멸망을 블랙홀(또는 빅 크런치)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검은돌과 흑정령의 발상적 기원은 우주를 구성하는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이 수축한다면 모든 것이 서로 끌어당겨 점차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끌어당기는 힘 또한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강하게 압축되어 한 점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 한 점이 에다니아, 또는 에다니아의 흑정령 폭심지이고 그렇기에 세상에 검은돌과 흑정령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검은돌과 흑정령이 점차 쌓이며, 결국에는 수많은 에다나들이 에다니아로 이끌려 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흑정령이나 검은돌, 또는 이 둘의 기원되는 것이 세상과 신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 우주에 그 뿌리를 둔다면, 위에서 세상이 멸망한 뒤 다시 탄생하였을 때 자신의 숙주였던 에다나의 두 번째 삶을 시작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보내는 것보다는 말이 되니까요.

 다만 이러한 추측은 다른 부분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우쥬나 태고의 어둠 같은 각 흑정령의 고유성을 고려하지 않기도 했고, 어둠에 어둠으로 맞선다는 테마와도 과연 어울릴지 모르니까요.

 또, 우리의 흑정령이 강하게 에다니아로 가고자 한 것, 히스트리아의 흑정령들이 에다니아에 적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 갇혀있기를 자처한 것 등에 대해선 설명이 없기도 하죠. 



 3. 양면성

 최근에서야 든 생각인데, 검은사막의 세계관에는 양면성이 자주 보입니다.
 일단 세상부터 우리 세계와 엘비아가 서로 거울처럼 비춰진 이면 세계일 것이라는 복선이 종종 보입니다.
 검은사막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것은 이미 유명하고, 고대인의 유적 등지에서 묘사되는 거꾸로 자라는 나무의 묘사와 세계를 잇는 통로로서 나무가 언급되는 것도 자주 보입니다.
 거꾸로 자라는 나무란 달리 보면 반대쪽 세계에서 자란 나무의 땅속 뿌리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카프라스가 엘비아의 아드위르에서 뿌리를 만지자 세상을 넘어오기도 했고요.

 이러한 양면성은 위에서 말한 세상의 윤회에서도 탄생과 멸망이라는 단계를 통해서도 보이기도 하고, 그를 주도하는 실비아의 나눠진 조각인 태초의 어둠, 하둠과 실비아의 인격에 해당하는 일레즈라로도 보여집니다.

 최근에 출시되었던 세라핌의 배경에서 또한 담고자 했던 엘리언의 힘이 신성력뿐만 아니라 다른 것이 있으며, 이는 배경뿐만 아니라 세라핌의 신성한 맹약과 단연한 과죄라는 기술 구조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어쩌면 에다나라는 존재 또한, 본인 스스로와 흑정령이라는 어둠을 온전한 하나로 유지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양면성을 품음으로써 발현되는 일종의 각성이라는 것이죠.

 이는 고대의 빛의 가르침을 따르고 어둠을 적대하는 여명 기사단의 행보에도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일부는 벨모른의 무덤을 지키다 어둠에 빠져 그림자 기사단으로 전향하였고, 일부는 엘리언교로 개종하여 광명의 형제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명백히 어둠인 크자카를 이용하거나 벨모른을 담을 그릇을 키우고자 하는 등 어둠과도 가까워 보입니다.
 특히 광명의 형제회는 세라핌 개방 의뢰에서 '여명에 복수를!'이라는 구호를 자주 보이는데, 어쩌면 여명 기사단이 고대의 빛의 가르침을 따라왔으나, 그 뒤에 감춰진 이면이 있음을 깨닫고 전향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설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고, 스토리의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양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면서도 거기에 동양적 관점이나 사상이 종종 발견되는 게 검은사막이라, 음양의 조화를 기원으로 어떤 설정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4. 에다니아 우두머리들의 주제

 에다니아의 이야기는 결국 태초의 어둠, 하둠이라는 예정된 멸망에 주인공이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검은사막이라는 이름부터 검은 죽음이라는 하둠의 첫 번째 침공에서부터 시작하였기에, 하둠에 맞서고 저지하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의 끝자락에 도달한 것이겠죠.

 그런데 에다니아의 첫 시작을 조르다인으로 시작했었는데, 이 조르다인이라는 인물은 이야기에서 계속 밀어주고 띄워주고, 주인공과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주면서도 뭔가 의아한 구석이 계속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긴 할 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걸 생각하다보니, 에다니아 외부에서 등장한 다섯 우두머리들 모두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조르다인은 어둠에 잡아먹힌 존재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그를 위해 어둠을 이용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 어둠을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얽메이고 휘둘리게 된 존재죠.

 루살카는 절망에 빠진 존재입니다. 고대 제국 오르제카의 비열한 행위로 인해 제 손으로 제 동족을 석화시켜야만 했고, 이런 세상 따위 차라리 멸망하라며 태초의 어둠과 손을 잡은 존재입니다.

 엔슬라는 체념한 존재죠. 자신이 믿는 신의 진실을 알게 되고 세상의 멸망 또한 이미 예정되었음을 알기에, 엔슬라는 헛된 노력으로 고통받기보다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선택했습니다.

 카르티안은 집착과 열등감에 빠진 존재입니다. 더 많은 지식과 힘을 지닌 카프라스에 대한 열등감에 오로지 힘과 지식만을 추구하였죠. 그 지식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도 오히려 협조하여 권좌에 앉았고 심지어 자기 자식의 육체를 빼앗으려고도 시도했죠.

 카프라스는 실패하고 타협한 존재입니다. 직접 하둠을 막고자 그 수단을 끝없이 찾아왔지만 결국 생명은 존속된다는 하둠의 약속에 타협하고 권좌에 앉았습니다. 다만, 반면교사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크면서도, 과연 카프라스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인가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너는 이러지 말아라.' 정도의 이야기라 봅니다. 멸망을 막고 세상을 구원해야 할 주인공이 가져야 할 자세와 신념을 반면교사들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과연 에다니아 내부로까지 연관되어 이어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상술했듯 주관적인 추측과 해석의 성격이 강한 게시글입니다. 여러 발 쐈으니까 한 발 정도는 맞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이런 생각으로 게임하는 유저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따로 스토리 관련 해서 궁금하신 거 질문해주시면 더 감사함.


 또 다른 스토리 게시글들 링크 : https://www.inven.co.kr/board/black/3583/1974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