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당 등록기 1편 : https://www.inven.co.kr/board/diablo2/5735/653411
*편의상 반말로 씁니다

아직도 눈이 오는 4월의 어느 날, 코로나로 인해 국제선 비행기 운항을 모두 중지시킨다는 뉴스였다. 8월까지 러시아 체류, 6월에 친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남은 기간 다 채우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귀국 가능 여부 또한 불투명해졌다.
비행기 티켓을 검색 해보니 역시 전부 다 취소고 언제 국제선 운항이 재개될지 아무도 몰랐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전세기를 준비중이라고 공지가 떴다.
1차 전세기의 티켓팅은 개시 후 약 2시간만에 매진되었다. 그 상황을 보고나니 유학 계획이고 율이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 돌아 갈 방법이 있는지만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간 머리싸매고 혼자 끙끙거리고 고민하던 차에 2차 전세기 티켓팅 날짜가 공지되었다. 나는 율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고, 율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안된다며 많이 울었다.
우는 율을 애써 무시하고 2차 전세기 티켓팅을 성공했다. 갑자기 이틀 후 러시아 자체를 떠나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출국일이 확정되고 나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 기숙사에 남은 짐을 정리했다. 율은 굳이 따라올 필요가 없었지만 따라왔다. 짐을 정리하고 기숙사 방 열쇠 반납, 어학당 남은 기간 환불 신청까지 끝내고 율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러시아에서는 찾기 힘든 새우를 율네 부모님께서 요리해주셨다.

율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짐 정리를 하고 캐리어를 쌌다. 다음 날이면 출국이고, 율은 내가 거절해도 오늘만은 같이 잘거라며 2층으로 올라와 짐을 싸는 나를 한참 쳐다보며 울었다. 나는 우는 율을 뒤로하고 짐을 꿋꿋하게 쌌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율 옆에 누워 우는 율을 달래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눴다.

새벽 3시정도인가 율이 잠들었다. 잠든 율 옆을 살짝 빠져나와 러시아어로 율과 율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도저히 잠이 안왔다. 심경도 복잡했고, 굉장히 이기적이게도 나는 내가 타고 갈 비행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전세기는 모스크바에서만 떴다. 나는 모스크바와 시차가 약 2시간 차이나는 도시에 있었다. 전세기가 취소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내가 있던 도시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국내선이 취소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항공사 홈페이지에 계속 새로고침하며 취소되는지 지켜보다 해가 떴다.
해가 뜨고 집이 약간 부산스러워지자 나는 얼른 내려가 씻고 남은 짐을 모두 정리해 챙겼다. 율네 가족 모두가 나와 함께 공항으로 갔고, 따뜻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나와 율만 공항으로 들어갔다.
공항엔 아무도 없었다. 국내선 비행기도 없으니 직원들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들만 눈에 띄었고 나는 또 여권 검사를 받으며 전세기를 타러 이동하는 중이니 협조 바란다는 대사관의 공문을 보여주고 무사히 모스크바로 건너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 할 수 있었다.

귀국 후에도 율과 나는 헤어진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핸드폰은 무음으로 변경해 저 멀리 던져놓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친구들도 못만나고 나를 만나줄 시간여유가 있는 친구들도 없었기에 더더욱 신경쓰지 않았다. 율은 계속 연락을 하려 했으나 내가 무시했다. 나에겐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정신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귀국한지 6개월차가 되던 2020년 9월 어느 날, 나는 율에게 내 상태를 솔직히 얘기했다. 율은 많이 지쳐있었다. 연락을 해도 받질 않고 받아도 확인하고 마는 수준이었으니 당연했을것이다. 내가 11살이나 차이나는 친구에게 죄를 지었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내 상태를 얘기하고 내가 상황이 나아질때까지 누군가를 신경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고,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 지도 모른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나의 백수 생활은 꽤 오래 갔다. 작년 11월 겨우 일을 시작했고, 지금 현재는 매우매우매우매우 바빠진 상태다. 가끔 율이 생각나고 소식도 궁금하지만 나는 도저히 율에게 다시 연락 해 볼 용기도 나지 않고, 염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