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시간에 아주 간략하게 수나라가 110만 대군으로 쳐들어왔다가 고구려한테 개망신당하고 토꼈다 내지는

이세민이 군사를 끌고왔다가 안시성에서 패퇴했다! 등등 간략한 역사적 사실만 배우고 넘어가기 일수다 전쟁이란게 무슨 삼국지 게임도아니고 그냥 단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닐진데. 수나라의 통일서부터 시작되어 나당전쟁까지 길고긴 전쟁이 남긴 엄청나게 큰 의의를 되세겨보고자 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라는 말이있죠 이말을 조금 깊게 해설하자면 역사적인 사실을 일으킨 장본인들의 본질적인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정도로 필자 개인적으로 풀이하면서 살고있습니다. 이말을 중국에 대입시키면 중국은 역사적으로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중국이라는 나라의 여러 특징중 매우 커다란 특징은

 

항상 그 시대별로 영토면적이 전세계 탑 3안에항상 놀던 광할한 영토를 가진 나라답지않게 정말 땅욕심 많은나라

내부의 힘이 응집되면 언제나처럼 주변나라를 항상 못살게 구는 특징을 보여주는 나라

그러면서도 항상 한줌도안되는 주변민족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ㅄ같은나라

 

정도로 필자는 압축합니다

 

국공내전이 끝난지 얼마안된상황에서 티벳을 침공한걸 보면..... 참 뭐라설명하기 힘든 가히 히틀러러가 세운 제3제국스러운 나라 인건 분명한 사실같습니다.

 

<중국 나빠요~~~~>

 

티벳은 무너졌지만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있는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그리고 만주에서 엄연히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글을 쓰고있습니다. 이글에서 쓰고자하는 결말이 나와버렸네요 ㅡㅡ 고대 동아시아로 가봅시다

 

중국은 후한멸망직후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나 싶더니 몇대안가 나라가 슬슬 맛이가기 시작(8왕의난)하더니 결국 흉노족에게 수도인 낙양이 털리고 장강이남으로 튀는(정확히표현하면 장강이남에 살아남은 사마씨가 겨우 명맥을이은)상황이발생합니다

5호16국과 남북조시대의 역사는 진짜 복잡합니다. 나라들이 3대 길면 5대쯤가서 폭삭 망해버리는 역사가 반복되는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이때 중국대륙으로 진출했던 민족만 흉노족 선비족 갈족 저족 강족등 다양한나라가 그야말로 중국을 떡주무르듯이 했던 시기입니다.

 

여하튼 이러한 혼란한 정국을 중국통일로이끈 이가 수나라를 세운 수 문제입니다.

<수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통일한 수문제 이때부터 한중간의 길고긴 전쟁의 서막이오른다>

 

통일중국의 등장은 고구려를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5호16국과 남북간의 대립으로 쏠쏠하게 이익을 봤던 고구려로서는 통일된 수나라는 반가운 존재가 아니였고 말그대로 눈앞에닥친 위협으로 다가오기에 이릅니다

장수왕이나 광개토대왕시절도 아니었고 한반도내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위한 전쟁하기도 바쁜판에 요하서쪽의 위협까지 대비를 해야되니 당시 고구려의 수뇌부는 정말 엄청난 짜증이 몰려왔을겁니다.

<이런 젠장!!! 이런상황에서 중국과의 전쟁이라닛!>

 

고구려도 역사적으로 경험이있지요 한창 위촉오가 다투던 삼국시대때 위나라 관구검에게 국내성이 무너졌던 사실을...

(그나마 저런 역사적인 사실에서 교훈을 얻은 고구려였기에 668년까지 끈덕지게 고구려가 버텨낸것입니다 역사적인 교훈을 잊지않은 나라이기에....)

고구려의왕 영양왕은 수나라가 요서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에따라 거란과 말갈의 동요를 막고자 과감히 선제공격을 감행합니다. 요하를 건너 요서지역을 먼저 치고들어간것이지요

이에 수양제가 즉각응전하려 출전하였으나 수나라의 빈틈을 노린 돌궐이 도리어 수나라를 공격하는등 서전의 양상을 띤 수나라 고구려의 전쟁은 고구려가 실리를 얻은채 고구려의 승리로 끝납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제꼇다라는 강한 의심을 받고있는 수나라 양견이 황제에 즉위하며 다시금 고구려와 수나라는 지리한 공방전을 이어갑니다. 수양견이 고구려를 직접 침공하거나 침공시도를 한 사례를 간략하게 표시하자면

 

1차시도=100만이넘는 대병력동원 그유명한 살수대첩으로 끝남

2차시도 =30만명 으로 고구려침공 요동성공격 요동성 견딤 원정군 군량수송책임자 양현감 반란일으키고 요동성 공격책임자 곡사정이 고구려로 투항 수양제 물러감

3차시도=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정준비감행함 요동까지 어찌어찌 꾸역꾸역 기어갔으나 공격시기 사기등등 최악의상황 고구려가 투항한 곡사정을 돌려보네 별 실익없이 물러감

 

수나라는 그결과 각지의 반란이 일어나고 수양제는 멘붕에 빠짐 결국 부하들의 손에의해 죽음

수나라는 쳐망함

 

이건 너무나 유명한사실이고 다아는 내용이죠?

 

<대운하를 건설하는 이X박 스러운 토목공사에 이어 3차에걸친 고구려원정 실패로 나라를 말아먹은 수양제>

 

수나라에이어 등장한 당나라...사실 수나라의 전쟁으로 국토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고구려는 당나라와 전쟁을 하고싶지도않았고 도 수나라를 승계한 당나라도 국내사정을 수습하느라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평화가 지속된가운데 고구려내부에서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내리고 보장왕을 옹립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나라도 내부사정이 안정되고 어느정도 힘이모이자 다시금 고구려를 압박해 들어갑니다. 우리가 역사에서배운건 안시성싸움 뿐인데...평양이 함락되기까지 당나라도 무진 애를 써가며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성군으로 추앙받고있으나 살아생전 고구려를 무너뜨리는데는 실패한 이세민>

 

이세민은 생전에 수양제와 똑같이 고구려를 무너뜨릴려고 많은 계획을 세우고 또 실행에 옮겼습니다만 역시 실패합니다

고구려가 요동 곳곳에 세워둔 여러 산성들을 하나하나 점령해가면서 안정적으로 요동을 확보한 이후에 고구려를 멸망시켜야한다는 기본적인 틀은 맞는 것이었으나 적의성을 공성하여 빼앗는게 말처럼 쉬운게 아닙니다 ㅡㅡ 어찌어찌 들이밀어 안시성앞까지갔다가 거기서 막혀 결국 땅뙤기하나 빼앗지 못하고 철군한 것이지요

이세민은 그렇게 고구려를 점령하지 못하고 죽게되나 결국 수나라부터 이어져온 고구려정복사업은 그아들대에가서 이루어지게됩니다.

국사시간에는 잘 알려주지않은 2차고당전.... 이게 661년경에 벌어졌는데 당시 국제상황이 또 바뀝니다.

첫번째 백제의 멸망

두번째 요서의 거란족이 고구려에서 당나라쪽으로 붙음.....

 

이거두개가 고구려로서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수없는 일입니다. 요서의 거란족은 고구려가 고대로부터 어루고 달래면서 자국내 세력으로 편입시켜놨는데 수나라때부터 끈덕지게 거란을 구애한 중국쪽에 결국 거란이 붙어버린것입니다. 외교적인 노력으로 거란을 붙잡았던 고구려가 명망 몇년전에는 거란을 포기하고 직접 공격하기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역사에 있어서 항상 중요변수로 등장했던 거란족>

 

그와중에 백제의 멸망......

고구려는 사면초가의 빠지고 당나라로서는 고구려 공략에 엄청난 포석을 깔아둔셈이 됩니다.

이세민이죽고 뒤를이은 당고종은 661년에 전격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해 들어갑니다

항상 고구려를 칠때와 똑같이 수륙으로 동시에 쳐들어갔는데 당고종은 좀 영리했습니다.

요동은 어차피 고구려의 방어막에 지나지않을터 역으로 요동은 그냥 묶어두고 평양을 직접타격하여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작전으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럴수럴수 이럴수가.... 당나라 북방의 철륵(돌궐계통의 민족)족이 당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수당 전쟁에서 항상 고구려의 편을 들었던 혹은 고구려의 승리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던 돌궐 보통 흉노의 아족으로 보는데 이들이바로 오늘날 터키라고 불리우는 나라사람들의 직계조상으로 보고있습니다 터키가 우리나라 좋아하는데는 다 저런이유가있는 것입니다.

<다 이유가 있는거임.......>

어찌되었거나 철륵의 침입으로 요동방면의 군사가 빠지고 여유가생긴 고구려군은 즉시 요동의 군사를 돌려 평양으로 집결 평양성을 급습한 당나라군을 패퇴시킵니다.

<뭐대략 이랬다능>

 

이때까지 연개소문이 살아있었을 때였고

고구려는 진정 넘사벽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들때쯤 연개소문의 후계자자리를 놓고 고구려 조정에 내분이 생기고 연개소문의 아들내미가 당나라로 투항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고구려조정의 내분조짐이 보이자 당나라는 다시한번 침공

수십년씩 버티던고구려를 잠식해들어가 결국 평양성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수나라 100만대군앞에서도 무너지지않았던 고구려는 내분이라는 상황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당나라는 염원의 고구려정벌을 성공하게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중국놈들 특유의 욕심이 나오는데 평양성에 안동도호부 사비성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며 그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한와중에도 기어코 땅뙤기욕심을 부리는 추태를 부립니다. 여기다 슬쩍 경주에 계림도독부까지 설치하려하자 당나라 쌀셔틀을 하던 신라도 결국 들고일어나게됩니다.

고구려를 공략하는데 요긴하게 쓰였던 신라를 이젠 삶아먹겠다는 에휴 이욕심쟁이 넘들.....

전쟁은 신라가 옛백제땅의 웅진도독부가있는 사비성을 공략함으로서 시작됩니다. 신라가 다른건 몰라도 고구려못지않게 외교능력은 정말 탁월한 나라인건 맞는거같습니다. 나당전쟁의 압권은 고구려부흥군을 후방에서 지원을 해줬다는 점이지요 이로서 안동도호부를 견제하고 또 그유명한 싸움인 매소성전투에서 당의 20만대군을 격퇴시킵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칠때와 똑같은 수륙양동작전을 감행햇는데 수군은 기벌포에서 역시 치열한 접전(22차례 전투를 벌였다는 말이있던데 ㅡㅡ)끝에 패퇴시키고 한반도(정확히 대동강 이남)에서 중국세력을 완전 몰아내는데 성공하게됩니다.

<사냥개를 삶아먹으려다가 사냥개에게 역관광당한 당나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후 요동에서도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건국됨에따라 당나라는 요동에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고구려가 그렇게 끝난줄알았지? 고구려 시즌2인 발해의 시작이다 ㅋㅋㅋㅋㅋㅋ>

 

매소성전투이후 중국은 한반도를 점령하기위해 군사를 보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끽해야 원말기의 홍건적 정도? 그이후 임진왜란과 6.25가 있습니다만 열거한 3개는 약탈과 구원요청에따른 원병파견이였지 점령군은 아니였지요

사실상 중국 한족과 우리와의 전쟁은 필자 개인적으로 발해의 건국으로 종결이 됬다고 보여집니다.

 

전쟁의 결말은 이렇게 난거죠

중국이 한반도를 점령하는건 불가능하다......

 

아시겠습니까? 다아는 역사적인 사실을 이렇게 길게 나열한 이유는 저 지리한 중국과의 전쟁이 그냥 단순한 승리로 끝난게 아닙니다 중국내부에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건 다아는 사실이지요? 사실 고대로올라가보면 더많고 다양한 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있었습니다. 그걸 한족들이 하나하나 점령하고 복속시키면서 점차 거대한 나라를 이루게 된것입니다 중국한족에 의해 말살당하거나 문화가 아예 없어진 경우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 진행중인것이 바로 티벳의 경우구요 우리는 중국의 저런 짓거리를 고대에 다 막아놓은 것입니다.

중국이 한반도로 들어가려면 최소한 쟈들도 전부 죽을각오를 하고 와야한다는 사실을 이미 고대시대때 중국에게 가르쳐준것입니다.

 

 

이글은 삼국시대때부터 썻는데 사실 중국과의 악연은 고조선까지 올라가야합니다. 고조선은 바로 그유명한 한무제가 멸망시킨건 다아는 사실이죠?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식 한자이름을 사용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보여진다능>

 

고조선멸망이 기원전 108년 발해건국이 698년이니 뭐 거의 천년이 조금 안되는 세월을  창칼을 겨누고 싸운것입니다. 중국문명이랑 이렇게 긴세월을 싸운나라는 손에 꼽겠지요? ^^

 

지금 중국이 뭐 G2네 뭐내하며 뽐내며 외부로 확장하고있을때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해야할 필요는 분명 있을것 같습니다. 국공내전 끝나고 국내수습을 하기도전에 티벳을 공격한 정말 탐욕스러운 나라입니다.

 

정리

중국은 땅덩어리가 죠낸 큰나라임에도 땅욕심많은나라임.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되고 고구려를 찍접거림

당나라 고종때가서야 겨우 고구려멸망

신라까지 냠냠하려고 전쟁일으켰으나 역관광당함

겨우빼앗은 고구려땅도 40년만에 발해한테 다시내어줌

이후 중국은 한반도에 점령을 목적으로 군사를 안보냄

 

 

중국과의 수백년 전쟁으로 우리는 이땅에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문화를 영위하면서 사는 몇안되는 중국 인근나라가 됨.

바로 제가 역사에서 찾은 수당 전쟁의 의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