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이라해도 될정도로 상당한 훈남의 포스를 자랑하시는 이분은.....

아는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김홍일 장군님 이십니다.

 

과거 우스갯소리로 윤봉길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뭐 우리 할아버지가 만들었네 어쩌네 하던 농담이

유행아닌 유행을 한적이 있었는데.... 위 사진의 주인공인 김홍일 장군이 윤봉길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직접 제조관여 및 전달까지 한 바로 그주인공이십니다.

 

<지팡이를 짚고있는 이가 바로 일본의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 윤봉길의사의 의거에 의해 한쪽다리가 날라갔다 사진은 일본이 항복문서를 조인한 미주리호에서>

 

김홍일 장군의 독립투쟁사는 눈부십니다.

육군강무학교를 거쳐 중국군 장교로 임관

상해독립군 군비단에 투신

대한의용군 군사의원회 조직

이봉창 윤봉길 의사들에게 폭탄제공

임시정부 광복군 참모장 취임

등등.... 간단하게만 적은 사항이 저정도 입니다.

 

<대만총통 장개석과 김홍일 장군의 사진 ㅎㄷㄷ>

 

이분의 독립운동을 이야기하고자 한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전쟁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초반의 사항은 대략적으로 다 알고 계실터.....

일본군에서(그것도 야전경험도없는)복무한 경력이있는 채병덕(이라 쓰고 돼지라읽어주세연)이라는 사람이 당시

우리육군을 지휘하는 육참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이 양반 개전보고를받고(그것도 술쳐묵한상태에서) 후방사단들을

닥치는대로 징발하여 전방으로 보냅니다..... 결과는? 철저히준비해서 결사전을 벌여도 될까말까한 사항에서 그나마 있는 전력들이 초반에 말그대로 녹아없어집니다

<이 걸 그냥 확~>

 

더골때리는건 아군의 전력을 채병덕 지가 다 한강이북으로 올려놓고 한강다리를 폭파시켜버린 미친짓을 하게됩니다

(아군의 퇴로를 스스로 끊고 덤으로 죄없는 민간인까지 희생시킨.....)

이를 빌미로 채병덕은 스스로 물러나게 되고....

 

국군은 전략의 부제 전력의미달 지휘부의 무능이 겹쳐 초반에 지리멸렬을 금치못하게 됩니다. 헌데 이때 두둥하고 나타난 그분이

바로 김홍일 장군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전방에서 퇴각해오는 군인들을 수습하여 재편성하고 (혼성수도사단, 혼성2사단, 혼성7사단 등) 3개사단을 수습하였으나(말이 3개사단이지 다합쳐봤자 1개사단전력도 안나오는 상황)에서 안양천에서 광진교 까지 24Km 지점을

일주일 동안이나 방어를 하셨습니다 이른바 시흥지구 전투지요 이전투가 왜중요하냐면 당시 미군이 이전투를 참관 본국에 역전의실마리가 있음을 보고하게되고 미군이 한반도로 증원군을 증파하게되는 계기를 마련한 분입니다.

(물론 춘천방면에서 6사단에 막힌 인민군의 삽질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서두) 

 

이후 1951년에예편(51년이면 한창 전쟁중인데 이승만 이노인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봅니다 실전경험 풍부한 야전군 사령관을 전쟁중에 예편을 하도록 냅두다니) 주로 자유중국(대만)대사로 가면서 외교관으로 활약 귀국이후에는 박정희의 독재가 잘못됬다 비판하며 야당의원으로서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무려 신민당 당수까지 되심)등을 역임하시다 198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전쟁초기 우리국군에는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은 고급장교와 장성들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어서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시켜야할 채돼지 같은 분을 육참에 앉히는 바람에......

 

각설하고 우리가 한국전쟁을 배울때 주로배운것은 기습남침 낙동강 공방전 인천상륙 1.4후퇴등이였습니다. 그사이에 숨겨진 저런 분들의 활약을 왜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때려잡자 빨갱이 무찌르자 공산당 입으로만 외친 사람들은 전쟁당시 지리멸렬하기 급급하였으며 오히려 일본군 때려잡던 독립투사 분들이 진짜 필요할때 때려 잡아야할 공산당까지 잘때려잡아 그나마 우리가 이땅에 이만큼이나마 번영을 누릴수 있었던것입니다

<당신의 꼬봉들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이땅에 기생하여 나라의 피를 빨아 쳐묵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