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개의 불빛


마족과의 공명 전쟁이 시작되기 삼십 분 전.


단장은 레기온 지휘실 중앙에 떠 있는 푸른 수정구를 바라봤다.


한때 그 수정구에는 열 개의 빛무리가 떠올랐다.


각 빛무리는 하나의 포스였다.


한 포스에는 네 개의 파티가 있었고,

한 파티에는 네 명의 전사가 있었다.


열여섯 명이 하나의 전열을 이루고,

그런 포스가 열 개나 모이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휘실은 발 디딜 틈 없이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먼저 포스를 짜자고 재촉했고,

누군가는 치유사가 부족하다며 아는 이를 불러오겠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전사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어느 전선으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그때의 단장은 병력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를 어디에 더 보낼지,

어느 전선에 더 강한 포스를 세울지 고민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밤,

수정구 안에 떠 있는 빛은 네 개뿐이었다.


그마저도 과거의 포스처럼 선명한 빛이 아니었다.


빛은 작고 흐렸다.


한때 열여섯 명의 전사가 한 덩어리로 모여

전장을 밀어내던 포스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나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각각의 빛은 아직 포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도 온전한 포스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빠진 자리가 너무 많았다.


누군가는 전쟁을 떠났고,

누군가는 더 이상 수정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아직 이 땅에 있으면서도

레기온의 전장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단장은 손을 뻗어 수정구 표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중앙 이티팩트로 갈 포스는… 없나.”


말은 천천히 흘러나왔지만,

지휘실 안은 오래도록 조용했다.


중앙 이티팩트는

공명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피로 물드는 곳이었다.


그 거대한 유물은 주신의 권능을 머금고 있었다.


천족이 그것을 오래 공략할수록,

주신은 전사들의 소지품 속에 작은 축복을 하나씩 내려 주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 전장에 섰다.


이티팩트의 표면에 검을 꽂고,

균열을 넓히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 시간만큼 축복은 쌓였다.


하지만 이티팩트를 공격한다고 해서

누구나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이 밀려오면 공격은 멈췄다.


유물을 두드리던 전사들은 무기를 돌려

적을 막아야 했고,

방어선이 무너지면 이티팩트는 순식간에

마족의 손으로 넘어갔다.


결국 이티팩트를 공략하려면,

누군가는 마족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는 아티팩트 진입로 입구를 지켜야 했고,

누군가는 마족의 정찰대를 끊어야 했으며,

누군가는 다른 이들이 유물을 공격하는 동안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족을 막는 동안에는

이티팩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주신의 축복은 유물을 공격하는 자들의 주머니에 쌓였고,

방어선에 선 자들은 피와 수리비,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의 허탈함만 챙길 때도 있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만 수정구 속 네 개의 불빛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티팩트를 치고 싶은 자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티팩트를 칠 수 있도록

앞을 막아 줄 사람은, 늘 부족했다.


단장은 그 침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쟁은 모두의 것이었지만,

보상은 각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주신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토록 비합리적인 보상 구조를

이들에게 남겨 두었는지,

단장은 알 도리가 없었다.


유물을 오래 두드린 자에게는 축복이 쌓이고,

그 유물을 두드릴 수 있도록

마족을 막아 낸 자에게는

전쟁이 끝난 뒤의 피로와

닳아 버린 장비만 남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앞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비어 갔다.


단장도 알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레기온의 단원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중앙 이티팩트가 아닌

마족의 진입로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마족을 막아 내지 못하면

이티팩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전사들이 유물에 검을 꽂아도,

마족의 칼날이 등을 향해 밀려오는 순간

공략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장은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손해를 감수하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축복을 포기하고 진입로로 가라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이 유물을 공략하는 동안

마족의 칼날을 막아 달라고.


누군가에게는

전쟁이 끝난 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켜 달라고 명령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단장이 내리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결국 단원들의 손해 위에 세워지는 명령이었다.


단장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피를 흘리며 길을 지키는 동안,

그 뒤에서는 다른 전사들이

각자의 축복을 위해 이티팩트만을 공략할 것이다.


주신의 은총은

마족의 칼날을 막아 낸 자들의 손이 아니라,

유물의 균열을 오래 두드린 자들의 소지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단장은 그것을 알면서도

병력을 보내야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진입로를 맡기고,

그가 얻지 못할 보상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야 했다.


그것은 지휘가 아니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티팩트만을 공략하려는 이들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주신이 정해 둔 방식 안에서

자신의 몫을 얻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단장은 그들에게

진입로를 지키는 자들과 동등한 축복을 줄 수 없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주신의 보상 구조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모든 선택이 쌓인 끝에,

언제나 누군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로 보내져야 했다.


수정구 속 불빛 하나가 작게 흔들렸다.


“단장.”


낮고 잠긴 목소리였다.


“제가 중앙으로 가겠습니다.”


단장은 그 빛을 오래 바라봤다.


그 포스는 원래 다른 전선을 맡아야 했다.


마족의 정찰대가 가장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길목.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성채 외곽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자리였다.


“그쪽은 누가 맡지.”


잠시 뒤,

수정구 속 빛이 더 희미하게 흔들렸다.


“어차피… 그쪽도 사람이 부족합니다.”


단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네 개의 빛 중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곳에는 반드시 빈자리가 생긴다.


한때는 열 개의 포스가

각자의 전선을 지키고도 남았다.


중앙 이티팩트에는 두 포스를 세우고,

성문과 진입로에는 또 다른 포스를 배치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빠져도 자리는 채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어디를 지킬지보다,

어디를 포기해야 할지 먼저 고민해야 했다.


단장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정구 속 네 개의 불빛을 다시 바라봤다.


한때는 열 개의 포스가

거대한 별자리처럼 수정구를 가득 채웠다.


지금은 네 개.


그마저도 바람 한 번에 꺼질 듯한,

힘없이 떨리는 불빛뿐이었다.


단장은 수정구 위에 손을 얹었다.


“중앙으로 갈 포스를 만든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진입로를 맡을 사람도 필요하다.”


지휘실 안의 불빛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단장은 그 불빛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중앙을 공략하는 자들은 축복을 얻을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번에는 어느 누구도 놓치지 못할 만큼 또렷했다.


“하지만 진입로를 지키는 자들은

그 축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지휘실은 더 조용해졌다.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 한다.”


단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가장 잔인한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눈을 돌렸고,

누군가는 수정구 속 자신의 빛을 가만히 바라봤다.


단장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지금

단원들에게 희생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었다.


희생을 명령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축복보다

다른 이들이 축복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지키러 가야 했다.


누군가는 보상을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마족의 칼날 앞에 서야 했다.


그리고 단장은,

그들을 그 자리로 보내는 사람이었다.


단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푸른 수정구 너머에는

닿을 수 없는 하늘이 있었다.


그 하늘 위에서 이 모든 전쟁을 내려다보고 있을

주신에게, 단장은 속으로 물었다.


왜 이런 세계를 남겨 두었습니까.


왜 함께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

정작 함께 싸우는 자가 가장 먼저 손해를 보게 하셨습니까.


왜 누군가는 모두를 위해 길을 열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축복을 가져가야 합니까.


왜 전사들이 서로의 등을 지켜야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서로의 몫을 먼저 헤아리게 만드는 보상을 남기셨습니까.


왜 하나가 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고,

그 누구도 쉽게 하나가 될 수 없게 하셨습니까.


왜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명령해야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세계를 만드셨습니까.


주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정구 속 네 개의 불빛만이

차가운 밤하늘 아래에서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