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번역(현지화)은 일반 텍스트나 영상 번역의 독자나 시청자와는 다르게, 게임 플레이어의 이해와 플레이를 돕기 위해 이루어지는 특수한 작업입니다. 

판타지나 SF 등 고유의 설정과 세계관에 어울려야 하며, 유저의 게임 내 반복적인 행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월 번역 및 창작이 자유로운 편인데, 그러면서도 게임 내 툴팁 창 크기 때문에 글자 수 제한이라는 독특한 배경 하에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이런 인식 하에, 디아블로2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있거나, 각종 모바일 게임과 MMORPG를 통해 익숙한 한국 내 일반적인 RPG 게임 유저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번 레저렉션의 번역의 아쉬운 점에 대해 각 영역 별로 예를 들어 한 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1. 퀘스트 & 지역명

액트1 퀘스트 제목 : "작업 도구" 

이전 레거시에서는 이 제목이 '찰시의 연장'이었는데 일종의 초월 번역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작업 도구'라는 제목 자체가 퀘스트의 느낌과 제목에 다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영문 제목은 Tools of the Trade로, 찰시에게 호라드림 망치를 가져다주면 보상으로 캐릭터 아이템을 마력 주입(임뷰)해주는 일종의 give and take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거래의 도구', 의역하면 '찰시의 거래', '대장장이의 교환' 쯤 될 수 있겠지요.

어쨌든 퀘스트 제목이 가지는 상징성과 고유 느낌에 어울리지 않게 왜 '작업 도구'라고 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그리고 퀘스트 설명에서는 

'Beware of the Smith that guards it'

'망치를 지키고 있는 대장장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라고 번역을 했더군요.

이것도 아쉬움이 다분히 남습니다.


여기에서 the Smith, 원작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the 지칭 대명사가 붙어있고, Smith의 S에 대문자 처리가 되어 있으면, 고유 캐릭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게임 번역을 할 때, 특히 몬스터의 경우 이름과는 별개로 원화 이미지나 캐릭터 모델링을 보고 창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외모만 보면 정말 흉악하게 생긴 유니크 몬스터인데, 실제 수도원 병영에 가보면 그냥 '대장장이'라고 번역되어 있더군요.

조금 초월 번역하자면 '악마 대장장이', 또는 기존 와우 번역 팀이라면 '뿔 망치잡이' 쯤으로 잘 번역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참고로 아래 링크는 arreat summit에 있는 보스 몬스터 설명입니다.

http://classic.battle.net/diablo2exp/monsters/act1-smith.shtml



그리고 지역명의 경우, Dark Wood의 '어둠숲'은 와우 스타일로 번역이 잘 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Cold Plains 추운 평야', 'Forgotten Tower 잊힌 탑'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보통 지역명에서는 형용사 수식어를 쓰면 뭐랄까 명사형의 결합에 비해 고유성과 '멋들어진 맛'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여기까지는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것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캐릭터 속성, 몬스터 이름과 아이템, 스킬 이름과 설명은 문제가 되는 것들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2. 몬스터 이름

어둠숲(다크우드)에 가서 '떡대'를 보고 조금 웃겼습니다.

영문판에서는 Brute인데, 이름처럼 육중하고 포악한 털복숭이 몬스터입니다.

와우에서는 세계관과 게임 내 분위기 상 이런 다소 '웃긴' 번역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디아블로2의 경우 특유의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몬스터 이름을 보고 실소를 자아낸다면, 다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느낌의 번역 자체가 상당히 난이도가 있긴 하지만, 몬스터 원화 이미지나 모델링을 보고 '털복숭이 야수'로 번역하거나, 만약 '와우 스타일로 한다면 '털 숭숭이' 쯤으로 번역할 수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챔피언 몬스터와 유니크 몬스터의 이름도 영문과는 달리 한국어의 특성 상 수식어 남발과 직관적이지 않은 이름 등 문제가 있는 것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3. 캐릭터 속성

'Attack Rating 명중률' (레거시에서는 공격 등급)

일반적인 RPG 게임에서 명중 비율로 표시되는 그것인데, 디아블로 2에서 Attack Rating은 비율이 아니고 고정 수치, 즉 캐릭터의 명중도나 정확도에 가까우며, 상대의 방어와 블럭을 함께 계산해서 이른바 명중률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꽤 문제가 됩니다.

이 속성이 스킬 설명에 들어가면 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예를 들어 야만용사 스킬 Bash (강격)의 스킬 설명에 명중률 25% 상승이라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와 명중률이 25%나 올라가면 거의 다 맞겠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캐릭터의 현재 'Attack Rating 명중도'를 25% 올려줄 뿐이라서, 실제 동레벨 몬스터와 전투할 때 명중률은 글쎄 5~10% 정도나 상승할까요? 


3. 스킬 이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와우의 Fireball 화염구 번역은 이전까지 음역으로만 번역하던 것을 지양하고 업계의 관행을 바꾼, 세련되고 잘 번역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야만용사만 플레이했지만, 야만용사 스킬인 포효(Howl)와 외침(Shout)은 그냥 스킬명만 들어서는 이 둘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스킬명은 스킬 설명과 실제 효과에 좀더 부합하는 것이 좋고, 고레벨 스킬일수록 좀더 강력한 느낌의 이름으로 작명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좀더 개선된 번역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중 투척(Double Throw)의 스킬 설명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습니다.

'Allow you to throw two different throwing weapons at the same time'

'서로 다른 투척 무기 2개를 동시에 투척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봐서는 투척 무기 2개를 양손에 각각 '다른 종류'로 장착해야 던질 수 있구나라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여기에서 different는 '다르다'라는 의미보다는 '별도, 각각'의 의미에 좀더 가깝습니다. 

'장착한 투척 무기 2개를 각각 던질 수 있습니다'라고 번역하는 게 좀더 직관적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Battle Orders 전투 지시, Battle Command 전투 명령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Order와 Command는 공통적으로 명령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Orders와 비교할 때 Command는 지휘와 통솔의 느낌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Battle Orders 전투 명령, Battle Command 전투 지휘 처럼 바뀌는 것이 좀더 타당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3. 아이템 이름

팔라딘 'Scepter 홀'이 드랍되었을 때, 나름 제대로 번역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게임이 진행될수록 이해가 잘 안되는 아이템들이 계속 보이더군요.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디아블로 2의 번역 작업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아이템 이름입니다.

이것은 특히나 접미사와 접두사라는 디아블로2의 고유 특성때문에 특히 매직 아이템의 경우 아래처럼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Silver Double Axe of Strength

현재 번역>> 힘의 은의 양날 도끼


Bronze Double Axe of Readiness

현재 번역>> 준비성의 청동의 양날 도끼


'의'를 중복으로 쓰고 싶지 않아도 이건 언어의 특성 상 정말 해결이 어렵습니다. 

차라리 '힘 + 은의 양날 도끼' 이런 식으로 기호로 대체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위 특성 때문에 디아블로2 아이템 이름의 경우 이름을 길게 표시할 수 없습니다. 접미사와 접두사가 붙어서 이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게임 도중에 '전면 투구'가 드랍되자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생각했습니다. 
좀더 직관적으로 '얼굴 전면 투구 Full Helm'로 번역했다면 바로 이해가 되겠지만, 글자 수 제한의 고통이 있었거니라고 이해하겠습니다.


또한 '투모', '군모', '단지팡이' '흉곽 판갑' 등 완역의 기준이 있는 이상, 다소 직관성은 떨어지더라도 한자어를 많이 사용해 짤막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던 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허용된 최대 글자 수 이내에서 좀더 이해가 쉽고 직관적인 번역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게임 내 투구의 한 종류인 '투모'를 들으면 대부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겁니다. 다만, 한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으음, 전투 모자 쯤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이 '투모'의 경우 영어 원문이 'Skull Cap'으로 뼈(장식) 모자에 가까우니 투모라는 용어 자체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모호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샛볓 곤봉 Morning Star, 넓적검 Broad Sword, 신월도 Scimitar, 연방패 Kite Shield 등 일반적인 RPG 유저에게는 음역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오히려 완역을 해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거나 이해도를 과할 정도로 떨어뜨리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반대로 Katar 카타르처럼 음역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보이는데, 번역 기준의 통일성도 필요해 보입니다.

감별의 두루마리 Identify scroll의 경우 레거시에서는 아이템 식별 스크롤, 그리고 다른 게임 곳곳에서 확인 스크롤, 감정 스크롤 등으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 있는데, 굳이 '감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적용하는 점에서, 레거시를 무조건 탈피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느껴집니다.


4. 소모품 이름

'Jewel 보석'은 대체어를 찾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게임 내에서 또다른 아이템인 'Gem 보석'과 구별이 안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번역이 필요해 보입니다.

'회복약 (Rejuvenation Potion)'은 치유 물약과 구별하고 게임 이해를 돕기 위해 '즉시 회복약'으로 변경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룬의 경우, 'Eth 에드 --> 에쓰, Ith 아이드 --> 이쓰' 등으로 굳이 변경해야 했을까? 영어 발음 표기에 대한 블리자드 코리아의 원칙이라기 보다는 집착으로 느껴지는 건 오해일까요?



>> 결론 <<

디아블로2 리저렉션의 경우 현지화의 난이도가 상당하지만, 다른 퀘스트 중심 게임에 비해 번역 Source 자체가 많지는 않습니다. 

갑론을박이 많은데 완역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출시 발표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의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게다가 디아블로3 처럼 새로운 게임이 아니라 예전 게임의 리마스터라면 굳이 원치않는 오해와 불만을 만들어내고, 게다가 오랫동안 익숙해진 유저들에게 새로운 이해와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현지화의 목표가 플레이어의 이해를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 말이죠.



어쨌든 난이도가 높은 현지화를 이루어낸 점에서는 동일 업계 종사자로서 박수를 쳐드립니다.

실현 가능성은 낮긴 한데, 블리자드 코리아에서 이전 레거시의 음역 스타일(심각한 오역만 수정)도 플레이 옵션으로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걸 고려해주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