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리그 오브 레전드, 어색하지만 가능한 비교

축구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교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봤을때는 어려운 일이다. 경기에 참가하는 인원부터 11명과 5명으로 다르며, 축구는 상대 골대에 골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승리하지만 롤은 상대방의 넥서스를 먼저 깨는 게임이다. 이외에 설명하기도 입 아플 정도로 많은 규칙과 요소들이 둘의 비교를 불가능 한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와 롤의 프로레벨 경기들을 살펴보면, 두 종목을 관통하고 있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전술이다. 많은 것들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두 게임의 승패는 전술의 차이에서 갈리며, 그런 전술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감독들과 선수들은 끊임없이 전술을 연구하고 개발해낸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축구와 달리, 탄생된지 몇년되지 않은 롤판에서의 전술의 진화는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는 아주 간단하게나마 축구에서 통용되는 전술의 개념을 흔히 우리가 목격해 왔던 최강자들을 통해 롤판에 비교, 접목해보자 한다.


압박의 탄생 – 삼성 화이트의 탈수기 운영

시즌 3에서 시즌 4로 넘어가던 2013년, 매 시즌마다 혁신적인 변화를 꿰해오던 라이엇 게임즈가 전체 게임의 판도를 바꿀만한 몇가지 작은 변화들을 발표한다. 바로 시야감지 아이템인 오라클의 삭제와, 한 소환사마다 설치할 수 있는 와드의 갯수를 제한, 핑크 와드의 위치가 상대팀에게도 노출이였다. 시즌 3 말 시야싸움의 중요성을 깨달은 팀들이 보여준 엄청난 와드싸움과 이로 인해 시야장악의 임무가 써포터에게만 과중되는 현상을 보이자,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새로운 시야싸움을 유도했고, 새로운 시야싸움에 맞춰 제한되고 더 발각되기 쉬워진 와드를 적재적소에 배치시키는 효율성이 요구되었다. 시즌 4의 롤드컵 챔피언이자 두말할것 없는 최강 팀이였던 삼성 화이트는 그 효율성을 찾아냈고, 적절한 와드배치와 시야장악을 통해 선구자가 되었다.

삼성화이트를 대표하던 단어가 하나 있다. ‘탈수기’, 혹은 ‘탈수기 운영’. 이는 삼성 화이트의 일반적인 승리공식 - 댄디/마타를 통한 초반 주도권의 확보이후, 순차적으로 상대방의 진영을 잠식하여 서서히 말려죽여 나가는 모습이 마치 탈수기가 옷의 물을 짜듯 기계적으로 말려죽이는것에 유래된 말이였다. 간단하게 돌이켜보면, 시야를 장악하려고 어떻게든 나가는데 마타의 쓰레쉬나 댄디의 렝가가 한명씩 너무 완벽하게 상대방을 짤라내면서 상대방은 한타 다운 한타도 해보지 못하고 말려나가는 모습이였다.



[상대 정글에 와드를 다 박아놓고 탈수기를 돌리고 있는 화이트의 모습]

이것을 축구에 비유하자면, 압박축구의 발견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압박 축구에도 여러가지 모습이 있지만, 일반적인 이해는 수비라인을 높이 올려 상대방의 골문의 가까운쪽에서부터 적절한 위치에 선수들을 배치, 공간을 좁게 만들어 압박, 빠르게 주도권을 뺏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잘 통한다면 상대방은 자신의 진형에서 제대로 볼 한번 이동시키지 못하고 허둥지둥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앞서 말한 롤에서 5대5한타도 제대로 못하는 팀과 흡사하다. 삼성의 “와드 라인”은 적의 정글까지 진출할정도로 깊숙했고, 무한하지 않은 와드배치를 적재적소에 하면서 그 공간을 좁혀내 '소환사의 협곡' 에서의 압박 전술을 완성시킨 것이다.

삼성화이트의 독주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뒷받침됐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롤이라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많은 팀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마치 80년대말-90년대초에 아리고 사키 전 AC밀란 감독이 정립했던 압박축구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축구 지도자들의 교본이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SKT T1의 승리 알고리즘 – 스위칭과 탈압박

2015년 롤드컵 당시, SKT의 강력함을 단적으로 표현한 짤방이 커뮤니티에 돌았었다. “SKT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알고리즘이 바로 그것인데, “페이커가 잘컸는가”, “마린이 잘컸는가”, “뱅이 잘컸는가”같은 단순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단 한번이라도 그렇다가 나오면 상대팀은 지게 된다는 유머 아닌 유머가 그것이였다.



그림에서 얘기하듯, 시즌 5 SKT의 강력함은 모든 라이너들이 언제든지 캐리를 할수 있는 잠재력에 시작된다. 진짜 문제는 과연 경기마다 그 선수들중 누구의 캐리력을, 어떻게 발휘시키느냐의 문제이다. 페이커가 캐리하고, 마린이 캐리하는 경기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단순히 경기전 셋의 컨디션을 확인해보고, 컨디션이 제일 좋은 선수에게 몰아주기라도 하는것일까? 가위바위보라도 하는것일까?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축구에서의 스위칭 전술을 이야기 하고 싶다. 스위칭이란 선수들의 활동량과 체력을 바탕으로 서로의 포지션을 경기내내 주고받으면서 볼을 경기장의 여러군데로 돌리는 매우 활동적인 전술인데,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대표적으로 2000년대 후반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 있을때 퍼거슨감독이 테베즈(긱스)-루니-호날두-박지성과 함께 맨유의 황금기시절 스위칭을 즐겨 쓴것으로 알려져 있다.

맨유급 역습.gif | 인스티즈
[엄밀히 따지면 스위칭의 장면은 아니지만, 유기적인 역습을 보여주는 맨유의 대표적인 플레이]

스위칭의 핵심은, 한사람에게 집중될수있는 압박이나 마킹을 벗어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누가 되었든 대체하여 임무를 수행하여 수비를 교란케함에 있다. 흔히 “페이커의 팀”으로 알려진 SKT는 많은 경기에서 미드를 집중 견제하는 상대방을 만났고, 그럴때마다 정글러 벵기는 라인을 탑이나 바텀(주로 마린이 있는 탑)위주로 풀어주며 힘을 실어준다. 페이커는 상대방의 압박에 의해 행동이 제한될지 언정, 그 압박으로 인해 만들어진 공간을 마린이나 뱅이 메꿔주는 것이다.

이러한 스위칭을 이루기 위해서 SKT 에게 필요했던 것은 소환사의 협곡 맵 전체를 넓게 볼수있는 넓은 시야와, 상대방의 공간, 즉 약점이 생겼을때 그것을 빠르게 파고드는 민첩성과 결단력이 요구된다. 시즌 5 SKT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기시작하고 30분쯤 5천골드가량 뒤졌던 오리젠과의 롤드컵 4강 1차전이다. 열세속에 어찌저찌 바론을 챙겨서 역전의 실마리를 잡은 T1. 그리고 오리젠은 바론을 이용한 T1의 파워플레이를 막기 위해 여러곳으로 퍼져 라인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용이라도 챙기려는 모습을 취한다. 하지만 SKT가 그것을 저지한 이후 순간적으로 상대가 분산된것을 확인하자, 스플릿을 하고 있던 양 날개를 중앙으로 불러 너무나도 쉽게 2차타워를 깨부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5천골드의 리드가 단 4분만에 뒤바뀌는, 보면서도 어떻게 역전이 된지 모르는 스무스한 역전이 이루어졌다.


[오리젠과 SKT의 경기. 5천골드를 순식간에 역전시켜버린 SKT]



또 다른 하나는 KOO 타이거즈(현 락스 타이거즈) 결승전에서 나왔던 말도 안되는 한점돌파였는데, 1-3-1로 파고드는 쿠의 강력한 압박에서 공간을 찾아 상대방의 억제기 까지 파괴시키는 모습이였다.


[SKT 뭐하는 팀이에요 진짜!]

위기에서 기회를 도모하는 모습과 캐리력의 분배에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는 축구에서의 스위칭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 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축구에서의 스위칭의 목적 중 하나는 상대방의 압박을 벗겨내는, 소위 말하는 “탈 압박”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클템해설이 영상에서도 말한 원래의 정답은 “131 스플릿(압박)을 참아내면서 후반을 도모” 하는 것이지만, SKT는 압박에 눌리지 않고 뚫어내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축구에서 득점루트가 다양해지듯, 캐리를 하는 선수가 경기마다 바뀌는 롤에서의 스위칭의 발견은 단순히 “누가 캐리하느냐”를 넘어 불리할때도 그 불리함을 이겨내는(그리고 공간을 찾아내는) 넓은 시야와 판단력을 가져다 준 것이다.


락스의 티키타카, LCK를 흔들다

시즌 6의 스프링에 들어서자 LCK의 원탑이 어느새 바뀌어 있는 모습이다. 작년 번번히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락스 타이거즈가 명실상부 1라운드의 최강자로 발돋움 한 것이다. 락스의 강점은 어디서 찾아볼수 있을까? 압박의 삼성화이트, 스위칭과 탈압박으로 이해되는 T1처럼, 나는 락스 타이거즈의 모습 또한 축구와의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잘 볼수 있던 티키타카이다.


[좁은 공간에 기계처럼 연계되는 숏패스의 향연]

티키타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팀원들간의 좁은 공간을 통한 숏패스와 그것을 이용한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쥐고 상대방을 흔드는, 극도의 팀워크와 테크닉이 요구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한 전술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롤에 접목시키기 위해 티키타카에 주목해야 할 핵심은 “팀워크”와 “선수들간의 좁은 공간”이다. 락스 타이거즈는 역대 어떤 팀과 견주어 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짜임새있는 팀워크와 훌륭하게 융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팀워크가 가장 잘 도드라진 부분은 다름아닌 한타와 다이브에서의 모습인데, 그들은 이미 지난시즌 GE시절부터 한타만큼은 신기하게 잘해서 한타로 역전을 이루어내는 모습도 몇번 보여준 바 있다.

락스 역시 스스로의 강점을 인지하고 있다는듯, 이번 시즌의 밴픽의 핵심은 “한타를 원하는 때 열수있는” 조합, 혹은 "다이브에 용이한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중이 늘어난 쿠로의 트위스티드 페이트, 로밍이 뛰어난 스멥의 퀸, 그리고 심지어 피넛의 녹턴같은 깜짝카드들의 핵심은 빠른 기동력이나 글로벌 궁극기를 통해 상대방과의 간격을 좁혀 연계가 뛰어난 한타를 지향한다. 공간과 속도에 구애 받지 않고, 팀워크와 한타력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고릴라의 알리스타를 중심으로 한 타워다이브에서의 어그로 핑퐁을 즐겨한다는 점인데, 서로 어그로를 맞고 빼면서 cc연계를 넣는 모습이 이런 티키타카와 닮아보이기도 하다.

Kuro의 트위스티드 페이트 사용율
2015 썸머 : 7.1% (3/42회)
2015 롤드컵 : 0% (0/17회)
2016 스프링 : 24% (4/17회) – 모스트픽

16 스프링 시즌 LCK, 퀸의 선수별 사용 빈도
총 11회 사용
픽 1위. Smeb (4회)
2위. Duke (2회)
3위. Faker, Sasin, Soul, Trace, Ssumday (1회)


티키타카 vs 안티풋볼, 다가오는 1라운드 최강자전

눈치가 정말 빠른 사람이라면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축구와의 접목을 통해 롤판을 바라본다면 오늘 있을 진에어와 락스 타이거즈의 경기는 매우 흥미로운 경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락스가 티키타카같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숨막히는 숏패싱의 정점에 서있는 팀이라면, 진에어야 말로 그 티키타카를 막은 적이 있던 안티풋볼과도 같은 늪 축구, 늪롤의 선두주자이기 때문이다. 진에어는 아무리 유리하더라도 공격의 라인을 높이지 않고 꾸준히 오브젝트만 챙겨서 바론, 혹은 5용을 바탕으로 천천히 마무리하는것으로 잘 알려진 팀이다. 유리함을 한타나 타워다이브를 통한 적극적인 모습은 그닥 찾아보기 힘들다.

LCK 스프링, 평균 경기시간
1위. 진에어 그린윙스 : 43.2분
리그 평균 : 38.4분
꼴찌. 락스 타이거즈 : 32.6분

소위 축구에서 ‘안티풋볼’ 로 알려진 텐백, 혹은 시간끌기와 진에어의 승리철학의 공통점은 ‘시간은 우리의 편’이라는 것이다. 안티 풋볼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친것으로 유명한 인테르나 첼시의 챔스 준결승 경기를 보면, 두 번 모두 인테르/첼시가 골득실상황에서 바르셀로나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큰 공격이 없이 수비만 해낸다면 승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진에어가 작년 시즌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탑/미드의 라인전이 상향되면서 초반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그 유리함은 통상적으로 안티 풋볼과 같은 느리지만 안정된 모습으로 귀결된다. 만약에 진에어가 오늘 락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유리함을 가져온다면, 그것을 조심스럽지만 느린 걸음으로 스노우볼을 굴리려할꺼고, 이는 뭐든지 한타로 분위기를 타결하려는 락스의 성향상 치열하게 받아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진화하는 전술, 롤챔스의 수준은 오늘도 높아진다


두가지 이야기만 더 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첫째는 앞서 말한 축구에서의 전술 – 압박/스위칭/티키타카라는, 독존하는 체재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상생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완성된 티키타카를 만들기 위해선 수비력과 압박능력이 필수이며, 스위칭 역시 선수들의 뛰어난 체력과 판단력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 비교분석과 글의 구성과 재미를 위해서 롤과 축구의 많은 부분을 단순화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읽으신 분들의 오해가 없으셨기를 바란다.

다른 하나는, 시대의 변화로 살펴본 롤 판에서 전술들의 진화 과정이, 공교롭게도 언급된 전술들이 축구에서 진화해온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90년대 축구의 메타가 되버린 압박과, 2000년대의 스위칭, 그리고 티키타카와 탈압박의 발견은 모두 상대적으로 주류가 되어있던 당시의 전술들을 진화시키고 발전시킨 결과물이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시즌 3의 SKT, 시즌 4의 삼성, 그리고 시즌 5의 SKT를 비교하며 누가 더 뛰어난 팀이였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분명한 사실은 경기의 수준 자체는 시즌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코치/선수들의 거듭되는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결과물이며, 한국의 롤챔스가 전세계에서 최고의 리그로 유지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뿌리이기도 하다.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롤챔스의 경기력과 전술을 만들어내는 그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이 그런 롤챔스를 사랑해주는 많은 팬들에게도 재밌게 읽고 많은 부분을 생각할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