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때 분석글을 쓰던 엘로이드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네요.
하지만 이 글은 분석글이 아닙니다.
일종의... 수필이 될지도 모르는 칼럼입니다.

이전까지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으로 저도 글을 열심히 썼었고, 심지어 모 아마추어 팀의 코치 제의를 받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만큼 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롤을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어쩌면 고별글이 될지도 모르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그냥 귀찮았으면 이런 글도 쓰지 않고 조용히 잠적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씁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아, 저는 롤의 운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헬퍼 논란, 다인큐 논란, 유저와의 의사소통 단절 등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순수하게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 입장에서, 게임 자체에 대한 얘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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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라이엇의 밸러스 패치와 업데이트 행보에 대해서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꾸준히 느껴오고 있는 실망감이었지만, 특히 이번 라이즈 리메이크를 보고 심각한 수준으로 학을 떼고, 어렵게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원래 도슬람이었습니다. 07년부터 도타를 시작했었네요. 시간이 지나 11년 말, 아리 패치와 함께 한국에 롤이 들어올 때 친구들의 권유로 롤을 시작했고, 특유의 가벼운 게임성과 직관성이 맘에 들어 본격적으로 롤을 열심히 하며 어느새 롤독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도슬람의 본능이 남아있어 꾸준히 도타 패치노트와 업데이트, 대회는 챙겨봤고, 도타도 중간중간 꾸준히 플레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게임의 흐름과 메타를 비교하게되고, 패치 컨셉, 영웅/챔프 디자인 컨셉을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 과정에서 각 게임의 철학을 비교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롤은 지금 도타가 했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스스로 게임을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롤

  롤은 본래 도타의 어려운 점이나 짜증났던 점들을 많이 손봐서 라이트하게 나온 게임입니다. 실제로 도타 개발에 관여했던 제작자들이 라이엇사에 입사하며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고, 본인들이 만든 도타가 너무 어려운 게임인 것 같아 쉬운 게임을 만들고자 했지요. 롤 제작 당시에 나왔던 여러 인터뷰나 기사들, 보도 자료들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습니다.

  도타는 스킬들이 너무 세요! 사거리도 너무 길어서 종종은 내가 뭐에 당해서 죽은건지, 왜 죽은건지도 모르겠어요!
   --> 전체적으로 스킬 데미지를 낮추고 사거리도 낮춰 순식간에 챔프가 터지는 것을 방지 

  도타는 점멸단검이 있고 없고가 너무 차이가 크고, 거리도 너무 길어서 변수가 많아요! 
   --> 소환사 주문이라는 특이한 개념을 도입, 점멸을 부여, 비싼 아이템을 사지 않고서도 누구나 (짧지만) 점멸을 사용 가능

  도타는 마나가 너무 부족해요! 라인에서 스킬을 빵빵 쓰면서 싸우고 싶어요!
   --> 챔프들 마나통 자체를 크게 설정하고 마나 소모도 적게 설정, 또한 (지금은 없어졌지만)마나 포션의 효율을 매우 높게 설정

  이렇게 도타와 비교한 롤의 특징은 직관성과 가벼움이었습니다. 

  스킬도 비교적 직관적인 스킬들이 많았고, 위에 써놨듯이 데미지도 비교적 약했기 때문에 의문사가 적었습니다. 죽는 과정에서 본인이 어떤 콤보에 어떻게 당해서 죽었는지 거의 음미하면서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고, 동시에 그런 콤보들을 배우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템도 복잡한 아이템은 적었고, 액티브 아이템이나 소모 아이템도 도타와는 비교하여 훨씬 적었습니다. 저는 액티브 아이템이 적었다는 점을 강조를 하고 싶네요. 

  하지만 최근 스킬이나 아이템 설명은 거의 대학교 교과서 수준의 설명이 필요할정도로 복잡합니다.

  일단 스킬

어... 뭐라구요?


어...음... 그래서 뭐라구요? 그리고 거의 다 액티브 아이템들이네? 야! 게임 쉽다며!!!

  네, 롤이라는 게임은 점점 매니악해지고 어려워져가고만 있습니다. 

  정확히 도타가 밟았던 전선입니다. 도타는 최근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힘스탯 비례 체력, 지능스탯 비례 마나도 깔끔하게 10으로 떨어지도록 개편하는 등등, 점점 쉬운 방향으로 업데이트를 진행중입니다.

  게임이 쉬우면 접근성이 쉬워집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점은 도타와 비교해 롤의 크나큰 장점이었습니다. 제가 도타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친구들이, 도타는 너무 어렵다고 손사레를 치던 친구들이, 롤은 쉽다며 금방금방 배워나갔습니다. 그러면서 플레이 인구수 자체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대세 게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새로 롤을 배우는 사람들이 과연 이 게임이 쉽다고 느낄까요?
  
  도타가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높은 진입장벽이었습니다. 도타 유저들의 자숙과 반성의 결과 얻어낸 결론입니다. 게임은 어렵고, 뉴비배척은 심하고, 양학이 횡행하고, 너무 어려워서 배우고자 누구한테 물어보면 "어, 원래 어려운 게임이야. 그런데 하다보면 재밌음ㅇㅇ." 이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
  왠지 익숙한 광경인데요?

 
2. 망해버린 밸런스

  사실 이 밸런스 문제는 라이엇의 수익구조까지 파고 들어가야하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닥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점이 있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이엇의 주 수입은 챔프와 스킨입니다. 사람들이 챔프를 사고, 그 챔프의 스킨을 사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꾸준히 챔프를 찍어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어느새 챔프가 131개가 되었더군요.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 챔프를 찍어내야만 하고, 그럴수록 밸런스는 더더욱 우주로 가게 됩니다. 기존에 나왔던 챔프들이나 한번 눈밖에 난 챔프들은 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릭이 있겠네요.

  제가 최근에 분석글을 쓰기 위해서 롤챔스 픽풀을 살펴보다가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건 스프링 시즌 분석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느꼈던 감정이긴 합니다. 저 131개의 챔프중에서 '풀리그'의 밴픽에 등장하는 챔프가 30%정도 밖에 안됩니다. 40개 남짓. 그나마 변수를 만들어주는 것은 미드에서 특이한 챔프를 쓰는 SKT의 Faker 선수나 KT의 Fly 선수, 그리고 ROX의 Kuro 선수 정도입니다. 탑과 정글은 정말로 챔프 폭이 4개 또는 5개 뿐입니다. 맨날 보던 밴픽과 맨날 보던 챔프가 나와서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경기를 합니다. 결국 저는 분석글 쓰는 것을 포기할까 깊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도타의 Manila Major 라는 2번째로 큰 규모의 대회에서는 예선까지 합해서 111개의 영웅 중에 밴픽창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영웅은 단 다섯개입니다. 직후에 열린 ESL ONE Frankfurt에서는 하나 더 줄어서 4개가 되었습니다.)

  또한, 롤의 패치 방향은 항상 '변수를 줄인다.' 라는 기조를 지켜왔습니다. 버프보다 너프가 더 많은 패치노트가 명확한 예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식이죠.

  텔포로 인한 변수가 게임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 텔포 너프 --> 게임이 느려짐

  라이엇은 변수로 인해 게임이 뒤틀리거나 역전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심지어 이것을 '불공정한 플레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까지 칼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챔프가 조금만 강하면 철저한 칼질로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는 모습 자주 보셨을겁니다. 이것에 대해서 해외에 게임 뉴스 만평을 그리는 nerfnow 라는 사이트에서 이런 그림을 그린 적 있습니다.


블쟈: 이번엔 너가 OP할 차례!           도타: 너도 나도 다 같이 OP가 되자!          라이엇: 치킨게임 가자

  뭐가 맞다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라이엇의 방식은 흥미를 떨어뜨리긴 합니다. 스킬들은 점점 약해지고, 갑자기 영웅이 터지는 장면은 점점 적어집니다. 갑자기 영웅이 터지는 것은 '불공정'하니까요. 즉, 변수는 줄어갑니다. 그러다보니 탑에는 무조건 탱커가 가는 현상이 나오고, 미드에서도 암살자는 멸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수가 적다보니 스노우 볼링이 너무 크게 굴러가게 되고, 게임은 점점 안전위주, 오브젝트 위주, 라인전 위주로만 흐르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바로 지금 롤챔스가 '노잼스'라고 불리게 된 원인이지요. 

  물론 라이엇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에 다시 '변수'를 불어넣기 위해서 5종류의 용이 랜덤으로 등장한다던지, 게임 후반 부활 시간을 줄인다던지 여러 업데이트를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메타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도타랑 비교를 해볼까요? 도타는 원래부터 변수 창출을 좋아했습니다. 위의 만화에도 나오지만, OP를 너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웅들도 OP로 만들어서 언제든지 상대와 맞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고, 따라서 역전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더 많은 교전을 일으키기 위해서 텔포 주문서 가격을 75골드에서 50골드로 낮추어 돈을 못 버는 서포터들도 언제든지 교전에 합류하도록 패치를 했습니다. 또한 스킬의 데미지와 '사거리'를 늘려주는 아이템을 추가한다든지, 원거리 영웅들의 평타 '사거리'를 늘려주는 아이템을 추가해서 점점 더 미친듯이 싸우는 난전메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맵을 크게 쓰는 운영형 영웅 뿐만 아니라 교전에서 힘을 발휘하는 영웅들이나 암살자도 언제든지 등장 가능한 카드가 되어서 밸런스가 맞춰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는 맛'도 늘어나서 경기 내내 지겨운 경우 없이 미친 듯한 킬파티 게임을 보고 있습니다.
  도타가 왜 이렇게 변했냐구요? 지금 롤과 같은 지겨운 메타, 수면제 메타를 이미 경험했고, 이런 메타가 얼마나 흥행을 저하시키는지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롤은 도타의 이런 실수를 반면교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얘기가 좀 샌 것 같은데요, 어째튼 본질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밸런스는요?


3. 실종된 독창성

  위의 내용까지는 그래도 어느정도 수용이 가능합니다. 저런 모습을 보인 것이 한두시즌도 아니거니와, 그냥 게임 방향성을 저렇게 설정했구나 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실망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실종된 독창성 or 아이디어 고갈

  이제는 막말로 영웅의 스킬을 대놓고 베끼는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제가 라이즈의 리메이크를 보고 분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라이엇은 이제 옆동네, 도타의 스킬을 '모티프로 사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베끼고 있습니다.

  라이엇은 한때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온갖 신기한 메커니즘의 챔프들을 출시했습니다.

  왜곡(w)과 모방(r) 콤보로 신출귀몰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르블랑, 식물과 반응하는 메커니즘의 자이라, 그림자로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는 제드, 젤리를 먹어가며 체력을 회복하는 탱커 자크 등...

  하지만 최근에 나온 신챔프들 스킬을 거의 다 도타에서 원형을, 심지어는 그냥 베껴온 스킬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당장 생각나는것만 써보면

  에코 궁 = 도타 길쌈꾼 궁, 똑같이 4초 전의 위치와 상태로 이동

  바드 우주의 결속 = 바람순찰자 셰클, 똑같이 영웅 하나 맞추면 짤스턴이지만 영웅-영웅 속박이 되거나 영웅-나무 속박이 되면 꽤나 긴 스턴을 보여주는 스킬

  바드 궁 = 해당 지역의 시간을 완전히 멈춰버린다는 점에서 얼굴없는 전사의 궁에서 모티프를 가져옴

  아우렐리온 솔 위성 = 이오 영혼, 심지어 영혼 거리를 조절하는 것 까지 그냥 베낌. 달라진 점은 5개에서 3개가 됐다는 점 정도?

  이번에 라이즈 리메이크 궁 = 핏로드 궁극기       <- 이건 정말 황당하더군요.

  중요한 점은, 이건 그냥 아이디어 고갈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저에 대한 성의차원으로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ex)
  개발자: 아 돈은 벌어야하니깐 신챔프를 내야하는데, 아이디어 없어?
  디자이너: 이런 컨셉 어때?  
  개발자: So Cool! 근데 스킬을 어떻게 하지?
  디자이너: 아, 아직 그거까진 생각 안해봤...
  개발자: 아! 옆동네 스킬 베껴오자!
  디자이너: 어... 응 그래, 티 안나게 잘 꾸며볼게...

ex)
  밸런스팀: 야 얘 너무 OP래. 리메이크 하자.
  개발자: 아 스킬 새로 생각해야 하잖아! 아 귀찮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 옆동네꺼 베껴오지 뭐

  그나마 탈리야 패치때는 다시 독창성이 살아나나 했지만, 이번 라이즈 리메이크를 보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라이엇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대체 이 회사에 뭘 바란 것일까 하는 허탈감과 동시에, 원래 도슬람으로서 스킬을 베껴가는 회사에 대한 환멸감까지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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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님, 도타 세계 점유율이 얼마? 깔깔깔! 하시는 분들 있을겁니다. 하지만 롤이 애초에 어떻게 도타를 제치고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는가 그 근본을 잘 생각해보면, 그리고 현재 롤의 모습을 비추어보면, 어느새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개구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랜시간 준비한 글도 아니고, 그다지 논리적인 글도 아니라서 글이 깔끔하지 않네요. 
여기까지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