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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6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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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슈퍼카투사 썰어학당 등록기 1편 : https://www.inven.co.kr/board/diablo2/5735/653411
*편의상 반말로 씁니다. *슈퍼카투사가 뭔지 궁금하신 분은 군대썰 몇개 링크 들어가시면 있어요 상병 진급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평범하게 주말에 외박 나가던 중이었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에서 평택역까지, 그리고 서울까지 이동해야 했다. 미군부대는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부대 안을 규정속도 지켜가며 차로 돌면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지금은 더 사이즈가 커졌으니 더 걸릴 것이다. 이렇게 부대 안이 크다보니 부대 안에 노선버스처럼 버스가 다녔고, 사복을 입은, 약 20대 중후반~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은 한 백누나 옆에 앉게 되었다. 주말이었고 사복을 입었으니 사람대 사람으로 마주치는 것이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인사 잘 건네주는 미국 문화로 나는 그 백누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백누나도 인사를 받아주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없는 돌싱녀였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어린 나이부터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도 꽤 많기에 상대의 결혼상태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실례는 아니고, 이혼했다 해서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버스에서 군대 들어온 얘기, 군대 전역한다면 하고싶은 것 얘기를 하다 보니 부대 보행자 전용 게이트까지 오게 되어 부대 문 밖으로 나섰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쉬지 않았다. 가겠다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타이밍이 있다. 그녀는 도저히 작별 인사를 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고, 계속 밖에서 서서 이야기 할 수 없으니 부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맞장구 쳐가며 내 얘기도 살짝 하고 거의 들어주었다. 그녀는 아주 신나서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카페에서 약 3시간 정도 여행 얘기, 사는 얘기, 헤어진 전 남편 욕, 군대 얘기, 가족 얘기 등등 쉬지 않고 떠드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너무 배가 고팠다. 내가 있던 부대에도 여군들이 있었지만, 이미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마주친 얼굴들이라 새로운 여자와 얘기하는 것이 즐거워 배가 고플 때 까지 얘기를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삼겹살 집으로 갔다. 그녀는 한국에 파병 나온 지 4개월차에 접어드는 확실한 신참이었다. 삼겹살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말에 선택했다. 삼겹살엔 소주를 먹어야 한다며 그녀에게 약간의 주도도 가르치고, 삼겹살을 구워줬다. 삼겹살 한 점, 소주 한 잔, 삼겹살 한 점, 소주 한 잔... 소주는 뒤늦게 올라와 한번에 훅가게 만든다. 그녀도 훅갔다. 그녀의 이름은 들었지만 그녀가 사는 배럭은 몰랐다. 거기에 나는 그때 한 달에 1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군인이었다. 모텔에 갈 돈 따윈 없었다. 잠깐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품을 뒤져 부대 출입증을 찾아냈다. 그리고 부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택시를 불러 그녀를 태우고 내가 사는 배럭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주말에도 당연히 당직은 있지만 운이 좋았는지 당직은 나와 안면이 많이 없는 다른 중대의 미군이었다. 당직은 술에 취한 모르는 여군을 부축하며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씨익 웃고 말았다. 낑낑대며 그녀를 내가 지내는 방으로 데리고 왔다. 내 룸메는 카투사였기에 이미 집으로 간지 오래여서 주말이 끝날 때 까지 절대 올 일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녀도 먹은걸 게워낼 정도로 술에 취하진 않아 침대에 눕히고 나도 숨을 좀 고르고 나니 그녀가 말을 걸었다. 조금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녀의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괜찮냐며 정신이 드냐는 질문에 물을 찾는 그녀에게 물을 떠다주니 벌컥벌컥 마셨다. 그 때 그녀의 목선이 보였다. 그리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았던 그녀를 밀폐된 한 방에서 보니 이상하게 예뻐보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웃옷을 벗었고, C~D정도 되어보이는 바스트와 그걸 지탱하고 있는 검정색 브래지어가 나타나자 난 이성을 잃었고, 그때부터 우린 짐승이 되었다. 침대에서, 샤워실에서(개인 방 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려있다), 문가에서, 창문가에서 우리는 평생을 못해본 사람들처럼 격렬하게 했다. 동양인은 양놈들에게는 못 미치는 사이즈지만, 단단함이 다르다. 그녀는 처음 맛보는 동북아시아의 단단한 방망이에 생각보다 좋다며 만족했고, 나는 20대 초반의 넘치는 에너지로 부족한 사이즈를 메꿨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가 눈이 뜨여 누군가 움직여 깨면 했고, 그 과정을 몇 차례 반복했더니 내 분신은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술은 완전히 깼으며 나는 슬슬 애 안딸린 이혼녀가 같이 살자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지만 몸이 너무 힘든 탓에 잠이 들었다. 해가 다시 저물어가던 때 눈을 뜬 나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카락과 침대 위에 그녀의 흔적만 조금 남기고 사라져있었다. 그녀와의 광란의 밤을 보내고 한동안 그녀를 마주쳤던 요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며 외박을 나갔지만 그녀를 다시 본 적은 없었다. |
강창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