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 울부짖음은 생명체의 울음소리가 아닌 바로 바람의 소리였다.


 청년은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을 상대로 힘겹게 버티고 서있었다. 청년의 두 눈은 공포로 물들어 버린 지 오래였다. 암흑 속에서 주위를 둘러본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는 암흑 속.


 고막을 찢어 버릴 듯한 기괴한 바람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매서운 바람이 몸을 때릴 때마다 청년은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이것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청년은 넋이 나가버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이 암흑의 공간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몸부림 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은 의지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청년은 절망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로 그때, 한줄기의 빛이 암흑 공간을 찢어내더니 서서히 청년의 몸을 비추기 시작했다.


 빛. 그것은 달빛이었다.


 어둠속을 비집고 들어온 달빛의 크기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이내 암흑을 걷어낼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쏴아!


 바다.


 거대한 파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품을 토해내며 들끓었다. 암흑 공간을 벗어난 청년은 어느새 자신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중에 떠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쿠그그그!


 미친 듯이 들끓는 파도가 청년의 몸을 집어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꿈? 아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이 상황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청년의 입에서 또 다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여태까지 움직이지 못했던 그의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전진해오는 거대한 파도를 피하기 위해 공중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죽음. 이제 곧 청년은 파도에 휩쓸려 죽을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게 되는 것인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청년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두 눈을 감았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사부님들. 그리고 주민들. 청년이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거대한 파도가 청년의 몸을 휘감았다. 허공에 떠있던 그의 몸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또 다시 몸부림.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청년은 수면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이제는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거대한 파도와 요동치는 물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바다의 해수면이 급격히 하강하자 청년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꽤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었던가?


 청년은 힘겹게 일어섰다. 청년의 시야에 바다 속에 있었던 바위들과 산호초들이 들어왔다. 경이로운 광경에 청년은 넋을 잃고 말았다.


 감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위와 산호초들이 일순간 빛을 뿜어내더니 서서히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청년의 심장은 터져버릴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백, 아니 수천 여개의 거대 석상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들은 저마다 각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잠깐. 이 석상들 낯이 익지 않다.


 그런데 언제 봤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누가 날 이곳에 보낸 것인가?


 일단 이곳을 벗어나자!


 청년은 미친 듯이 달렸다.


 청년은 달리는 와중에도 거대 석상들에게 눈길이 갔다.


 잘못 본 것일까?


 청년은 석상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싹함. 당장에라도 석상들이 살아 움직여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올 것만 같았다.


 “대체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이더냐!” 


 청년의 마지막 외침과 동시에 바닥이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대지의 진동에 땅이 갈라졌다. 청년은 비명소리와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땅속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헉!”


 청년은 외마디 외침과 함께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땅속으로 추락하던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음을 느낀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열린 창문사이로 스며든 보름 달빛이 청년을 비추고 있었다.


 “지독한 악몽이로군.”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상체를 일으킨 그는 침대맡에 놓여있는 주전자를 집어 들고 몇 모금의 물을 들이켜 마시자 청년의 마음은 겨우 진정되었다. 


 주전자를 원래의 위치로 내려놓는 순간, 한 가지 물건이 청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물건은 한 주먹에 쥐어질 만한 크기의 작은 돌이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돌에 불과했지만, 자세히 들어다 보면 앞뒤로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진 검정색 돌이었다.

 청년은 돌을 만지작거리며 방금 전의 악몽이 이 돌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 * *



 청년 ‘오공’은 집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일출의 모습이 보였다.


 파도는 잔잔했고, 발에 밟힌 모래들의 감촉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한 참을 모래사장을 거닐던 오공은 한 바위위에 앉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검은 돌을 꺼냈다.


 “바로 이곳이었어.”


 두 달 전, 오공은 지금 자신이 앉아있는 바위 근처에서 검은 돌을 주웠었다. 섬에 존재하는 바위와 돌의 색은 모두 회색이었다. 처음 보는 색상의 이 돌은 파도에 휩쓸려왔는지, 아니면 오랜 세월 모래사장 밑에 묻혀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단순히 돌의 색에 매료되어 자신의 방에 장식품으로 놓아둔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돌을 주웠을 때부터 악몽이 시작된 것 같은데...”


 오공은 악몽을 꾼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같은 악몽을 꾸게 된지가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꾸게 되면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대체 이 돌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은 대체 무엇이고, 누가 새겨 놓은 것일까?”

 오공은 검은 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가 장난으로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린 지 오래였다.


 “이 돌을 곁에 두고 있어서 악몽을 꾸는 것이라면 버려버리자!”


 결심을 내린 오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돌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돌멩이 따위에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아니다. 항상 최고만을 추구하는 나로써 이건 쪽팔리는 일이야!’


 순간 오공의 마음속에 검은 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겨났다. 자세를 거둔 그는 축 쳐져있는 어깨를 활짝 피며.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어쩌면 도란 사부님이라면 이 돌에 새겨진 글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오공은 모래사장 뒤쪽의 울창한 밀림으로 몸을 돌려 뛰었다. 밀림으로 가까워질수록 상쾌한 자연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아이오니아.


 오공이 살고 있는 섬의 이름이다. 발로란 대륙의 북동쪽 해안선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섬.


 열대의 섬으로 불리 우는 이곳. 하나의 대륙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큰 섬을 중심으로 칠 십 여개의 크고 작은 섬이 아이오니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섬 주변으로는 백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이 섬은 태초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름답기만 한 섬이지만 밀림 깊숙한 곳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몬스터와 짐승들, 그리고 이름 모를 독벌레 수천여종이 서식하고 있어서 공포의 섬이라고도 불렸다.


 그 때문에 고대에는 섬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몬스터와 짐승들의 공격으로 모두 섬을 떠나버렸고, 무인도가 되었다. 그런데 백여 년 전부터, 인간과 유사하게 생긴 원숭이들이 이곳에 자리 잡아 살기 시작했다.


 무서운 생명체들이 서식하는 이곳 아이오니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원숭이는 우주류 길드 출신의 ‘오청’이었다.


 오청은 자신을 따르는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함께 아이오니아에 정착을 시작했고, 현재는 천여 명의 원숭이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자연을 벗 삼아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예사롭지 않은 원숭이들이었다.


 인간들처럼 규율을 지키며 다툼과 욕심이 없었고, 모든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무술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륙 북동쪽 일대의 사람들은 아이오니아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을 ‘비범한 원숭이’ 라고 불렀다.


 현재 일족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섬의 개척자 오청의 증손자인 ‘오반’이었다. 올해 팔십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그 어느 원숭이들보다 현명하고 뛰어났다. 그 때문에 일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오공은 오반의 손자였다.


 섬사람들은 모두 오공을 좋아했다. 그의 낙천적인 성격과 잠재된 재능은 원숭이 일족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공의 나이는 올해 스물 하나였다.       



* * *



 도란은 연구실에서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도란 사부님!”


 오공이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도란은 반응이 없었다. 그저 등을 돌린 채 연구에 몰두할 뿐이었다.


 “사부님!”


 큰 목소리로 불렀지만 여전히 도란은 반응이 없었다. 오공은 이런 도란의 반응이 익숙했던 것인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며 기다렸다.


 도란은 한번 연구에 빠지면 도통 멈출 줄 몰랐다. 아마 천지가 진동을 하더라도 연구에 몰두하는 저 자세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의 나이는 오십 세. 그는 원숭이족이 아닌 아이오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는 부드럽고 온화한 외모에 생김새는 젊어보였지만 희끗희끗 흰머리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보였다.


 도란은 오공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듯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밥을 먹고, 자는 시간외에는 오로지 연구뿐이었다. 섬에 정착한 초기에는 갖가지 장비를 제작했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포션 제작과 치료술 연구에 빠져있었다.


 그 때문에 아이오니아에서 다치게 된 사람들 중 도란의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란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오공은 서서히 지루해졌다.


 도란은 좀처럼 뒤돌아볼 생각이 없어보였다.


 지루함을 느낀 오공은 도란의 연구실을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은 이미 고서들과 잡다한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고, 고서들의 대부분은 치료에 관련된 책이었다. 벽 한쪽에는 섬 곳곳에서 채집한 이름 모를 약초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상자에 가득 담겨있었다. 그로인해 도란의 연구실은 오래된 책 냄새와 갖가지 약초냄새로 가득했다.


 ‘대체 무엇을 연구 하시길래 아는 척도 안하시는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오공은 슬며시 도란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도란이 살펴보고 있는 것은 검붉은 색의 열매였다. 이 열매는 기괴한 형체를 띄고 있었고, 여러 조각으로 잘라져 있었다.


 ‘이 열매는 맹독열매!’


 오공의 동공은 일순간 크게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