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한 달이 다시 흘렀다.


 오공의 몸은 거의 완치가 되었고, 어느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주민들은 오공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보고 모두들 신기하게 여겼고, 잔치를 벌여 자신들의 일처럼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오반의 노여움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오반은 오공을 크게 나무라며, 그 벌로 한 달 동안 외출을 금했다.


 그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 오공은 집안에서는 책을 읽거나, 마당에 나와 우주류 봉술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도란이 틈틈이 오공이 있는 곳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별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사이, 오공의 몸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전신의 근육은 돌처럼 단단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속에서는 주체 할 수 없는 기운이 솟아나와 아무리 우주류 봉술을 시전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붉은 노을이 서쪽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부우웅!
 

 마당에서는 공기를 뒤흔드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주류 봉술을 연마하고 있는 오공의 몸놀림은 너무나도 빨라 몸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폭풍 같은 기세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노을이 그 기세에 눌린 듯, 붉은 빛은 빠르게 잃어가고 있었다.


 오공은 예전의 오공이 아니었다.


 마당 뒤쪽에 서서 수련하는 오공을 지켜보는 한 사람.


 그는 할아버지 오반이었다.


 그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죽을 줄 알았던 손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물론, 그야 말로 엄청난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이제 저 아이도 다 자랐구나.’


 황금석상을 보고 온 후부터 달라진 것은 능력만이 아닌 듯했다.


 그는 어딘가 오공이 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철이 없어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그는 비로소 늠름한 청년이 되었다고나 할까?


 오반은 이내 조용히 몸을 돌려 마당에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다녀간 것도 모른 채, 오공은 우주류 봉술을 마지막 동작까지 시전한 후에야 동작을 멈추었다.


 전과는 다르게 그의 호흡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이 사부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크게 기뻐하시겠지? 이제 우주류 봉술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드는 날도 머지않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는 산산 조각난 황금석상을 생각했다. 석상이 파괴되었으니, 환영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오공은 아직 누구에게도 황금석상에서 발현된 환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그를 엄습했다.


 석상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환영의 동작들을 모두 익혔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외웠던 동작들은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로 외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작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요 며칠 새에 기억을 떠올리며 동작을 흉내를 내보았지만 안개 속을 헤매는 듯, 실패를 거듭했다.


 “그 동작들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면...”


 오공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더 이상 악몽도 꾸지 않으니, 황금석상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구나.”


 며칠 전 보름달이 떴지만 악몽은 꾸지 않았다.


 “필시 그 검은 돌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황금석상으로 안내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휘이잉!


 깊은 생각이 빠져있던 오공의 귓가에 심상치 않은 바람소리가 파고들었다.


 ‘기습?’


 그의 행동은 머릿속 생각보다 빨랐다.


 오공은 재빠르게 몸을 비틀어 봉을 휘둘렀다.


 까강!


 세 개의 단도가 쇠봉에 부딪쳐 떨어졌다.


 오공은 그제야 자신을 공격한 상대방의 모습을 확인했다.


 “사부님!”


 놀랍게도 그를 공격한 인물은 바로 마스터 이였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검을 뽑아들고 무서운 기세로 공격해왔다.


 부웅!


 오공은 본능적으로 봉을 휘둘러 그의 검을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몸이 휘청거렸다. 마스터 이의 검 날에 오공의 가슴 옷자락이 아슬아슬 베어나갔다. 만약 조금만 대처가 느렸다면 여지없이 몸이 두 동강 났을지도 모를 뻔했다.


 “사부님! 대체 왜 이러세요?”

 “죽어라!”


 마스터 이의 몸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엉뚱한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매서운 검날이 오공을 향해 무차별 적으로 휘둘려지고 있었다.


 ‘으윽!’


 오공은 이런 무시무시한 공격은 난생 처음이었다. 평소 마스터 이와 대련을 했을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인 것이다.


 오공은 사력을 다해 봉을 여러 방향으로 내뻗었다.


 “회전격!”


 붕! 붕! 붕!


 엄청난 봉의 회전과 함께 오공의 쇠봉이 마스터 이의 검과 충돌해갔다.


 까강! 까강! 까깡!


 쇠봉과 검의 부딪침에 의해 불꽃이 튀겼다.


 두 사람은 손목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투구를 쓴 마스터 이의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보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는 오공이 제대로 된 방어를 하지 못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쓰러질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놀랍군. 감히 나와 맞먹으려 들다니...”
 “사부님...”


 오공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짝짝짝짝!


 누군가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이사부, 내가 뭐라고 했는가? 이미 오공은 자네와 동등한 수준일세!”


 호탕한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도란이었다.


 마스터 이는 인정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오공을 응시했다.


 “나의 기습은 널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
 “사부님...”
 “도란의 말이 사실이었군. 조금만 더 수련을 한다면 곧 나를 뛰어넘겠구나. 크하하핫!”


 마스터 이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공은 그가 그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쿵쾅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저는 사부님이 치매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뭐라? 치매? 건방진 원숭이 녀석!”


 마스터 이가 두 눈을 부라리며 호통 쳤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란이 크게 웃었다.


 마스터 이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나를 기쁘게 만들었으니 상을 내리겠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라.”
 “원하는 것이라면...”


 오공이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는 마스터 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형편임을 알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집과 동굴 뿐, 특정한 물건을 말하는 것은 무리였다.


 잠시 고민하던 오공이 이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발로란으로 가고 싶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마스터 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도란 또한 마찬가지로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오공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너무 무리한 부탁인건가요, 두 사부님들?”


 마스터 이는 당황한 표정을 이내 감추며 정색을 하고 물었다.


 “발로란으로 가고 싶은 건가?”
 “네. 사부님.”


 오공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발로란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항상 해왔었다.


 오공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니에요. 저는 지금 이 집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가봤자 어디로 가겠어요.”
 “그 말은 아무래도 틀린 것 같구나.”


 도란이 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촌장님께서 명한 한 달간의 외출금지는 오늘로써 끝이 났단다. 몰랐느냐?”

 “앗! 그렇다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공의 몸은 벌써 밖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오공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도란과 마스터 이.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이 없는 둘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듯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석 달 후. 그 사이 오공의 무술실력은 한 층 발전했다. 몸집 또한 예전보다 크고 단단해졌다.


 주민들은 그의 변화된 모습에 감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란과 마스터 이는 오반의 거처로 모습을 나타냈다.


 별실 안.


 “오공은 이제 이 곧을 떠날 때가 된 듯싶습니다. 녀석에게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마스터 이의 나지막한 음성에는 힘이 깃들었다. 오반은 진지하게 마스터 이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큰 뜻을 펼치기에는 이 섬은 너무 좁습니다. 이곳의 사람들 모두가 대륙으로 갈 수 없으니 오공만큼이라도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만 할 것입니다.”


 도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터 이를 거들었다.


 “이사부와 저는 오공에게 지식과 무술을 모두 전수해 주었습니다. 더 이상 이 섬에 잡아 두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허허허...”


 오반이 쓴웃음을 지으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정말 성장했다고 여기는 것인가?”
 “촌장님...”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보이네.”
 “특정한 목적지도 없이 발로란으로 보내자는 것은 아닙니다.”


 도란이 힘 있게 말했다.


 “오공을 지식학회에 보내고 싶습니다.”
 “지식학회...!”


 오반은 크게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 아이가 다른 원숭이들 보다 똑똑하긴 하지만 지식학회에 들어갈만한 수준이라고 보는 것인가?”
 “물론 아닙니다. 지식학회의 수준은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니까요.”


 도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오공이를 지식학회로 보내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십 년 전에 제가 그림자 제국 황실의 분노를 사서 이곳 아이오니아로 오게 된 당시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오반이 크게 놀랐다.


 도란은 성품이 밝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주변인들에게 지식학회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당시 피어스님께서는 제가 지식학회를 떠나겠다고 말씀드리자 애석해 하시며 한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한 아이로 인해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죠.”


 도란의 두 눈에 신비로운 빛이 가득 찼다.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의아해 하며 무슨 뜻이냐고 묻자... 피어스님께서는 저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를 지식학회로 보낼 것이며, 그 아이는 발로란을 구하게 될 영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오반이 또 다시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마스터 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도란이 오공을 지식학회로 보내겠다는 말을 했을 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처면 그것은 허풍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도란의 말을 들은 지금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계신 피어스님이 그런 예언을 하셨다니...”


 그러나 오반은 아직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다른 아이일 것일세.”
 “만약, 그렇다면 이 섬에 또 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음 그거야...”
 “저는 피어스님의 예지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공의 높은 자질도 믿고 있습니다.”


 도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황금석상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오공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으음...”


 오반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스터 이가 도란을 거들기 위해 말했다.


 “라이즈의 말대로 대륙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라면, 더 큰 혼란이 오기 전에 발로란으로 보내 단련시켜야 합니다.”


 말이 끝나자 마스터 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도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오반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오반은 잠시 두 눈을 감고 침묵하던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순간 도란과 마스터이의 안색이 밝아졌다.


 아직 허락을 한 것이 아니지만 이미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직감한 것이다. 둘은 동시에 일어나 인사 한 뒤, 거처에서 나왔다.


 그날부터 오반은 일체 식사를 하지 않으며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큰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원래 오반은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 마다 단식을 하고 명상을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린 결정은 어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길어봐야 3일 정도였지만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갈수록 주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긴 단식기간에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오공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반이 단식에 들어간지 열흘이 지났다.


 이른 새벽.


 오공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 저, 오공입니다.”


 오공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한가운데는 두 눈을 감고 정자세로 앉아 있는 오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앉거라.”
 “네.”


 단식으로 인해 오반의 얼굴은 매우 초췌해보였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생생했다.


 “오공아, 나는 너를 발로란 대륙으로 보낼 것임을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