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의도적인 접근이라는걸 완벽하게 숨기는데 성공했나본지 험상궂은 척을 하는 남자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몰렸다.
"누나. 좀 예뻐보이는데?"
 타깃에 접근하는일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사나 계획도 모두 원하는 각본으로 진행되어갔다.
"어머, 감사해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거짓말, 이것이 사실일리가 없는 거짓말이다! 엘리스의 생김새를 보면 전혀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는데!
"그런... 우리가 누나에게 있어서 되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었잖아? 영광입니다?"
 무지한 타깃은 새빨간 거짓말을 내숭으로 이해해버렸다.


"정말 고마워요 아가씨. 우리는 태어나서 남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본적이 한번도 없거든. 그래서 말이야. 우리가 도와줄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한다면야 저는 딱히 바랄게 없거든요..."
"그래요?"
 남자들은 자기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접근한 그 여자를 대하고 싶었다. 정성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그럼요, 누나! ...우리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래?"
 엘리스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남자 한명이 그녀에게 바싹 들이댔다.
"... 꽉 안아봐도 될까?"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있지 않은게 분명하다. 그 무리들 나름대로 계획을 짜놓았을테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생각할 것이다. 금품갈취든 협박이든 다른 목적이든, 걸려들었다고!
 그러나 엘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의 머리위에서 수없이 놀아보았다. 그 경험이 쌓인 지금의 그녀는 자신있게 다가오는 상대에게 한 수위의 대사를 꺼냈다.
"어머, 당신들 설마... 이렇게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이곳에서 하려는건가요?"
 더 과감하게 나온 그녀! 예상외의 적극적인 태도에 남자들은 당황하거나 흥분했다.
"제가 아주 좋은 곳을 알고있는데... 가보지 않을까요?"
 엘리스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서있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악보다는 위악에 가까워보였던 그 남자의 건들거림이 잠시 주춤했다. 그녀는 주변에 있던 비스무리한 남자들을 향해 시선을 나눠주었다.
"물론, 이분만 그려려고 하는건 아니겠죠?"
'엇?'
'설마?'
"같이 오시죠~ 혼자는 재미없거든요."


 클럽을 나와서 자기의 기분을 고조시킬만한 장소로 남자들을 이끌때 엘리스는 생각했다.
'역시 이 말투는 나하고 안맞아. 낮간지럽고 힘들기까지 해.'
 리그에 들어오면서 챔피언들은 자신들의 개성이나 특징을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는 별명, 포괄적으로 일컬으면 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 지닌다. 그 해당란에 엘리스는 이렇게 쓰여져있다.
'거미 여왕'.
 여왕은 실질적으로 남들을 높게 대하지 않고 낮게 대한다. 그녀 역시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에 더욱더 그에 걸맞아보인다. 전장에서 그녀가 자주 쓰는 대사를 모아보면 말투가 존댓말이 아닌 반말일 뿐더러 어쩔때는 깔보는듯한 느낌이 난다. 그리고 느린 말투에서 비롯되는 요염한 말투가 돋보이는데, 이는 클럽에서 사용한 말투와는 거리감이 상당하다.
'이제 시작해볼까?'
 광란의 분위기에 의해 묻혀진듯한 기운이 엘리스에게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이다. 그 기운의 발현은 아무런 방범체계도 없는 장소에서야 이루어지리라.


 이 일에서 진행되는 과정은 생략하겠다. 이런 패턴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천편일률적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결과도 예외는 아닐것이다.


"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누나, 아니 누님... 다시는 이런 짓 안하고 다닐게요..."
 거짓말같이 폭력배들은 전멸당한다. 미묘하게 그녀를 부르는 호칭도 격상되었다.
 엘리스는 자신의 발을 우아하게 들어올린 다음, 힐로 상대의 가슴을 찔렀다. 가슴이 찔린 남자는 신음소리를 내질렀지만 이미 수없이 질러댄 목이라 소리는 작았다.
"남자들은 다리예쁜 여자들을 좋아한다지?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지. 다리는 남자들을 위해 있는게 아니거든?"
 다른 하이힐과는 다르게 앞꿈치에 붙어있는 엘리스의 힐은 다리와 신장을 길어지게 하는 시각효과를 부여한다. 엘리스의 우아한 다리는 사실 앞꿈치의 힐에 한 술 더 뜬 까치발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불량배들은 그런 엘리스를 목표로 삼았다. 엘리스의 신도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를 생각하면 억수로 운이 없는 경우다.
"..."
엘리스는 단 한명의 남자를 빼고 모두 죽인 상태. 나머지 1명의 남자라고 해봐야 치명상을 입었으니 치료가 제 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을 목숨이다. 그 남자를 향해 엘리스는 측은한 눈길을 던져주고 가로등 밖의 시야로 걸어나갔다.
"저기요 누님, 궁금한게 있는데요, 힐을 앞에다 붙이면 발은 안아파요?"
순간 남자는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불쑥 질문을 했다. 가로등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있던 엘리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뒤늦게 자신의 입을 원망해하며 손을 들었다. 엘리스는 그 남자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것으 또각또각 들려오는 엘리스의 발걸음에 의해 깨졌다.
 
"죽... 죽을 뻔했어. 휴우..."
 피로 가득찬 골목길에서 한동안의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그 남자는 힘겹게 몸을 겨누고 걸었다.
"아프지 않아. 오히려 편하게 해줄 뿐이지."
"?"
앞뒤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가 남자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불 시야 밖에서 사각사각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더 가까이. 가로등은 그 실체를 페이드 인처럼 천천히 밝혀줬다. 남자가 말했던 앞꿈치의 힐은 거미의 발끝이 되어있었다.
 남자는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 달리려고 했다. 그 순간 남자는 발밑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새끼거미들이었다. 그 거미들은 남자를 향해 거칠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남자는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는, 뒷걸음질을 치던 남자는 어느 경사로에 넘어졌다. 넘어진 것에 상관하지 않고 일어나려고 하는 남자의 의문. 경사로라고 치기에는 길이 너무 울퉁불퉁했다. 다급한 순간에도 밀려오는 호기심을 뿌지치지 못해 남자는 자기가 넘어졌던 바닥을 만져보았다.
"아..."
남자는 거미의 몸에 기대어있었던 것... 아니, 성인 남성과 맞먹는, 어떻게 보면 그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가진 거대 거미는 자신의 몸에 쓰러진 남자를 위로 세게 던졌다. 그리고 유난히 시뻘건 이빨들을 내밀었다.
"끄아아아악!"


 엘리스의 자유활동은 대체로 이러했다. 가끔씩, 종교활동과 연관이 없는 살인행위를 하는 것.


"야, 오늘 한 잔 하러 가자!"
"어제도 한 잔, 오늘도 한 잔? 돈은 네가 내라!"
자운의 어느 술집. 예배가 끝난 이후 거미교신도들이 모였다. 그것도 남자만. 곳곳에서 풍겨오는 악취와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아줌마, 여기 맥주 아무거나 주세요!"
"에휴 등신. 이런 곳에서 많이 먹으려면 이렇게 말해야지. 누나, 여기 버터맥주 주세요!"
"누나! 음... 저도 같은거 부탁해요!"
 신도들은 몇 십분동안 잡담을 하고 술을 마셔댔다. 취기가 어느덧 절정에 달하는 무렵,
"으... 부토르러... 넌 왜 거미교에 들어왔어?"
"나? 거미가 그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제님의 말을 듣고 감회가 새로워서 들어왔어."
"쳇 시시하군. 조나단, 넌?"
"나? 거미는 싫지만 사제님 보는 맛으로 가는 거지!"
 순간 남자들이 의견을 모을수 있는 대상이 한군데로 모였다.
"하하하. 사실 나도 그렇단 말이야. 엘리스님은 사제라 부르기에도 아까운 분이지 않냐? 차라리 여왕님이라 부르자!"
"그정도 존칭밖에 못부르냐? 난 엘리스 여신님과 한 번 자보면 소원이 없겠다!"
"웃기지마, 그전에 내가 먼저 할거야!"
술집의 신도들이 남자로만 가득차있는지라 분위기가 활발해도 주제는 다소 음란한 대화가 계속되었다.
"저기요, 목소리좀 낮춰주세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왜 그렇게 크게 하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말리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들을 말릴 방법은 없습니다."
순간 신도들은 뚱딴지같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니, 그 시선의 끝에는 보라색 옷만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결국 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고 죽게될 것이니까요."

<계속>


<글쓴이의 말>


 공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