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열매는 대륙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열매는 아니지만 아이오니아의 밀림 안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열매였다.

 

맹독열매의 독성은 매우 강해서 눈곱만큼의 양이라도 복용하는 순간, 즉사해 버리는 무서운 열매였다. 과거, 몇몇 사람들은 이 열

매의 맛을 보고 죽은 일도 있었다.

 

‘도란 사부님은 맹독열매 조차 약으로 만드실 작정인가?’

 

오공은 이해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란이 치료술 연구와 포션 제작을 시작한지 어언 십 년. 웬만한 열매와 약초를 재료로 사용해본 그의 연구는 ‘독’까지도 재료로 사용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도란이 살펴보고 있는 맹독열매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져 있었다.


“그렇군. 바로 그 녀석 짓이다.”

 

도란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라뇨? 이 오공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흐음... 틀림없어. 그 녀석이야.”

 

오공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것으로 보아 도란은 아직도 오공이 자신의 뒤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오공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란이 평소에도 혼잣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증세가 심해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오공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자 포기한 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도란은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더니 반갑게 오공을 맞이했다.

 

“아니, 오공아 어쩐 일이냐?”

“.....”

 

가기막혀 말문이 막힌 오공이었다.

 

“드디어 알아냈다!”

 

도란은 맹독열매 한 조각을 들더니 오공의 얼굴로 들이밀었다.

 

“이것이 무슨 열매인지 아느냐?”

“맹독열매잖아요.”

“그래. 맹독열매지. 하지만 이 열매는 보통의 맹독열매보다 독성이 수십 배나 강한 열매란다. 그런데 이 열매는 발견될 당시에 이렇게 산산 조각나 있었어.”

“사부님께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나요?”

“누가 그랬는지 한번 맞춰보렴.”

“뭐, 정글에 서식하는 짐승이나 몬스터가 한입 베어물었나보죠.”

“모르는 소리. 정글에 서식하는 생명체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맹독열매의 강한 독성에 치가 떨려하고 있단다.”

 

도란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건 바로 내셔의 솜씨다.”

“내셔!”

 

어린 시절부터 도란을 따라 아이오니아 정글 곳곳을 누빈 오공이었다. 도란을 사부님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오공에게 많은 지식을 전수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따라다니면서 오공은 아이오니아의 몬스터와 약초에 대한 지식을 완벽히 습득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셔!

 

이 몬스터는 아이오니아를 비롯해서 발로란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몬스터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몬스터이다. 내셔는 몬스터계의 ‘남작’으로 불리 우며 그 명성에 거대한 몸집에 수십 개의 눈이 달린 포악한 뱀이었다. 거대한 몸집이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대지가 진동할 정도였다.

 

“너 또한 맹독열매의 독성을 잘 알고 있을 터... 얼마 전 밀림 속에서 약초를 캐다가 바로 이 조각난 맹독열매를 발견했단다.”

신이 난 도란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밀림의 몬스터들 또한 맹독열매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 맹독열매를 조각 낸 존재를 알아내기 위해 며칠 동안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그것이 정말 내셔의 짓이라면 열매의 강한 독성 때문에 이미 죽어 버리지 않았을까요?”

 “아닐 것이다. 내셔는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 맹독열매를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독성에 대해 내성이 생긴 내셔는 한층 더 강해졌을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이제 내셔의 주식은 이 맹독열매가 되겠군요.”

“그렇단다!”

“그런데 그것이 사부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죠?”

 

오공의 질문에 신이 났던 도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당연히 상관있지! 나는 반드시 내셔를 잡을 것이다. 오랜 세월 연구하고 있는 궁극의 포션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있단다. 수백여 가지의 영험한 약초와 맹독열매의 독성에 내성이 생긴 내셔의 피를 섞는다면 회복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다.”

“말도 안 돼! 대체 무슨 수로 내셔를 잡겠다는 거예요?”

 

오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셔를 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포션을 마셨다가는 회복이 되기는커녕 내장이 녹아내릴 것입니다.”

“하하하... 그 포션을 너에게 먹일까봐 걱정이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도란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내셔를 잡아야 마셔보기라도 하겠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설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난 반드시 잡을 것이다!”

 

도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공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치 도란의 행동은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무엇보다 내셔가 이 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오류 아닌가요? 만약 이곳에 살고 있다면 진작 저희들이 진작에 알았겠죠.”

“모르는 소리. 이 아이오니아 섬의 절반 이상은 밀림지역으로 이루어져있단다. 그리고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이 있어. 아마 그런 곳에 내셔가 살고 있을 확률이 있을것이란다. 암, 그렇고말고!”

 

오공은 더 이상 도란을 설득하는 것은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휴... 알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부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셔의 뱃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할게요.”

“이런 고얀...!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로구나. 그나저나 이른 시각에 나를 찾아온 용건이 무엇이냐?”

“아, 참. 깜박 잊고 있었네.”

 

오공은 품속에서 검은 돌 하나를 꺼내 도란에게 건넸다.

 

“이 돌에 새겨진 글자를 알 수 있을까 해서요.”

 

도란은 책상위에 있던 안경을 쓰고 유심히 돌을 살펴보았다.

 

“음...이건... 고대의 발로란 문자 같아 보이는 구나.”

 

도란은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어디서 이런 것을 주웠느냐?”

 

오공은 돌을 주운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고대 문자가 새겨진 것도 그렇고 모양으로 보나 색깔로 보나 분명 이 돌은 현세의 것이 아닌 것 같구나. 아주 오래된 돌이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돌에 새겨진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글쎄다... 글자의 선명도가 약해서 쉽게 알아내기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어디한번 해석해 볼까나?”

도란의 말에 오공의 기대감은 커졌다. 돌을 한참을 살펴보던 도란이 입을 열었다.

“이 큰 글씨는 찬란한 빛 이고...”

“찬란한 빛이요?”

 

오공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도란은 집중하며 돌멩이에 새겨진 작은 글씨들을 살피더니 다시 말했다.

 

“작은 글씨들의 내용은 이러하구나. 빛의 신 아델로니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허락받지 못한 자... 결코 빛의 석상을 깨우려 하지 마라... 어둠의 힘이 네 영혼을 집어 삼킬 것이다...”

 

도란은 글을 더 읽어 내려가고 싶었지만 세월의 흔적 때문에 희미해져버린 글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구나. 대체 누가 이런 무서운 글들을...”

“저기, 실은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어요.”

 

오공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간밤에 꾼 악몽을 도란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도란은 믿기 어려운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안색이 굳어졌다.

 

“대체 이런 악몽을 왜 꾸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

“사부님?”

“혹시 ‘황금석상’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황금석상이라면...”

 

오공은 순간 오래전 그의 할아버지 오반에게서 석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이 섬 중앙에는 커다란 신전이 있었는데 오반의 말에 따르면 신전 안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석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가 신전과 석상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석상을 직접 본 사람은 백 년 전 아이오니아를 처음 개척한 오청과 그의 제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그 석상을 신성시 여겼고, 신전을 지나갈 때 마다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섬을 개척한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자기 섬 전체가 흔들렸다. 그로인해 신전은 무너지고 황금석상은 늪지에 잠겨버렸다.

 

그 후, 몇몇 사람들은 석상을 꺼내기 위해 황금석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돌아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황금석상을 찾아간 사람이 가끔 있었지만 모두 같은 증상으로 죽어버렸다.

 

그 때문에 오청은 황금석상이 있는 지역 일대를 저주받은 장소로 지정했고,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황금석상은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어쩌면 꿈에서 본 그 석상들이...’

 

오공은 지난밤 꿈속에서 보았던 석상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싹한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 * *



 

도란의 연구실에서 나온 오공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숲속을 걷고 있었다. 도란은 혹시나 오공이 황금석상을 찾으러 가게 될까봐 걱정했고, 절대 근처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꿈에서 본 석상과 이곳의 황금석상이 같은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제 와서 돌을 버리고 없는 일로 치부해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저주받은 지역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리고 저주보다 무서운 것은 할아버지 오반의 진노였다.

 

‘황금석상이 잠들어 있는 늪지대가 저주 받은 장소가 된지 백년이 다되었어. 그 이후에는 그곳을 방문한 자가 없었지만 만약 할아버지께서 내가 그곳에 간 것을 알게 되신다면...’

 

아무래도 황금석상을 조사하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발동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꿈에서 본 석상들은 분명히 낯이 익지가 않았었다.

 

‘이거 벌써 황금석상의 저주에 걸린 듯한 기분이로군.’

 

오공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황금석상은 섬 중앙부에 위치했다고 들었어. 그곳까지 가려면 밀림 속을 통과해야 하고... 무엇보다 밀림 속은 독벌레들로 가득하니... 최고만을 추구하는 나로써도 이건 미친 짓이야.”

 

어느새 태양은 노을이 되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공은 걸음을 멈추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로 보며 중얼거렸다.

 

“황금석상...”

 

그때였다.

 

샤샥! 샤샥! 샤샥!

 

누군가의 재빠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움직임은...!”

 

오공은 경직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이곳까지!”

 

오공은 황급히 주변에 있는 큰 바위 뒤로 자신의 몸을 숨겼다. 그리고 바위 뒤에서 빼꼼히 얼굴만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곧 오공의 시야에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2미터가 훌쩍 넘는 큰 키에 백색의 천 옷을 걸쳤고, 끝이 뾰족한 모양의 독특한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눌러쓴 모자 때문에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굳게 다문 입술로 보아 그다지 밝아 보이는 표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섬세하다 못해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공중을 걸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오공은 최대한 숨소리를 죽이며 중년의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오공이 숨어있는 바위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고 노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게으른 원숭이 한 마리는 역시 오늘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군. 도란에게는 문턱이 닳을 정도로 방문하면서 나는 완전히 잊었나 보구나. 장차 그 원숭이는 그저 약초나 캐러 다니는 한심한 원숭이가 될 것 이 뻔하다.”

 

그의 나지막한 저음의 목소리가 오공의 귓가에 크게 울렸다.

 

“오반 어른께서는 분명 도란에게 지식을 배우고 나에게는 무술을 배우라고 명하셨지만, 이 놈은 쓸데없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니 장차 풀 한포기를 들고 적의 칼을 상대해야하는 신세가 되겠구나.”

 

남자의 중얼거림을 들은 오공은 화가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튀어 나갈 뻔했지만 꾹 참았다.

 

‘사부님의 훈련은 하나 같이 전부 견디기 어려운 것들뿐인데, 버틸 만 하다면 제가 왜 도망 다니겠습니까? 계속해서 훈련을 받다가는 황금석상의 저주처럼 머지않아 미쳐버릴 겁니다!’

 

백색의 천 옷을 걸친 남자는 바로, 오공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마스터 이’였다. 마스터 이는 도란처럼 원숭이가 아닌 인간 이었고


‘우주 검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마스터 이를 어려워했다.

 

그의 딱딱하고 과묵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친근하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 과묵함이 너무나 지나쳐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는 섬 북쪽 언덕에 허름한 집에 홀로 지내고 있었다.

 

마스터 이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는데 그것 바로 ‘괴짜 검사’였다.

 

무더운 여름에는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고, 폭우가 내릴 때는 해안가 절벽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며 단식에 들어가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잠을 자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음식은 날것만 골라 먹었다.

 

그의 기이한 행동에 주위 사람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무술을 배우는 것 또한 보통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오공은 마스터 이에게 무술을 배운지 3년이 되었다. 그는 오공의 몸에 무거운 돌을 메달아 절벽을 오르게 했고, 쇳덩어리로 만든 봉을 하루에 수천 번씩 휘두르게 했다.

 

그것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지쳐버린 몸 상태로 마스터 이와 대련까지 해야 했다.

 

좋게 말해 대련이지, 그것은 오공이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구타였다.

 

오공은 최대한 맞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몸을 움직이며 피해보았지만 결과는 늘 기절이었다.

 

그렇게 훈련을 한번 하고 나면 오공은 며칠 동안 몸살로 앓아누워야만 했다. 무엇보다 훈련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앓아 누워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오공은 점점 꾀를 부려 마스터 이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스윽.

 

마스터 이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공, 그놈은 허약한 원숭이다. 오공, 그놈은 세계 최고의 약초꾼이 될 것이다. 오공 그놈은...”

 

마스터 이는 한 걸음씩 걸을 때 마다 오공의 욕을 했다. 그의 모습이 멀리 사라 질 때까지 오공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수십 마디의 욕을 더 들어야만 했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오공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과묵하기만 한 사부님의 욕을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욕쟁이 검사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게 될 거야.”

 

오공은 마스터 이가 사라진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몇 걸음도 못가서 그는 멈춰 섰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런 멍청이. 사부님은 내가 바위 뒤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욕을 하신 거였어.”

 

오공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마스터 이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용케 피했다고 생각만 했구나.”

 

오공은 마음을 다잡고 마스터 이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훈련 방식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죽기야 하겠어? 까짓것 며칠 앓아 누워버리면 그만이지!”

오공은 최대한 마스터 이의 좋은 점만을 골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은 의외로 좋은 구석도 있으셔...”

 

아이오니아의 어부들이 고기를 많이 잡아오지 않아 식량이 부족할 때 항상 마스터 이는 배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반드시 엄청난 양의 고기를 배에 한가득 싣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기잡이 실력보다 더 뛰어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검술실력이었다.

 

남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마스터 이었기에 그 누구도 그가 얼마나 강한지 확실하게 아는 이가 없었다. 그저

마스터 이의 무술이 이곳 아이오니아에서 가장 강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가 실력을 드러낸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수년전, 빌지워터 해적들이 아이오니아에 쳐들어왔을 때의 일이었다.

 

선두에선 마스터 이의 검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십 수 명의 해적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해적 두목에게 돌진하여 단칼에 베어버리자 이에 경악한 해적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떠한 해적도 아이오니아에 쳐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이때부터 미지의 섬 아이오니아의 존재가 발로란 대륙 일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도란 사부님은 인자하시기 때문에 가깝게 지냈던 것이 사실이야. 하지만 마이 사부님과는 그러질 못했어. 이 순간부터 사부님을 피해 다니지 않겠다.”

 

오공은 마음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하는 사이 마스터 이가 머물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허름하다 못해 쓰러질 정도로 낡은 집이었다. 오공은 문을 두드린 후 안에 들어왔지만 마스터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에 계신가보구나.”

 

오공은 어느새 인근 동굴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 위치한 이 동굴 또한 마스터 이가 기거 하는 곳이었다. 오히려 집보다 이 동굴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부님! 한심한 원숭이 오공이 벌을 받으러 왔습니다!”

 

동굴 입구에 선 오공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동굴안쪽에서 하나의 음성이 나지막이 울려나왔다.

 

“나의 벌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칼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오공이 씨익 웃으며 큰소리로 다시 외쳤다.

 

“저를 베어버리시면 하나뿐인 제자를 잃게 될 텐데요?!”

 

동굴 안은 조용했다. 잠시 후 검을 빼들고 밖으로 나오는 마스터 이의 모습을 보자 오공은 움찔거렸다.

 

“에이, 사부님. 정말 저를 베어버릴 생각은 아니시겠죠?”

 

오공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묻자, 마스터 이는 하나의 감정도 들어있지 않는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오늘부터 너에게 ‘우주류 봉술’을 전수할 것이다.”

 

엉뚱한 답이었다.

 

“네? 우주류 봉술을요?”

 

혹독한 훈련을 받아온 지 3년째.

 

그런데 드디어 마스터 이의 입에서 정식으로 봉술을 전수해 주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공은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고 자신의 귀를 후벼 팠다.

 

“이 봉을 받아라.”

 

마스터 이가 어깨에 메고 있던 봉을 오공에게 건넸다.

 

이에 오공은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추며 두 손으로 봉을 받아들었다.

 

본격적인 우주류 무술의 입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