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반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우선 너는 지식학회로 가서 그곳의 학회장인 피어스님을 만나야 한다. 그분이 너의 앞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오공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로란으로 가게 되는 것도 놀라웠지만 지식학회로 가야하다니...


 그는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오반의 말을 경청했다.


 “대륙은 지금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고 있단다. 이곳 아이오니아의 원숭이들은 비록 그 숫자가 적은 집단이지만 그들은 우주류 길드에서 활약했던 원숭이들의 후손이다. 따라서 발로란이 극악무도한 세력들에 의해 장악이 된다면 우리로써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그는 잠시 말을 끊다가 힘 있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아이오니아의 미래는 너에게 달려있다. 너는 무술과 더불어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훗날, 이곳 원숭이들을 이끌 지도자가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공이 결심이라도 한 듯 힘차게 대답했다. 그토록 원하던 발로란 대륙! 두려움과 긴장감이 있었지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공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나쁜 유혹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곳을 떠나는 순간 너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너의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널 믿는다.”


 오반은 따스한 시선으로 오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떠나기 전에 두 사부님을 찾아가 작별인사를 하도록 해라.”


 오공은 큰절을 올린 후 방을 나섰다.


 ‘드디어 간다! 발로란으로!’


 오공은 뛰기 시작했다.


 신선한 아침바람이 획 스쳐지나 갔다. 멀리 도란의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꽝!


 오공이 연구실의 문을 부술 듯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도란 사부님! 드디어 발로란으로 가게 되었어요!”


 도란은 등을 돌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공을 향해 돌아섰다.


 “이미 알고 있단다.”
 “사부님...”


 오공은 그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은 그 순간 라이즈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점이었다. 도란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침착함이 강하게 보였다.


 “발로란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험난한 대륙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란다.”

 도란은 들고 있던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이것을 받거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책은 도란이 수년간 작성한 여러 가지 치료법이 적힌 책이었다. 이 책에는 치료에 관련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부님...”


 오공은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었다.


 도란은 뒷짐을 진채 몸을 돌렸다.


 “마스터 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보아라”


 오공은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도란의 심정 또한 그와 같았다.


 어쩌면 도란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오공이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부처럼 아껴온 오공이었다. 그가 떠나려는 지금 도란으로선 실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님. 절 받으세요.”


 오공은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도란의 집을 나선 오공의 마음은 매우 차분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마스터 이의 거처를 향해 걸었다.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내가 떠나고 나면 할아버지는 물론, 두 사부님은 허전해 하시겠지?”


 오공은 마스터 이의 앞에서 만큼은 다르게 처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귓가에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원숭이 녀석. 썩 달려오지 못할까?”


 오공이 시선을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응시했다.


 마스터 이가 언던 위에서 우뚝 선채로 오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촌장께서는 허락 하셨느냐?”
 “네. 사부님.”


 오공이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마스터 이는 눈을 부릅뜨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핫! 그렇다면 기뻐서 날뛰어야 할 판인데, 어찌 그리 죽을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것이...”


 오공은 어리둥절했다.


 마스터 이는 도란과는 다르게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휙!


 마스터 이는 몸을 날려 언덕에서 날아올라 단숨에 오공 앞에 멈춰 섰다.


 “발로란은 거대한 대륙이지만 너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크기다.”


 마스터 이는 오공의 어깨를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만큼 그곳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그리고 너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하는 자를 경계해라. 쓸데없는 일에는 절대 끼어들지도 말고...”


 마스터 이는 발로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여러 가지 당부를 했다.


 정작 마스터 이 또한 발로란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마치 두 사부님이 서로 뒤바뀐 것 같구나.’


 그러나 오공은 그런 생각을 이내 지워버리고 진지한 자세로 마스터 이의 충고를 새겨들었다. 그 모든 것이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이는 몇 가지 당부를 하더니 어깨에 메고 있는 쇠봉을 건넸다.
 

 “새로운 봉이다. 받아라.”
 “이 봉은...”


 봉을 건네받은 오공은 만면에 흥분의 빛을 띤 채 봉을 살폈다. 붉은 색의 쇠봉은 그 전체에 화려한 용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것의 이름은 ‘여의봉’이다.”
 “사부님!”


 오공이 크게 감격했다.


 여의봉은 마스터 이가 깊은 바다 속에 있는 철을 구해 5년에 걸쳐 깎아서 만든 명기였다. 그리고 이 여의봉은 주인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큼 길이가 늘어나는 신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마스터 이가 여의봉을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무기 제작자로 활동했던 도란 또한 알지 못했다.


 “이걸 제가 받아도 되는 건가요?”


 오공은 자신에 대한 마스터 이의 애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 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섬에만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무기다. 이제 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 여의봉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공, 마지막으로 너의 우주류 봉술을 보고 싶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죠.”


 오공은 그에게서 받은 여의봉을 천천히 휘둘렀다.


 부우웅!


 청아한 바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대단하구나.”


 햇빛을 머금은 여의봉은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부우우웅!


 오공은 춤을 추듯 우주류 봉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여의봉이 휘둘러질 때 마다 사방은 갑자기 폭풍 같은 에너지에 휩싸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스터 이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오공이 자라오던 수많은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오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 * *



 사흘 후, 포구.


 드디어 오공은 주민들이 모두 모여 배웅하는 가운데 배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반은 자신의 거처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는 손자를 지켜보았을 뿐, 포구에는 나오지 않았다.


 도란은 작별인사말을 뜨거운 포옹으로 대신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오공과 도란의 눈빛은 뜨거웠다. 라이즈가 이곳을 다녀간 순간부터 도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의 의미를 오공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도란 사부님, 언젠가 발로란에서 큰 뜻을 펼칠 때가 있을 겁니다!’


 오공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란은 깊은 시선으로 오공을 응시한 후 몸을 돌렸다.


 마스터 이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섰다.


 “자! 어서 떠나라.”
 “사부님...”


 오공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무뚝뚝했던 마스터 이는 최근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오공에게 또 다른 용기를 심어다 주었다.


 “모든 가르침들을 결코 잊지 않을게요.”


 마지막 말을 끝마친 오공은 배에 올랐다.


 돛을 올린 배는 포구를 출발했다.


 배를 띄우기에는 너무나 좋은 날씨였다.


 떠나가는 오공을 보며 아이오니아의 원숭이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중 가장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 건 마스터 이였다.


 배는 점점 멀어져 작은 점이 되자, 마스터 이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망망대해.


 배가 아이오니아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오공은 갑판 위에 서서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하루만 더 가면 발로란에 도착하겠구나.”


 그의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아이오니아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 그 두근거림은 발로란 대륙이 점점 다가올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과연 발로란 대륙은 상상한대로 넓고 광활한 곳일까? 그곳에서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될까?


 “이제껏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었다.”


 그러나 오공은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라이즈의 딸, 레이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를 다시 한 번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란을 통해 라이즈가 전쟁학회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학회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나와 함께했던 일들을 떠올리자, 그의 입가엔 쓴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더욱 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배를 몰고 있는 노인이 그를 향해 외쳤다.


 “이보게, 오공! 곧 바람이 거세질 것 같으니 선실 안으로 들어가 있게.”


 오공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


 오공은 방긋 웃으며 선실 안으로 움직였다.


 밤이 되자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노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바람이 심상치가 않았다. 바다를 보며 자라온 오공이었기에 바다의 무서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쿠르르르... 쏴아!


 거대한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들끓었다.


 노인의 안색은 심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는 거대한파도 위에서 요동치는 배 위에서 선원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며 지휘하고 있었다.


 선실에 있던 오공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걸?”


 그는 선원들의 표정에서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었다. 평생을 파도와 싸워온 그들이었지만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처럼 엄청난 폭풍은 배를 지휘하는 노인을 비롯해,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쿠르르르... 촤아!


 콰광!


 우지끈!


 순식간에 돛대가 부러져 나갔다. 배는 삽시간에 방향을 잃었다.


 “으악!”


 선원 한명이 쓰러진 돛대에 깔려 비명을 질렀다. 동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거대한 파도가 배위를 휩쓸었다. 돛대에 깔린 선원을 비롯한 선원 몇몇이 파도더미에 휩쓸려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노인은 안간힘을 다해 키를 잡고 배를 조종했다.


 오공 또한 그를 도와 같이 키를 잡았지만 배는 이미 기능을 상실해버린 뒤였다.


 “으으...!”


 오공이 절망과 공포로 떨었다.


 쿠그그그... 쏴아!


 파도더미가 다시 배 위를 덮쳤다.


 “오공!”


 오공의 몸이 휘청거리자 노인이 외쳤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안 돼!”


 오공이 사력을 다해 키를 잡으며 절규했다.


 엄청난 파도는 다시 배를 덮쳤다. 순식간에 배는 뒤집히며 침몰했다.


 오공은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며 수면 위로 나왔다.


 바다 위로 떠올랐을 때 시야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 노인, 선원들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모두 죽어버렸어...”


 오공은 눈앞의 펼쳐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이대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반드시 살아야해!”


 쿠그그그!


 콰아아!


 거대한 파도는 셀 수도 없이 오공을 휩쓸었다.


 도대체 얼마를 헤엄친 것일까? 오공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헤엄쳤다. 만약 몸속의 마나가 증가하지 않은 몸 상태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떠 있기조차 힘든 폭풍 위의 바다였다. 오공의 점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풍과 파도는 가라앉을 생각이 없었다.


 오공은 무의식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끝인 건가...?”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바로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