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무아지경에서 황금석상에 대한 잠재의식이 오공을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윽! 머리가...!”


 두통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서도 오공은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헤헤... 어쨌든 성공!”


 오공은 눈앞에 펼쳐진 황금석상을 응시했다.


 하지만 막상 황금석상을 눈앞에 대하고 보니 도란이 이야기한 저주가 생각났다.


 “겁먹지 말자. 난 최고라고!”


 오공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늪지 안으로 들어갔다.


 석상들은 늪지의 물에 반쯤 잠겨있었고, 황금석상이라고 불렸던 것과는 달리 오랜 세월로  지난 지금은 그 색이 바래져 버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석상들은 부서지거나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석상의 얼굴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쪽 면의 얼굴은 인자한 미소, 다른 한쪽 면의 얼굴은 악마와 같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꿈속에서 봤던 석상과 똑같아!”


 지금의 상황들이 악몽 속에서 겪었던 장면과 흡사해 지자 오공은 왠지 모를 공포감을 느꼈다.


 바로 그때.


 콰르르르!


 석상이 잠겨있던 늪지의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그리고 그 물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 광경은 꿈속에서 본 장면과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면 꿈에서는 바닷물이었고, 지금은 늪지대의 물이라는 차이뿐이었다.


 늪지의 수면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석상들은 완전한 모습을 드러났다.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은 오공은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걷기 시작했다.


 한 참을 걷던 오공은 하나의 석판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석상들이 즐비하게 있는 이곳에서 어울리지 않게 석판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오공은 석판을 뒤덮고 있는 진흙을 제거했다.


 진흙을 제거한 석판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새겨져있었다.


 “이 글자들은 돌에 새겨진 글자와 같은 글자다!”


 놀란 오공은 황급히 품속에서 검은 돌을 꺼내들었다.


 그의 말대로 석판에 새겨진 글자의 앞부분은 돌에 새겨진 글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빛의 신 아델로니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허락받지 못한 자... 결코 빛의 석상을 깨우려 하지 마라... 어둠의 힘이 네 영혼을 집어 삼킬 것이다...]


 “나머지 글의 내용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공은 석판을 찬찬히 앞뒤로 살펴보았다.


 순간, 석판의 아래쪽 부분에 깊이 파여져 있는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오공은 구멍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돌을 서판의 구멍 속으로 끼워 넣었다. 신기하게도 검은 돌은 석판의 구멍 속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들어갔다.


 “오옷!”


 오공의 입에서 탄성이 크게 나왔다.


 바로 그때, 놀라운 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석판에서 엄청난 양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쿠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규칙 적으로 세워진 석상들이 땅의 진동을 받으며 조금씩 위치가 옮겨지기 시작했다.


 “말...말도 안 돼!”


 수백여 개의 석상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광경!


 오공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시간이 지나자 땅의 진동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석상들은 정확히 대열을 맞춰 멈춰 섰다.


 “대체 무슨 힘으로 이 많은 석상들이 움직인 거야?”


 석판에서 뿜어져 나오던 광채는 어느새 잦아들었다. 정신을 차린 오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석판에서 뿜어져 나왔던 광채가 이번에는 석상들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들은 서서히 사람의 모습을 한 환영으로 변해갔다. 하나의 석상마다 얼굴 생김새가 똑같은 사람의 모습을 한 환영이었다. 환영의 옷차림은 동물의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환영속의 사람들은 저 마다 알 수 없는 동작을 취해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공은 단 한순간도 환영 속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움직임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무술의 한 동작 같아 보였다.


 “이들은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아.”


 오공은 희열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환영 속사람들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따라 하기 시작했다.


 동작들을 따라하면 따라할수록 그의 머릿속은 환하게 밝아졌다. 수백여 가지의 동작들의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 암기되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동작들을 하나하나 외어나갈 때 즈음.


 “으윽!”


 오공의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불덩이처럼 일어났다.


 뜨거운 열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오공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해 그 기운을 제어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 몸의 털은 쭈뼛쭈뼛 솟아올랐고, 피부는 시뻘건 빛으로 변해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몸에 남아 있던 옷 조각들이 재로 변해 떨어져나갔다.


 내셔의 핏속에 잠재되어 있는 열기가 마지막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버텨내야한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상황에서도 고통을 떨쳐내기 위해, 그는 환영들의 움직임을 힘겹게 외워나갔다. 하지만 고통은 점점 커져만 나갔다.


 ‘아...안 돼! 버틸 수가 없어!’


 우우웅!


 갑자기 그의 전신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며 사방으로 퍼져갔다.


 콰지직!


 그 여파에 주위에 있던 석상들이 박살이 나자 환영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쿠구구구!


 대지가 진동했다.


 ‘으으!’


 오공의 눈동자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꽉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체내의 에너지가 ‘쾅’ 하고 뿜어져 나오는 순간, 오공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와 함께 대지의 진동도 멈추었고 주변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했다.


 오공의 의식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순간,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 * *



 이른 새벽.


 포구 한쪽에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있었다. 포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원숭이 어부들이 가족들과 나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평화로운 광경을 배경으로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촌장 오반이었다.


 항상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오는 그였다. 이 시간은 산책과 더불어 주민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반은 늘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고, 고민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의 모습은 보통 때와는 달랐다.


 근심이 가득한 사람은 마을주민이 아닌 오반 그 자신이었다. 며칠째 그의 얼굴에서는 온화한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손자, 오공의 일 때문인 것이다.


 “촌장님. 오공이는 좀 어떻습니까?”


 모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반에게 인사를 건네는 가운데 중년의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반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아직까지 치료 중에 있네.”
 “도란님께서 치료하고 계시니 곧 건강해지겠지요.”
 “걱정해줘서 고맙네.”
 “모두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황금석상을 보러 갈 생각을 하다니...”


 중년의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황금석상의 저주를 염려하고 있었다.


 오반이 그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네만... 만약 저주로 인해 죽게 된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그의 얼굴은 걱정스러움과 두려움의 빛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 말을 남긴 채 그는 뒷짐을 쥐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년의 남자가 중얼 거렸다.


 “우리가 아무리 걱정한들, 촌장님만 할까...”


 도란의 집.


 정갈한 느낌을 주는 실내의 침대 위에 오공이 상의 탈의를 한 채 누워있었다.
 

 “아얏! 저를 고슴도치로 만드실 작정이에요?”


 오공의 몸은 수십여 개의 침으로 박혀있었다.


 “엄살떨지 말거라! 포션이나 약초보다도 제대로 된 회복 효과를 보려면 이 방법뿐이란다.”


 도란이 두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오공은 울상이 되어 투덜거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에요?”
 “네 녀석 몸 안에 있는 내셔의 독이 사라지기 전까지다!”


 오공이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셔의 독을 사라지게 만드는 포션은 없는 건가요? 대체 이런 요상한 치료법은 언제 배우셨어요?”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도 겁도 없이 황금석상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자업자득이다!”
 “헤헤헤... 하지만 황금석상의 비밀을 알아냈잖아요?”


 오공은 아픈 와중에도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는 선택받은 원숭이인가 봐요. 며칠이 지났지만 정신이 멀쩡하잖아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주둥이에도 침을 한방 놔야겠군!”


 도란이 굵은 침을 들었다.


 “잠깐만요! 그건 너무 크잖아요!”


 대침을 본 오공이 비명을 질렀다.
 

 “원숭이 살려!”
 

 잠시 후...


 “저기, 사부님...”
 “왜 그러느냐?”
 “제 몸속에 있는 내셔의 독을 모두 몰아낼 수 있을까요?”
 “글쎄다... 나도 장담할 수 없구나.”


 도란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넌 벌써 죽었을 몸이다. 하지만 이렇게 용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셔의 피를 마신 덕택인듯싶구나. 아무튼 하늘이 너를 도왔다.”


 오공이 도란과 마스터 이에게 발견될 당시, 두 사람은 발견된 상대가 오공이라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온 몸의 털은 검게 변해 있었고, 전신의 근육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먼 거리에서 까지 몸속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고, 황금빛 광채가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주변의 석상들은 모두 부서져 버린 상황이었다.


 발견 된지 사흘이 지나서야 그는 겨우 의식을 회복 할 수 있었다.


 “아무튼, 큰 고비는 넘긴 것 같구나.”

 “그럼, 이 새까맣게 변해버린 털은 어쩌죠?”

 “몸속의 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색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것보다 이제 네가 일어나면 촌장님께서는 널 가만히 놔두지 않으실 것이다.”


 오공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할아버지 오반이 진노하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오공은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히려 저를 칭찬하셔야 해요. 황금석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내셔도 잡았으니까요.”
 “뭐가 어째?”


 도란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오공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특히 도란은 내셔의 체내에 남아있는 독을 체취하며 그토록 원하던 궁극의 포션을 완성시킬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촌장님은 너의 목숨만을 염려하실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도란은 오공의 몸에 박혀있는 침들을 능숙하게 뽑아내며 말을 이었다.


 “선택받은 이는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촌장님께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너의 목숨을 염려하는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으셨을 것이다.”

 “사부님은 끝까지 저에게 겁을 줄 생각이시군요.”
 “하하하... 과연 그럴까? 이제 누가 감히 너에게 겁을 줄 수 있겠느냐. 너의 몸은...”


 도란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눈치 빠른 오공이 되물었다.


 “저의 몸이 왜요? 뭐가 어떻다는 거죠?”


 오공의 질문에 도란은 곤란한 표정으로 오공을 잠시 바라보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흠... 네가 자만에 빠질까봐 당분간 비밀로 하려 했었는데... 너의 피부는 바위처럼 단단해졌고, 몸속에 있는 마나의 양이 수십 배 증가되었다.”
 “.....!”


 오공은 크게 놀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평소 마나가 부족했기에 무술을 완벽하게 시전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내셔의 피를 마신 덕택이겠지. 웬만한 공격과 마법에는 끄떡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독을 견딜 수 있는 저항 능력까지 생겨버렸으니...!"


 도란은 마치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기뻐하며 웃었다.


 오공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주류 봉술을 시전 할 때마다 그토록 마나의 부족함에 아쉬워했었던 자신이었다.
 

 “짐작하건데 지금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아마도 마스터 이를 뛰어넘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