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넨은 ‘킨코우 길드’의 마스터 ‘쉔’의 명을 받고 흑담비석 산맥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엄청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쉔은 전쟁학회와 레드윈드와의 싸움에 일체 관여 하지 말라는 명령도 함께 내린 상태였다. 로렌트 길드를 비롯한 길드연합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벌이는 일에 킨코우 길드가 참견하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하지만 이들은 레드윈드를 토벌하기는커녕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질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케넨은 흑담비석산맥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레드윈드 길드를 조사하는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공과의 일만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흑담비석산맥에 도착하자마자 일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시작은 케넨이 산맥입구에서 로렌트 길드 마스터인 피오라를 비롯, 스트렌 길드 마스터 ‘에이젠’, ‘아트라마’ 길드 마스터 ‘헤인’ 등의 주력 부대를 우연히 만나면서 부터였다.


 케넨이 그들에게 채 인사를 건네기도 전 사방에서 천여 명에 달하는 레드윈드 길드의 병력이 밀물처럼 몰려나와 공격을 해온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만약 피오라님께서 포위망을 뚫고 병력을 협곡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이미 전멸을 당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케넨의 말은 일행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저는 피오라님의 지시에 따라 폭풍평원에 주둔중인 전쟁학회 1군단장 ‘판테온’ 장군에게 구조 요청을 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다보니, 이 꼴이 되었네요. 헤헤...”


 피투성이가 된 케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공은 그런 케넨을 보고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가 레드윈드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면서 얼마나 지독한 고초를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세 분의 마스터님들은 무사한 것인가?”


 르테르가 다그치듯 물었다.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니 무사하실 겁니다. 협곡으로 피신했다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죠.”
 “습격으로 인한 희생자는 얼마나 되는가?”


 이번엔 미즈린이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거의 3분의2가까이가...”


 케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


 로렌트 일행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원래 세 길드의 연합 병력의 숫자는 삼백여 명이었다. 그런데 케넨의 말대로 그중 3분의2의 숫자가 당했다면 백여 명 정도만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르테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망연자실한 기색으로 물었다.


 “폭풍평원이라... 그곳으로 자네가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구조대가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한 삼일은 걸릴 것일세. 아무리 협곡 안으로 피신해 있는 상태라도 삼일동안 견딜 수 없지 않겠나?”


 케넨이 힘 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전쟁학회 1군단이 머물고 있는 폭풍평원입니다. 36개의 군단 중 1군단의 힘이 가장 강하고요.”
 “그야 나도 알고 있네만...”
 “저도 지금의 상황은 무척이나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케넨의 말에 르테르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희망이라니?”
 “포위망을 뚫고 나오던 중 동굴 하나를 발견했죠. 아마 그 동굴을 발견 못했다면 저는 이렇게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레드윈드 녀석들이 추격해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동굴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거죠.”
 “오...!”


 르테르를 비롯한 일행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케넨의 말대로 동굴의 존재는 그들에게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미즈린이 흥분해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협곡으로 가서 그 사실을 알려야겠군!”
 “하지만 포위망을 뚫고 협곡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케넨의 말에 일행은 다시 절망감에 빠졌다.


 겹겹이 이어진 레드윈드의 포위망을 뚫고 협곡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케넨이 일행들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인원들이 협곡으로 떠났다가는 십중팔구 변을 당하게 되겠죠. 이 중에 가장 날렵한 한 명을 골라 그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르테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행 한 명, 한 명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르테르 자신은 물론이고 길드원 모두가 적잖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그중 가장 부상이 가벼운 가엘이 앞으로 나서며 힘 있게 말했다.


 “부마스터님.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가겠네.”


 미즈린이 앞을 막고 나섰다.


 르테르가 선뜩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오공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순간 르테르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 자네가 가준다면 안심일세.”


 미즈린과 가엘은 오공이 나서자 더 이상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공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얼굴에는 신뢰의 빛이 깃들어있었다.


 “반드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오공이 힘 있게 말했다.


 하지만 케넨은 오공이 나서자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너무 나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르테르 일행이 오공에게 대하는 태도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들이 원숭이 녀석을 저렇게 신뢰하고 있는 거야?’


 르테르의 시선이 케넨에게 향했다.


 “이 청년에게 협곡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게.”


 케넨은 탐탁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오공에게 협곡으로 가는 길과 동굴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케넨의 설명이 끝나자, 르테르가 품에서 하나의 카드를 꺼냈다. 그는 카드를 오공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로렌트 길드의 일원임을 알 수 있는 신분증일세. 이것을 보여준다면 자네의 말을 믿을 것이네.”


 오공이 신분증을 받아들었다. 신분증에는 로렌트 길드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오공은 르테르의 신분증을 품에 넣으며 케넨을 바라봤다.


 “이봐, 나에게 줄 것이 하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주려고 했어.”


 케넨이 방긋 웃더니 품에서 돈과 편지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내주었다.


 “내가 이것을 찾아줬으니 돈의 절반은 내꺼야. 나중에 돌려받을 생각이니 잊지 말라고.”


 오공은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 돈을 되찾은 것은 둘째의 문제고, 지식학회의 피어스에게 전해줄 편지를 되찾은 것이 더욱 기뻤다.


 오공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자 케넨이 힘 있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네가 살아있어야겠지.”
 “케넨, 너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니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오공은 케넨에 대한 화가 거짓말처럼 눈 녹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르테르 일행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무사하길 바랍니다.”


 휙!


 휘릭!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르테르는 전신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성공하길 바라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상처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 이에 지금의 자신이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드는 르테르였다.



 * * *



 오공은 흑담비석 산맥의 지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케넨에게 대충 설명을 듣긴 했지만, 피오라 일행이 피신해 있는 협곡을 찾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케넨은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고, 오공 또한 열심히 그 설명을 듣긴 했지만 한 동안 달리다 보니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렸다.


 “협곡을 찾기는커녕, 미아가 되어버렸구나.”


 오공은 점점 조급해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여의봉을 굳게 잡았다. 여의봉의 기운이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 순간 여의봉을 전해주던 마스터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부님...’


 마스터 이의 호탕한 웃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초조한 마음이 진정되고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서 서두르자!’


 그는 다시 한번 케넨의 말을 떠올리면서 산맥의 산세를 살펴보았다.


 “뾰족한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있는 것이 이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했는데...”


 하지만 케넨이 말하는 그런 봉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계속 되는 가운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의 귀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오공은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숨겼다.


 밑을 살피던 그의 시야에 한 무리의 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숫자는 다섯 명,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병장기가 놓여 있었다.


 ‘좀 전에 상대했던 놈들의 무기와 똑같은 것으로 봐서는 저들은 레드윈드 소속...!’


 오공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여의봉으로 향했다. 저들에게 당해 참혹하게 죽은 시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공은 한 번 더 생각을 가다듬었다.


 ‘저들은 협곡의 위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청력을 집중해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지독한 전쟁학회 놈들! 금방 쓸어버릴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도 버티고 있다니.”
 “그러게 말이야. 쥐새끼처럼 협곡 안으로 숨어들어 갈 줄 누가 알았겠나.”


 두 남자의 말에 가운데 앉은 남자가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피오라 때문이다. 그 년은 검술뿐만 아니라 머리 또한 똑똑하다.”


 그는 독백하듯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 날이 밝기 전에 리븐님께서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다.”


 오공은 가운데 앉은 남자가 이들 중 우두머리임을 직감했다.


 그는 하얀 도복을 차림에 가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 양쪽에는 수리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가면에 그려진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은 무척이나 섬뜩해보였다.


 “놈들을 쓸어버린다면 동쪽의 영웅들이 들고 일어 날 것이다. 머지 많아 녹서스에 있는 불멸의 요새의 군대들이 밀고 내려오겠지.”
 “맞는 말이야.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 리븐님 만세!”


 그들은 확신과 믿음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공은 리븐에 대한 저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자, 시작해볼까!’


 결심을 굳힌 오공은 지체 없이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허공에서 땅에 착지하기도 전에 벼락같이 여의봉을 휘둘렀다.


 부웅!


 “.....!”
 “.....!”


 여의봉이 길이가 순식간에 길어지며 휘둘러지자 무리들 중 세 명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나머지 두 명은 크게 놀라 몸을 뒹굴며 잽싸게 공격을 피했다.


 가면을 쓴 남자가 번개같이 수리검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누구냐 넌?”


 그러나 오공은 대꾸하지 않고 같이 몸을 피한 남자의 옆구리에 발길질을 가했다.


 “으윽!”


 묵직한 신음과 함께 공격당한 남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다섯 중 네 명이 제압을 당했다. 이제 남은 인물은 가면을 쓴 남자뿐이었다.


 오공이 몸을 섬광처럼 비틀어 날아오르며 여의봉으로 그의 가슴을 향해 찔러갔다.


 까강!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면을 쓴 남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수리검으로 여의봉을 막아낸 것이다.


 ‘심상치가 않구나!’


 오공이 깜짝 놀랐다.


 그가 멈칫하는 사이에 가면을 쓴 남자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과 함께 공격을 가해왔다.


 채쟁! 챙챙!


 오공은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분신술! 놀라운 기술이지만 우르곳 보다 아래다!’


 그때 가면을 쓴 남자의 음산한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레드윈드 소속의 ‘샤코’다. 넌 누구냐?”


 그 틈에 두 개의 수리검이 오공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휘익!


 오공은 샤코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의봉으로 수리검을 튕겨내며 샤코의 분신을 공격했다. 공격당한 분신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놈이!’


 오공의 반격에 샤코는 순간 긴장했다.


 “놀라운 움직임이군. 전쟁학회 소속이냐? 헌데 그곳에는 원숭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공은 내심 조급해졌다.


 샤코를 빠르게 제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다른 병력이 달려올 것이다. 그전에 끝내버린다!’


 부웅!


 오공은 우주류 봉술을 시전하며 샤코를 공격해갔다. 그와 함께 발차기와 주먹도 사용했다. 우르곳이 사용하던 방법을 흉내 낸 것이었다.


 샤코의 자세가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다. 오공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챙!


 한차례 섬광이 번쩍이고, 두 사람의 동작은 동시에 정지되었다.


 어느새 오공의 여의봉은 샤코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샤코의 가면속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내가졌다.”


 그는 수리검을 떨어뜨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오공은 그의 무릎을 강제로 꿇려 반항하지 못하게 만든 후 말했다.


 “협곡의 위치를 말해라.”


 그러나 샤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보였다.


 “협곡의 위치를 말한다면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샤코가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오공을 바라보았다. 가면에 그려진 얼굴의 사악한 미소에 오공은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쉽게 입을 열지 않겠구나.’


 그리고 주저 없이 여의봉으로 샤코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퍽!


 샤코는 기절한 채 쓰러져버렸다.


 오공은 근처에 쓰러진 다른 남자의 목에 여의봉을 갖다 대었다. 차가운 쇠봉의 한기가 전해지자 그가 눈을 슬며시 떴다.


 “헉! 살...살려주시오!”
 “협곡의 위치를 말한다면 죽이지 않겠다.”
 “협...협곡은 저 방향으로 쭉 가면 나올 것입니다!”


 오공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까지 잘 찾아왔구나.’


 그는 여의봉으로 뒤통수를 가격해 남자를 기절시킨 뒤, 다시 몸을 날렸다.


 휘리릭!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