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이 건네받은 봉은 쇠로 만든 봉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사용했던 쇠봉의 무게보다 훨씬 가볍고 단단했다.

 

“너에게 지금부터 가르칠 우주류 봉술은 크게 파쇄와 회전으로 나누어져있다. 본래 이 봉술은 우주류 길드의 봉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내가 가르칠 새로운 우주류 봉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마스터 이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오공을 바라보더니 질문했다.

 

“왜 차이가 있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아이오니아의 우주류 무술은 우주류 길드 출신이었던 오청 어른께서 새롭게 변형해서 만드셨기 때문이죠.”

 

대답과 함께 오공은 할아버지 오반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발로란 대륙 남쪽 일대 정글 숲에 위치한 우주류 길드는 한때는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었다. 그 위세의 절정은 당시 우주류 길드를 이끌고 있던 ‘마스터 초우’가 주도했다.

 

원숭이 오청은 그런 마스터 초우에게 무술을 전수 받았었고 곧, 스승이었던 그를 뛰어넘을 만큼 강해졌다.

 

그 즈음해서 오청은 우주류 길드의 무술이 단순히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하는 것에 염증이 나있었다.

 

그리하여 오청은 기존의 우주류 무술을 기본으로 한 새로운 무술을 창안하기에 이르니, 그것은 바로 생각만 해도 현실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우주류 무술이었다.

 

그러나 마스터 초우가 죽은 후, 새로운 마스터가 된 ‘마스터 췐’은 오청의 새로운 우주류 무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술이 너무 영적인 것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췐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주류 무술을 오청이 멋대로 손상시켰다는 이유 때문에 오청이 창안한 무술을 금지시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구실일 뿐, 마스터 췐은 평소 오청의 능력을 시기하고 있었다.

 

오청의 천재성은 마스터 췐으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선 오청이 만든 무술이 우주류 길드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오청은 마스터 췐에게 큰 실망을 느끼며 한탄했고, 분노했다. 고집이 센 오청은 마스터 췐의 명령을 거부해버렸다.

 

그러자 마스터 췐은 기다렸다는 듯, 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오청을 길드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에 오청은 자신을 따르는 원숭이와 소수의 인간들을 이끌고 정글을 떠나 아이오니아로 청작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오청이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났다.

 

마스터 췐은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청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한번 돌아선 오청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오청은 나이가 들게 되고, 죽기직전이 되어서야 한 가지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언제든 우주류 길드가 큰 위에 처해질 때 도우라는 유언이었다.

 

오공의 뇌리에 오반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사이...

 

마스터 이는 대충 깎아 만든 목봉을 들고 천천히 우주류 봉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잘 보거라. 한 가지라도 움직임을 놓친다면 뒤죽박죽 될 것이다.”

 

오공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마스터 이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목봉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동작이었지만 봉술이 원호를 그릴 때마다 새 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 엄청난 압박감이 전해졌다.

 

“봉뢰... 봉풍... 봉수...”

 

동작들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오공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으며 마스터 이의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암기해갔다.

 

봉술을 시전 하는 마스터 이의 평온한 표정과는 달리 오히려 그것을 지켜보는 오공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했고, 얼굴 곳곳에 땀방울이 맺히기까지 했다.

 

모든 동작을 마친 마스터 이가 오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 외었느냐?”

 

오공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몸의 동작은 다 외웠지만 봉의 움직임은 아직...”

 

오공의 대답에 마스터 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그는 설마 이 많은 동작들을 한 번에 외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단 것이다.

 

하지만 마스터 이는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여주겠다.”

 

마스터 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느릿느릿하게 우주류 봉술을 시전했다. 잠시 후, 시전을 끝마친 마스터 이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공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선채로 마스터 이의 동작들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그리고 자신도 몸을 움직여 우주류 봉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하늘은 은은한 달빛과 무수히 많은 별들의 광채로 수놓아 졌다.

 

‘참으로 놀라운걸. 이 봉술은 한번 시전하면 상대를 제압하기 전까지 멈출 수 없도록 되어 있어!’

 

오공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동작을 반복하면 할수록 우주류 봉술은 점점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현재 나의 마나(mana)로는 이 봉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전하기가 무척 어렵구나!’

 

오공은 지금에서야 왜 마스터 이가 평소 혹독한 훈련을 시켰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모든 훈련들이 몸속에 잠들어 있는 마나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임을 지금에 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붕! 붕!

 

오공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우주류 봉술을 익혀나갔다. 목은 바짝 말랐고, 들고 있는 쇠봉의 무게는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날은 다시 밝아지고 동쪽 바다 수평선으로 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오공은 그때서야 동작을 멈추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는 갈매기 떼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오공은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반드시 저 바다를 건너, 발로란 대륙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최고가 되겠어!”

 

발로란 대륙!

 

오공에게 있어 발로란 대륙으로 가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아이오니아에서 발로란 대륙을 다녀온 사람이라곤 도란뿐이었다. 오공은 그에게 발로란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곤 했다.

 

오공이 각오를 다지고 있을 그 때, 그는 바다 저편에서 섬으로 다가오는 하나의 점을 발견했다.

 

‘범선이다!’

 

점점 다가오는 배는 이곳의 어선이 아닌 난생 처음 보는 범선이었다. 오공은 바닷가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구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는 범선을 지켜보았다.


* * *

 

범선이 가까워 오자, 오공의 심장이 쿵쾅 거리며 요동쳤다.

 

어느새 포구에 정박한 배안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는 아이오니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인물은 중년의 대머리 남자였다. 검정색 슈트를 걸친 그의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피부색은 보라색이었다.

 

‘인간의 피부색 치고는 상당히 독특하구나.’

 

그의 뒤를 따라 한 명의 소녀와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모습을 보였다.

 

오공의 시선은 소녀에게로 재빠르게 고정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한 소녀는 난생 처음 보았다.

 

소녀는 황색의 천 옷을 걸쳐 입었고, 커다란 눈망울은 반짝 거렸다.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에 오공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중년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소녀 피부색은 보라색이었다.

 

“아버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은 처음 봐요!”

 

소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탄했다.

 

중년의 남자는 동감이라도 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죠?”

“사전에 연락도 없이 방문을 했으니 그런듯싶구나. 섬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중년의 남자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시선이 한곳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겠군.”

 

중년의 남자가 주시하는 방향은 오공이 숨어있는 바위 쪽이었다.

 

오공은 순간 뜨끔했다.

 

중년의 남자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라이즈라고 합니다. 바위 뒤에 계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오공은 잠시 망설였지만 호흡을 길게 내쉰 후, 바위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즈는 상대가 원숭이임을 확인 하자 살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부드럽게 물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인가 보군요?”

 

오공은 힐끗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처음 본 원숭이의 모습에 신기한 동물이라도 발견한 듯, 위아래로 오공을 훑어보았다. 오공은 왠지 기분이 상하는 느낌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으니깐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것이요?”

 

그의 퉁명스럽고도 건방진 말투에 라이즈는 살짝 당황했다.

 

소녀의 오른쪽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갔다.

 

“말투가 왜 저래?”

 

라이즈가 소녀를 제지하며 다시 예의를 갖추고 오공의 질문에 답했다.

 

“나는 도란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오공은 그가 도란을 찾아왔다는 말에 멈칫했지만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그 분과는 무슨 관계죠?”

“아주 오래전에 그와 함께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 했었던 친구 사이입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져서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것이죠.”

 

라이즈가 대답하는 순간에도 오공의 시선은 줄곧 소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가까이서 보니깐 더 귀엽구나. 대륙의 여자들은 모두 저렇게 생겼나?’

 

오공의 시선이 다시 라이즈를 향했다.

 

“친구라는 증거가 있나요?”

 

계속되는 오공의 건방진 말투였다. 이쯤 되면 아무리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도 화가 날만했다.

 

소녀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그러나 라이즈는 계속 소녀를 제지하며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다.

 

“상당히 의심이 많군요.”

“예전에도 이렇게 범선을 이끌고 섬을 방문한 자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해적이었다죠.”

“뭐? 해적?!”

 

해적이라는 말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소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숏소드를 뽑아들고 오공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진작부터 소녀를 살피고 있던 오공이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소녀가 휘두르는 검을 이리저리 피했다. 공격이 계속 실패하자, 소녀는 더욱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가해왔다.

 

대수롭지 않게 소녀의 공격을 피하던 오공의 표정이 굳어졌다. 초반의 공격과는 다르게 소녀의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워져만 갔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호, 제법이구나. 자칫하다가는 당하겠는걸!’

 

오공은 마스터 이에게 전수받은 권법으로 소녀의 공격을 피해가며 반격을 시작했다.

 

기세등등하던 소녀의 공격은 오공의 반격으로 자세가 흐트러졌다. 오공은 그 틈을 놓치기 않고 매섭게 권법을 시전해 나갔다.

 

오공의 주먹과 발차기를 힘겹게 피하던 소녀는 자신이 밀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즈와 뒤를 따르던 무리들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떠올랐다.

 

소녀의 검술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로 대등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저것이 아이오니아의 무술?’

 

라이즈의 눈빛이 흔들렸다.

 

‘예측 불허의 움직임이군.’

 

라이즈는 이곳 아이오니아의 무술이 발로란 대륙 남쪽에 위치한 우주류 길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류 무술의 위력은 어디까지나 무기를 사용할 크게 발휘 되었다.

 

‘저 동작들은 우주류 무술의 기반을 두고 있는 움직임이 아니로구나!’

 

오공의 움직임은 변화무쌍하면서도 예리했다.

 

하지만 라이즈는 알지 못했다.

 

오공이 현재 시전하고 있는 권법은 마스터 이가 만든 것임을. 그는 이 권법을 오공에게 전수했음에도 이름조차 짓지 않았다. 마스터 이의 전공은 권법이 아닌 검술과 봉술이었기에 권법은 그저 우주류 봉술을 시전하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마스터 이의 존재가 대륙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즈의 눈에 오공의 몸놀림은 생소해보였던 것이다.

 

퍼퍽!

 

“아얏!”

 

밀리기만 하던 소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공의 주먹이 소녀의 어깨를 강타한 것이다. 소녀의 자세가 심하게 흐트러졌다. 아무래도 몇 번의 공격을 더 주고받다가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라이즈의 중얼거림이 소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집중해라. 너의 마나를 검에 집중시켜.”

 

소녀는 라이즈의 조언대로 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일순간 검 주변으로 푸른빛이 살짝 감돌았다. 그러자 상황은 전혀 반대로 바뀌었다. 소녀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더니 오공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이 아닌가?

 

‘남자의 말 한마디에 움직임이 달라졌다!’

 

소녀의 반격에 오공은 계속 뒤로 밀려났다.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무리였다. 소녀의 공격은 단순하면서도 매서웠다.

 

‘어디한번 시험해 볼까?’

 

오공은 갑자기 공격과 수비를 적절하게 조절했다. 빠르기만 하던 그의 움직임은 갑자기 느려지다가 엉뚱한 동작으로 까지 변환 시켰다.

 

그 시도는 훌륭했다. 오공의 알 수 없는 움직임 때문에 소녀는 다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퍼퍽!

 

“아얏!”

 

소녀의 어깨가 다시 한 번 강타 당했다.

 


라이즈가 감탄하며 말했다.

 

“제법 영리하군요. 그렇다면 나와 한번 붙어볼까요?”

 

라이즈가 몸을 날려 오공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