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은 비로소 내셔가 자신을 절대 보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자신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것과 해독 포션의 냄새 때문에 화가 잔뜩 나있는 모양이었다.


‘빈틈을 찾자!’


 그것이 오공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공은 계속 해서 뒤로 물러섰고, 그때마다 내셔는 그만큼 접근해왔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해는 저물어가기 시작했고 주위는 캄캄해졌다.


 ‘큰일이다! 해독 포션의 양이 줄어들고 있어!’


 쉬지 않고 자욱한 연기를 뿜어대던 해독 포션은 어느새 절반의 양만 남아있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몇 분 지나지 않아 말라버릴 것이 분명했다.


 내셔의 입이 쩍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독포션의 냄새가 약해짐에 따라 내셔는 오공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져 갔다.


 뒷걸음질 치던 오공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더 이상 물러서봤자 소용이 없을 듯싶구나!.’


 이제 조금만 지나면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일 것이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불리한 것은 오공이었다. 내셔는 캄캄한 밤이 되어도 오공의 움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면대결 밖에는...!’


 스윽.


 오공이 비장한 각오로 쇠봉을 꺼내들었다.


 내셔는 오공의 공격 자세를 보더니 포효했다.


 오공은 쏜살같이 내셔를 향해 몸을 날려 우주류 봉술을 시전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시전한 공격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내셔는 오공의 공격을 피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은 실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오공의 허점을 찾아낸 내셔는 꼬리를 휘두르며 오공의 옆구리를 공격해왔다.


 ‘헉!’


 오공은 봉으로 막을 틈이 없음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눕혔다. 내셔의 거대한 꼬리가 아슬아슬 그의 옷자락을 스치며 지나쳤다.


 찌익!


 오공의 상의가 삽시간에 찢겨져 나갔다.


 ‘살짝만 스쳤는데도 이 정도라니!’


 만약 옷 속에 걸친 도란의 갑옷이 아니었다면 이미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났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내셔의 기세는 더욱 흉폭 해졌다.
 

 캬오오!


 화가 난 내셔가 포효하며 주변의 나무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충격으로 땅이 움푹 패여 버렸고, 낙엽과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아올랐다. 그 때문에 오공은 시야가 가려져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큰일이다!’


 오공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우주류 봉술의 기술 중 하나인 ‘회전격’을 시전하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쇠봉을 아래쪽으로 힘차게 내리쳤다.


 퍼퍽!


 내셔의 꼬리부분과 쇠봉이 큰 소리를 내며 충돌했다. 충격으로 오공은 하마터면 봉을 놓칠 뻔했다. 그와 함께 오공의 몸이 뒤로 튕겨서 날아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캬오오!


 그때를 놓치지 않은 내셔는 자신의 입에서 독을 뿜어냈다.


 오공은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셔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을 요리조리 피한다음 다시 온 힘을 다해 봉을 휘둘렀다.


 퍼벅!


 그가 휘두른 봉이 내셔의 몸과 강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오공은 또 다시 뒤로 튕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윽!”


 오공은 입에서 한모금의 핏물을 토해냈다. 두 번째 충돌에서 큰 충격을 입은 것이다. 무서운 절망감속에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는 듯 했다. 어떤 공격에도 꿈쩍도 않는 내셔였다.


 ‘제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약점은 있을 것이다.’


 오공은 힘겹게 일어서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아니?’


 내셔의 모습이 오공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간 오공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내셔는 어느새 공중으로 튀어 올라 내려오며 오공의 몸을 잽싸게 휘감아 버린 것이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셔에게 휘감긴 오공의 몸에서 뼈들이 이탈되기 시작했다. 내셔는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캬오오!


 오공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갔다. 그 와중에 그는 내셔의 목 아래에 있는 붉은 점을 발견했다. 그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그곳으로 쇠봉을 내뻗었다.


 푸욱!


 쇠봉이 내셔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드디어 오공은 내셔의 약점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힘이 빠진 나머지 깊이 찌르지 못하고 그만 봉을 놓쳐버렸다.


 크아아!


 내셔가 고통스러워하며 머리 부분이 심하게 요동쳤다.


 검붉은 피가 봉에 찔린 부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셔는 오공을 통째로 삼켜버릴 심산인 듯 입을 크게 벌리며 덤벼들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오공은 사력을 다해 내셔의 머리 부분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손에 장갑을 장착했음에도 내셔의 몸에서는 불에 덴 듯 뜨거운 독기가 느껴졌다. 순간 내셔는 독을 오공의 얼굴에 뿜어냈다.


 쉬이익!


 오공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독을 피했지만 소량의 독이 목구멍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고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끝...끝장이구나...’


 이를 악문 오공은 내셔의 목 부분을 끌어안았다. 오공의 얼굴은 내셔의 피로 범벅이 되었다.


 ‘이왕 죽은 목숨 네놈과 같이 죽겠다!’


 오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내셔의 목에 난 상처부위를 사정없이 이빨로 물어뜯었다. 오공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이었다. 고통을 느낀 내셔의 몸이 무섭게 요동쳤다.


 오공의 목 안으로는 내셔의 피가 꿀꺽 넘어가고 있었다.


 내셔가 아무리 요동쳐도 오공이 떨어지지 않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작으로 불리는 내셔로서는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급소를 공격당하는 상황에서도 몸을 풀지 않고 오공의 몸을 계속 압박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크아아!


 목에 상처 부위가 점점 크게 벌어지며 내셔의 피는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중의 상당한 양이 오공의 목을 타고 뱃속으로 삼켜졌다.


 시간이 지나자 내셔는 몇 차례 몸부림치더니 이내, 축 늘어져버렸다.


 “해...해냈다!”


 오공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내셔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오공은 몸속의 내장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했다.


 “끄아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오공은 비명을 토해내며 자신의 가슴과 배를 쥐어뜯었다. 만약 도란의 갑옷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자신의 손에 의해 찢겨져 버렸을 것이다.


 “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몸 전체에 경련이 오더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온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털은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순식간에 오공은 원래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


 오공은 벌떡 일어나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우당탕!


 콰지직!


 질주하는 오공의 몸에 부딪치는 건 나무, 바위 할 것 없이 모두 박살이 나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은 밀림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 * *



 밀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도란의 말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독벌레와 곳곳에 위치한 늪지대의 함정들은 두 사람에게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했다. 마스터 이는 미세한 흔적만 보고도 오공이 지나간 자리임을 알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다가 주위의 풍경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도란이 뭔가를 발견했다.


 “아...아니 저것은...!”


 도란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내셔의 시체였다.


 이를 본 마스터 이도 깜짝 놀랐다.


 “뱀이로군.”

 “자네는 이것이 단순한 뱀이라고 생각하는가?”


 도란의 충격과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얼어붙은 자세로 자리에서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마... 내셔?”
 “그렇다네! 몸길이를 보니 10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군! 그런데 누가 내셔를 이렇게 만들어놨을까?”


 도란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이사부, 일단 이걸 마시게. 주위에 독기가 한 가득이야.”


 도란이 품속에서 해독 포션을 두병 꺼낸 후 한 병을 마스터 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셔의 시체에 접근했다.


 한순간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도란이 발견한 것은 신발 한 짝이었다.


 매우 낯이 익은 신발이었다. 그렇다. 이 신발의 주인은 다름 아닌 오공이었다.


 마스터 이가 가까이 접근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공의 신발이다. 내셔를 만났군.”

 “.....!”


 충격을 받은 도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오공이 내셔와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공이가 아무래도 당한 것 같네...”
 “하지만 오공의 시체는 이곳에 없다.”
 “이사부는 설마하니 오공이가 내셔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흠...”


 마스터 이는 칼끝으로 내셔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이 근처에 오공이의 시신이 있을 것일세. 내셔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존재 일지도...”
 “잠깐!”


 마스터 이는 내셔의 목 근처에 난 상처를 발견했다.


 그것을 본 도란의 표정은 복잡한 변화를 일으켰다. 눈썰미가 좋은 그였다.


 그는 이 상처가 이빨에 물린 자국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그렇다면?”
 “그렇다.”


 대화가 끝난 두 사람은 이내 주위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도란은 빈병하나를 발견했고, 마스터 이는 주변에 어지럽게 새겨진 발자국을 찾아냈다.


 두 사람은 왠지 모를 희망이 생겨났다.


 도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살아있네! 내셔는 오공이에게 피를 빨려 죽은 것이야.”
 “크하하핫! 역시 녀석은 보통의 원숭이가 아니었군! 이빨로 내셔를 쓰러트리다니 말이야!”


 마스터 이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도란의 안색은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맹독열매를 섭취한 내셔의 피라면... 그리고 그 피를 오공이가 조금이라도 마셨다면...”
 “무슨 문제라도?”
 

 도란은 직접 본 것처럼 모든 상황을 추리해내고 있었다.
 

 “독기가 가득한 내셔의 피를 마셨다면, 감당할 수 없는 열기로 온 몸이 타들어갔을 것일세. 그런 상황이라면 어떠한 해독제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네.”
 “빌어먹을!”


 마스터 이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도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다시 가라앉을 것일세. 만약 오공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잠깐의 의식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일세.”


 도란의 말이 채 끝나자마자 마스터 이는 그의 팔을 붙들고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이보게, 이사부! 오공이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이동하는 것인가?”
 “이미 알아냈어!”


 휘릭!


 마스터 이의 경공술은 무서운 속도로 시전되었다. 그런 그에게 도란은 매달린 채 새가 되어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오공아. 제발 살아만 있어라. 네가 죽는다면 아이오니아의 미래는...’


 도란은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휘이잉.....


 밤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늪지의 갈대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늪지의 한곳에 오공은 죽은 듯 누워있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그의 몸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온 몸의 털은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밤하늘의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쌀쌀함을 느낀 것일까? 오공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살아있는 건가?”


 오공은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느끼며 상체를 일으켰다. 고통은 머리뿐만 아니라 온 전신이 두드려 맞은 듯 욱신거렸다.


 오공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석상이다!”


 오공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진흙탕에 빠져있는 황금 석상이었다. 이어서 수백 개의 석상의 모습들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이 놀라운 광경에 오공은 넋을 잃었다.


 “설마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오공은 그동안의 기억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도란의 집에서 장비를 챙겨 밀림을 헤쳐 왔던 일, 내셔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내셔의 피를 빨아 마셨던 일...


 ‘이후의 일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가 않는구나.’


 오공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속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는데 멀쩡히 살아있는 것과, 어떻게 황금석상이 있는 곳으로 올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갑옷에 박혀있는 가죽이 엉망으로 찢겨나간 것을 빼고는 큰 이상이 없어보였다. 온 몸의 털이 새까맣게 변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가 않았다.


 “어찌되었든 황금석상을 찾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