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은 아래 '해열' 님께서 올리신 'SKT T1은 가장 스토리텔링이 잘된 팀이다' 라는 글을 보고 충동적으로 쓰고싶어져 올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해열' 님께서 원하신다면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해열님의 글을 보고 문득 T1 K의 각각의 구성원들의 과거 이야기를 좀 정리해서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일단 SKT T1의 시작은 '꼬마' 김정균이었습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팀에 걸맞는 최고의 꼬치라는 찬사를 받는 입장이지만 김정균 코치의 그 이전의 프로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카오스시절부터 유명한 플레이어였던 'Kkoma' 김정균은 롤챔스 첫 시즌. 2012년 스프링 시즌 당시 단 3개였던 프로팀 중 하나 '스타테일'의 주장이었습니다.

단 3개의 프로팀 중 하나였지만, 같은 프로인 '나진', '제닉스 스톰'에 비해 주목도도 적었고, 오히려 아마추어인 MiG, Team OP에 비해서도 인기가 없었던 팀이죠. 이유는 사실 하나, 실력이었습니다.

이전에 참가했던 대회에서도 그저 그런 성적, 리븐 정글이라는 희귀하지만 별로 좋은 카드는 아니었던 꼬마의 정글링은 그의 인기나 스타성에 비해 모자랐고, 스타테일은 아마추어가 더 많았던 롤챔스 첫 시즌에서 16강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 후 그는 전용준 캐스터께서 말씀하셨듯 'LoL 프로선수중 첫 방출' 이라는 웃지못할 꼬리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방송을 하며 농사를 짓는다느니 하는 드립을 치던 그 청년은 신생팀 SKT T1의 코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SKT T1의 시작이 꼬마였다면, 첫 단추는 ESG, 아니 '래퍼드' 복한규였습니다.

Eat Sleep Gaming, 통칭 먹잠겜이라는 이름의 아마추어 팀으로 IEM7 Koln 한국대표 선발전에 참가했던 ESG는 프로팀들을 제치고 한국 대표로 선발되고, SKT T1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게 됩니다. 그리고 창단 3일만에 IEM 쾰른 우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올립니다. 

그 후 SKT T1 2팀, 지금의 K팀이 창단합니다. 1팀이 '래퍼드' 복한규가 만든 팀이었다면 2팀은 '꼬마' 김정균이 만든 팀이었죠. 

우선 탑 솔로 '임팩트' 정언영

그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정글러였습니다. 하지만 제닉스 스톰의 창단과 함께 서포터로 전향하여 SBS 배지훈과 호흡을 맞추고, 국내 최고 바텀 듀오로 거듭났습니다. 당시 우승은 MiG 블레이즈였지만, 꽤 많은 사람들의 국내 최고 바텀조합으로 스브스/임팩트를 꼽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크지 않은 영광의 길조차도 너무 짧았습니다. 다음 시즌, 즉 12년 섬머시즌에 제닉스 스톰은 8강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고,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신생팀 나진 소드에 무너졌습니다. 이 때 다섯 팀원 중에서 홀로 분루를 삼키던 팀의 막내가 바로 임팩트였습니다. 
섬머 시즌 이후 임팩트는 제닉스 스톰의 2팀 템페스트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포지션을 정글로 전향해서 연습하다가 윈터 시즌 시작 직전에 탑 솔로로 다시 전향하죠. 그리고 윈터시즌 플래티넘 8강에서 그때는 모두 탈퇴해서 Team OP로 이름을 바꾼 '전' 제닉스 스톰을 누르며 자신들이 진짜 제닉스 스톰임을 알리지만, 다이아 8강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당시 제닉스 스톰의 에이스는 단연 '임팩트'였습니다. 코코는 기대주, 데이드림은 기복이 큰데 안좋은 모습이 더 많았던 제닉스 스톰에서 돋보이는 모습의 탑 솔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닉스 스톰은 '프로팀' 이라는 이미지마저도 희박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임팩트가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여도 NLB팀일 뿐이었죠. 이후 클럽마스터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샤이와 막눈이 지배하던 당시에 이름있는 탑 솔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꼬마는 임팩트를 T1 2팀의 탑 솔로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임팩트, '임팩트가 화면에 나오지 않으면 이기고 있는 것이다' 라는 전용준 캐스터님의 말처럼 묵묵히 팀의 방패 역할을 하던 임팩트는 여전히 '샤이' '플레임'에는 못미치는, 팀에 묻어가는 탑 솔로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그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 탑 솔로가 되었습니다.


정글 '벵기' 배성웅

아마추어시절 아마 정글 최고수를 가리는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이름 '장병기마스터'. 하지만 그 또한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정글러에서 장병기마스터의 최고 라이벌을 꼽자면 'Rokiroki'였습니다. 당시엔 치미니였나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습니다만, SKT의 정글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기도 했었죠.

로키로키 이야기를 좀 하자면 NLB 첫 시즌 준우승팀인 '광' 팀의 정글러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광팀의 정글러는 아니었습니다. 광팀은 사실 8강도 간당간당하다는 평을 받는 전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로키로키가 들어온 후 말 그대로 '정글 캐리'로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습니다. 우승을 못했지 않냐 라는 평은 옳지 않을겁니다. 왜냐하면 당시 결승 상대팀은 거품게임단이었고, 그 정글러는 여러분 모두 잘 아시는 '인섹' 이었으니까요. 어쨌거나 로키로키는 그 이후에도 Psw Ares, Absolute, Beggars 등의 팀으로 계속 NLB 본선에 진출했습니다.(사실 이후 성적은 썩 훌륭했다고 보긴 힘들긴 했죠.)
하지만 장병기마스터는 NLB 윈터시즌에 딱 한번, BBT팀으로 참가한 것이 공식대회 경력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나겜 루키즈에 썸데짱짱 이라는 팀으로 참가하긴 했었죠. 음.. 그러고보니 어쩌면 지금의 SKT T1 K팀의 전신은 이 '썸데짱짱'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썸데짱짱의 멤버는 현 KTA의 썸데이, 현 T1 K의 벵기, 페이커, 피글렛이었으니까요. 서폿이 누구더라....
실제로 T1 창단 당시에 정글러는 로키로키로 결정되었다라는 찌라시가 돌기도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롤판에서 찌라시의 적중률은 상당합니다. 
하지만 T1의 정글러로 낙점된건 장병기마스터, 즉 지금의 'Bengi' 배성웅이었습니다. 그도 한동안 팀에 묻어가는 정글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반박못할 '세체정' 입니다.


미드 '페이커' 이상혁

페이커만은 처음부터 화려했습니다. '고전파' 라는 닉네임으로 장기간 솔로랭크 1위를 차지했었고, 프로데뷔를 기대하던 팬들도 많았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고전파'에 견줄 사람을 꼽자면 '수노' 안순호였습니다만, 둘 다 SKT에 입단했기 때문에 경쟁자였다 라고 보기에는 약간 애매하긴 하죠.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시 1팀에 고전파가 들어가고, 2팀에 수노가 들어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는 합니다.

여하튼 페이커는 '처음부터 빛나는 선수' 였습니다. 창단 당시에도 페이커 원맨팀 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입니다.


원딜 '피글렛' 채광진

'광진이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아마추어시절. 그와 함께 아마추어에서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던 원딜러는 '준식짱123' , '코어장전', '캬하하', '광진이야' 였습니다. 아마추어시절 아프리카 방송을 하며 지내던 그는 여러 프로게임단에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번번히 떨어지고 말았죠. 그 후 지금도 유명하게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있죠.

'날 뽑지 않은 프로팀들 다 후회하게 해주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한 그는 SKT의 원딜러로 낙점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던 수식어, 'SKT의 약점', '약한 바텀'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섬머시즌에 국내 최고 원딜이라던 임프를 꺾고, 스코어를 꺾고, 롤드컵에 나가서 세계 최고 원딜이라는 우지를 꺾었음에도 그에게 No.1이라는 평가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그는 다시 시작합니다. 조별 예선에서 아마추어시절 라이벌이던 캬하하와 뱅을 꺾고, 최고의 신예 원딜이던 엠퍼러를 꺾고, 최고급 원딜의 싹이 보인다던 데프트도 꺾고, 최고조의 폼이라던 스코어를 꺾고, 그리고 다시금 임프를 꺾어냅니다. 
이제 드디어, 그에게 최고의 원딜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서포터 '푸만두' 이정현

카오스시절 말 그대로 '정점'으로 불리던 플레이어, 하지만 CCB 6차였나요. 그는 다중참가가 적발되어 CCB에서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워낙 인기가 많았고, 최고의 플레이어였던 그는 제명이 풀리고 CCB 10차에서 다시금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군대에 가게 됩니다.
군 전역 직후 예전 CCB 동료들과 함께 GSG라는 팀으로 윈터시즌에 도전합니다. 결과는 챔피언스 12강 탈락, 하지만 그는 NLB에서 '역대 최고의 뉴메타'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GSG를 탈퇴하죠. 
이유는 그의 성격이었습니다. 원래 카오스 시절에도 한 게임에 집중을 못하는 성격이던 그에게 군 전역 직후, 하고싶은게 한참 많은 시기에 누구보다도 한 가지에 집중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프로게이머는 어쩌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성격도 그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막지 못했나 봅니다. 그는 꼬마의 권유로 SKT에 합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서포터 답지 않은 서포터'. '솔랭에서는 미드만 한다더라'
모데카이저, 피들스틱 등의 대세 서폿과는 전혀 관계 없는 서포터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인기 요인이기도 했던 그 성향은 어떤 면에서는 마이너스였습니다. 최고의 팀과 경쟁을 하기에 그의 챔피언풀은 좁다기보단 얕았습니다.

그리고 13년 섬머시즌,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진짜 '서포터'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에게 예전과 같은 '약한 바텀의 SKT'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서포티이면 서포팅, 로밍이면 로밍, 맵 장악이면 맵 장악, 최고의 스킬샷을 쏘아대던 그 재능은 결국 날개를 달아 매라, 마파, 마타 등의 최고라 불리웠던 서포터들을 모두 제치고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음.. 원래 그러려고 하긴 했지만 쓰고보니 엄청난 스크뽕을 맞은 글이 되었네요. 뭐 상관없습니다. 최고라는 이름이 걸맞는 모습을 보여준 SKT T1 K에 바치는 제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죠 뭐.

혹자는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너무 강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쉬지않고 새롭고 강력한 챔피언을 골라내기도 합니다.

윈터 시즌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멋진 모습 부탁드립니다. SKT T1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