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tier).

롤 유저 분들이 랭크에 들어가는 순간, 그리고 배치를 끝마치는 순간부터 달고 다닐 꼬리표다.

언랭은 논외로 치고, 브론즈 ,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몬드, 마스터 그리고 챌린져.

이 티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당연히 실력이다.

승급과 강등에 있어서 실력 뿐만이 아닌 운이나 멘탈 등등이 중요하니, 실력도 운영과 메카닉으로 나뉘니 하지만

어차피 이미 많이 풀린 떡밥이고 이 주제와는 관련이 없다. 어차피 일단 실력이 가장 많이 반영되니 넘어가고,

 

그렇다면 이 실력 기준 등급제인 티어가 유저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티어는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한 증명표가 되어준다. 실버 4라면 대략 상위 58% 정도의 실력이겠구나,

플래티넘 2라면 대략 상위 4% 정도 실력이겠구나, 하고. 대리나 버스, 부캐 등등 변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아가는게 당연한 법칙이다.

 

그런데, 이런 실력에 대한 증명표를 달고 다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유저가 더욱 랭크 게임에 심취하도록 유도한다.

 

1. 높은 티어에 대한 선망

2. 저티어 무시에 대한 반발

 

인데, 사람이 뭐든 잘해보고 싶은 것이야 당연지사니 1번은 어떤 게임이든 비슷한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 2번이 사실 어떤 의미로는 롤이라는 게임의 인기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브론즈? 그거 중급 봇보다 못한 종족 아니냐?"

"브실골플은 심해지"

라는게 인벤을 포함한 많은 롤 유저들의 생각이다. 그야 뭐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당연히 많겠지만 인벤 댓글들만 봐도 저 위의 말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일도 흔하디 흔하다.

 

그런데, 재밌는건 저 발언이다.

 

'브, 실, 골, 플은 노답이고 다이아 5티어도 존나 못하잖아?'

라는 말이 사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개소린지는 통계를 보면 안다.

 

누계 비중: 챌린져 상위 0.0084%

               마스터 상위 0.04%

               다이아 4 상위 0.63%

               다이아 5 상위 2.38%

               플래티넘 5 상위 11.7%

               골드 5 상위 31%

               실버 5 상위 70%

               브론즈 5 상위 100% 

 

?

브, 실, 골, 플, 다5가 심해라면 다4부터는 사람이고 마챌 정도가 천상계인건가? 롤은 0.63%를 위한 게임이었던 건가?

물론 이 말이야 그냥 비유일 뿐이고, 실제로 전부가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도, 동영상 게시판의 댓글을 보면 실버나 골드의 유저가 가끔 자신의 기준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영상을 올릴 경우 브실골 주제에 뭔 영상씩이나 올리냐고 하고, 플래티넘 정도는 되도 무시하는 일도 흔하다.

굉장히 재밌는 발언들이다. 허구한 날 세계정부 갓벤의 MMR은 3000++라는 드립을 치곤 하지만 진지하게 보면 롤 유저들의 티어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박하다. 이 시점에서 그님티를 시전하실 갓벤러들을 위해 먼저 밝히자면 필자는 티어가 실 3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실 4랑 실 2사이에서 논다. 그렇다, 브실골이다.

그런데 필자가 게임을 하다보면 꼭, 어느 유저가 입을 턴다.

 

"역시 실버 심해새1끼들은 클라스가 다르네 ㅋㅋ"

라고 하지만, 실버에 위치하는 롤 유저들은 전체의 무려 37%라는 비중을 차지한다. 브론즈가 밑에 있음을 생각하면 사실 딱 평균쯤 되고, 롤 내에서도 가장 흔한 티어다. 그런데 왜 브실골은 항상 심해 소리를 들어야 할까?

 

글쎄, 사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브론즈 언저리를 장난삼아 햇빛도 비치지 않는 무저갱이라고 심해라고 부르곤 했었지만, 롤 유저들의 실력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티어 안에서도 1~5등급제로 나뉘면서 아무래도 '손꾸락만 있으면 플래티넘은 가지 않냐' 등의 인식이 박힌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미 하위 티어 유저들은 스스로가 심해가 맞다고 인정한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딱 들어맞는 이유를 찾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확실한 건, 이 티어가 위에서 말했던 대로 유저들을 후려치는 채찍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게임을 하다보면 똥을 싸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때마다 들리는 멸시에 어느 사람이건

'씨1발 그래 내가 티어 올려서 이 수모 되갚는다' 같은 생각을 한 두번 정도는 해봤음직도 하다. 스스로의 티어가 브론즈나 실버라고 치고, 하도 심해 소리를 듣다 보면 게임을 즐기고 높은 곳을 오르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승급전이나 승격전만 되면 더욱 더 사람들이 필사적이 되는 것을 모두들 봐왔을 테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랭크 게임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빡세게 한다.

 

그런데 당연한 이치지만, 사람이 노력으로 뭔가를 해내는 것엔 한계가 있다.

노력만 하면 뭐든 될 수 있다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개소리를 당연한 법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못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게임이 됐건 공부가 됐건 예체능이 됐건 뭐가 되었건 간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한계에 직면한다. 필자같은 경우 골드 3까지는 올라가봤었지만, 그게 한계였다. 손가락도 잘 안 움직이고 운영도 잘 못하겠는 판이 대부분이었다.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반응속도나 시야의 넓이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시즌 5니 6이니를 말하게 된 지금까지도 브론즈나 실버, 골드 하위 티어에 있다면 그 친구는 미안하지만 그냥 롤 상위 티어랑은 인연이 없는 거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사람이 뭔가를 못하고 잘하고는 그 사람의 탓이 아니니까.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유저들에게 들어먹은 무시와 경멸을 잊지 못하고 더욱 올라가려고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올라가고 싶은게 나쁘단 건 당연히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류의 동기 부여는 대부분 악순환을 낫게 된다.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 > 빡겜한다 - >  올라간다 - > 하위티어 무시(나도 올라왔는데) - > 무한반복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 > 빡겜한다 - > 못 올라간다 - > 팀탓 or 대리 or 빡겜 무한 반복 - > 무한반복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이 없다(혹은 사그라들었다) - > 즐겜한다 - > 트롤 or 대충하는 플레이 or 랭을 안 돌린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적당히 플레이하면서 화목하게 겜한다(극소수) - > 위의 똥 뒤집어씀, 멘탈에 테러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채찍질은 분명 확실하고 깔끔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티어제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주마가편이라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해봐야 말만 지치고 결과는 참혹해진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계정의 랭크 게임을 등한시하고 노말만 돌리거나, 랭크를 돌려도 수많은 스트레스를 마주하게 된다.

지금의 롤 문화가 욕설에 패드립에 비꼼 천지인 것에는 라이엇이 자정 작용만 믿고 방치한 것이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이런 식의 비방에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승부욕과 자존심을 지나치게 건드리는 시스템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댓글들이 이 의견에 반대할 것이다. 티어제가 롤에만 있느냐, 욕은 욕한 사람 잘못 아니냐, 라이엇 때문이다 등등.

그런데 재밌는건, 티어제를 가진 게임 중에 이 정도로 흥한 '팀 게임'이 롤 외에는 전무하다는 점이다(도타나 카오스 같은 게임은 일단 논외로 치자. 적어도 롤 정도로 국민 게임의 반열에 들어선 대중적 게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외의 게임은 RPG 처럼 혼자 놀거나, 팀 게임이면 협동을 중시하지 경쟁을 더 중시하진 않는다. 스스로가 겜덕이 아니라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롤과 비슷한 류의 게임이 흥하기까지 했으면 최소한의 인지도가 있었겠지?

 

그런데 롤은 아이러니하게도 '협동 게임'이면서도 '개개 유저간 무한 경쟁'을 유발한다.

그러면서도 타 게임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고 '비교적'  캐쥬얼 해서 유입 인구가 많다.

지금의 롤을 만든 원동력에는 캐릭터성이나 그 외 요인도 컸겠지만, 위의 두 줄이 가장 큰 요소이자 또한 지금의 진흙뻘밭에서 구르는 듯한 게임판을 만든 원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장점도 아직 살아있으니 이 게임의 인기가 유지되고 수많은 유저들이 솔랭 승리의 쾌감을 위해 달리는 것이겠지만, 티어가 가져다주는 부담감 또한 어느 유저들에게는 막대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 똥글의 결론은 하나다.

어느 티어가 다른 티어 무시하지마라. 티어 간에 무슨 계급장이라도 달린 것마냥 쓸데없는 부심 부리지 말자.

이 게임에서 티어제가 순기능을 최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싶으면, 상위 티어에 대한 선망은 남겨두더라도 하위 티어(사실 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브실골보고 하위 티어라고 까는 것도 아이러니하긴 하다)에 대한 무시와 멸시는 작작 좀 하자는 것이다. 이따금 우리팀이나 적팀에 대리가 있다면 우리는 '오더랑 캐리 다 할테니깐 닥치고 말이나 들어'같은 소리를 듣게 되면 빡이 돌 수 밖에 없다. 캐리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실력이랑 티어로 완장질이나 해대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걸 굳이 참아가면서 노비짓이나 하는 것도 좋게 보이진 않는다.

 

게임은 게임이다. 즐기면서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게임 문화 아닐까싶다.

 

 

 

안 읽을 사람들을 위한 세 줄 요약

 

1. 티어는 현재 사람들 간의 경쟁의 원동력으로, 게임에 활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과열된 경쟁을 유발한다.

2. 티어 가지고 타인을 무시하거나 부심부리지 말자. 더 높은 티어라고 해서 섬길 필요도 없지 않나.

3. 그리고 인간적으로 다들 클린롤 문화좀 만들어보자. 욕설, 분탕, 트롤, 탈주, 부심, 대리 전부 자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