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까지, 과학은 서양만이 지니고 있던 특별한 것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서양만의 산물이었고
타 문명에게서 서양 문명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때까지, 과학사라는 것은 곧 서양의 역사였고 모든 과학사학자들은
서양이 아닌 어떤 문명에게도 제대로 된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과학사학자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은 사람이 바로 조지프 니덤이다.
영국의 생화학자였던 니덤은 중국인 과학자와 함께 일하면서 고대 중국의 과학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평생 중국 과학 연구에 매진한 결과, 그는 통념을 깨고 중국에도 분명히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서양 과학사에만 연구하던 과학사학자들이 이슬람, 인도, 중국 등 타 문명의 과학사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다.

니덤 이후 중국의 과학사를 연구하던 학자 사이에선, 가장 해결하고 싶던, 도전하고 싶던 문제가 있었다.
바로 조지프 니덤이 던진, 소위 Why not Question이었다.
'왜 중국은 17세기 이전까지 자연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수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고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지프 니덤의 동료이자, 당대의 과학사학자인 네이선 씨빈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이 질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니덤의 질문은 Heuristic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Heursitc이란 제대로 된 법칙이나 공식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체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었다.
시빈이 이 단어를 통해 주장하고 싶던 것은, 니덤의 질문이 중국 과학사에 대해 흥미를 던지고 탐구할 동기를 제공해주는 역할 정도에 불과하지 진정 각 문명의 과학에 대한 심도 있는 학술적인 의미를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시빈이 제기한 과학사 연구의 방향은 맥락이었다.
어떤 요인이 중국에 과학을 바꾸어놓았나? 무엇이 부족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나? 라는 질문 대신에
중국의 과학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 지적 맥락에서 기원했으며, 그것이 그 문명 속에서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포츠 계는 물론이고 모든 스포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누가 가장 강한가?"
펠레-마라도나와 메시-호날두를 비교하며 메시나 호날두의 위치를 고민하기도 하고
슬램덩크에서 누가, 어느 팀이, 어느 조합이 강한지를 끊임없이 강구하며
스타크래프트의 본좌론이 그랬고, 택뱅리쌍 이후에도 끊임없이 누가 최강자인지 묻곤 했다.

이스포츠의 바통을 이어받은 롤판에서도 이러한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떤 팀이 가장 강한가? 세체미는 누구인가? 올스타 조합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은 스포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끊임없는 긴장감과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최강자 질문에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롤드컵이고, 이번에 개막할 MSI이다.
각 지역의 최강자는 정해지니, 그럼 어느 지역 최강팀이 가장 강한지, 어느 지역이 가장 강한지를 가려내자.
너무나 구미가 당기는 대회이고, 모든 팬들의 흥미를 집중시킬 그런 스토리인 것이다.

그러나, 13SKK와 14SSW의 비교로 대표되는, 역대 최강팀간의, 혹은 현재 팀과 과거 팀 간의 단순한 우열비교는 접어두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러한 "누가 가장 강한가"의 질문은 여전히 팬들의 흥미를 끌고, 이목을 사로잡으며, 재밌고 신나는 비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흥미와 재밌는 상상 이상의 의의는 가지지 못한다.

최강팀 논쟁에서, 각 팀이 있었던 위치와 상황도 다를 뿐더러 팀의 특생, 구성, 대회 상황, 대진이나 동기 부여, 내적 갈등, 코칭진, 계약, 라이벌.. 최강팀이 그 순간 최고의 팀을 차지한 순간에, 그 팀이 지니고 있던 특징은 그 팀만의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특징을 단순히 팀의 전력과, 밖으로 표현된 경기력을 가지고 1:1 비교하면서 우열을 따지는 것은,지나친 단순화, 수치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스포츠는 각 팀들이 수치화되고 정교한 프로그래밍을 통해 오차가 없는 게임이 아닌, 실제 사람이 경기하고 사람이 하는 활동이며 모든 활동은 그 순간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단순 흥미를 위한 비교가 아니라, 정말 심도 있는 분석을 원하한다면, 발전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질문은 '누가 가장 강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 팀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나?'인 것이다.
각 팀이 어떠한 상황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지 살펴야 하며, 그 팀이 보여준 퍼포먼스를 그 팀 고유의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팀이 지닌 특징을 파악하며 어떤 점이 강점이었고 약점이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것이 더 생산적인 논의이자, 추후 최강자가 될 여러 팀들이 참고해야 할 점이 될 것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 '누가 가장 강한가?' 라는 질문은 얼마든지 해도 좋고,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다.
호랑이랑 사자랑 싸우면? 이라는질문부터 출발해서, 가장 강한자를 가리는 질문은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질문이 흥미 이상의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