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부터 롤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룰루 패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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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포터란 포지션은 타 게임에서도 힐러를 좋아하던 나에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롤을 점점 알아갈수록 힐러 포지션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 서포터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에서, 서포터는 문자 그대로의 노비였다. 스스로를 위한 아이템은 거의 갖출 수 없었으며 홀로 시야확보를 위해 돌아다닐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성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내가 잘 했냐 못 했냐와의 여부와는 대부분 상관없이, 팀의 운명에 휩쓸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투가 끝나면 서포터의 헌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헌신했다 해도,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그럼에도 서포터는 재미있었을까? 물론 '시야 싸움'이라는 전략적 싸움의 주체가 된다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마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하지만 꼭 필요한)을 떠맡은 후 뒤에서는 '내가 저런 일을 맡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면서 안도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소리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끝나고 나서의 딜 그래프에 관심이 있다. 전광판에는 올라오지 않는 무수히 많은 와드 숫자들은 서포터만 기억할 뿐.

 

 그리고 프리시즌이 예고되었다.'서포터들의 골드 수급이 나아질 거래!' 더 나아가 '서포터도 캐리가 가능할 거래!' 그리고 많은 전문 서포터 챔피언들의 변화까지 예고되자, 프리시즌이 기대되어 버틸 수가 없었다. 사실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라이엇이 내내 농노상태로 지내던 서포터에게 드디어 한 줄기 빛을 내려주나 싶었다.

 

 그리고 현실로 다가온 프리시즌에, 성장성이 부여된 서포터들 머리 위에, 시즌3 말기부터 서포터의 패왕으로 군림하던 애니가 있다.

 

"너도 같이 놀래? 재밌겠다."

 

 제드와 같은 개사기 챔피언이 미드에서 날뛰자, 선수들이 애니와 같은 챔피언이 미드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애니는 봇에서 서포터로 활약하게 된다. 뒤늦게 서포터로써 재발견된 챔피언이지만 봇라인에서의 애니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애니는 최상급 평타거리와 끔찍한 버스트딜에 더해 조건부 스턴을 갖추고 있는 챔피언이다. 정작 애니는 보편적으로 '지원형'이라 불릴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전형적인 메이지 누커형 챔피언에 가까운데 허허벌판에서 싸우던 미드와는 달리 봇에는 부쉬가 있다. 고로 짧은 스킬들의 사거리가 어느 정도 커버가 된다. 시즌 3에서 핑크와드로 아군의 와드를 뽑아버리고 풀숲에서 도사리던 애니의 공포는 아마 당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지금도 엄청 무섭지만.) 애니 자체의 딜량도 무섭지만 봇라인 싸움은 기본적으로 2vs2다. 애니의 치명적인 CC기와 폭딜을 맞고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지원사격 해오는 상대 원딜의 딜까지 버텨낼만한 챔피언을 찾기는 힘들다. 이외에도 미처 열거하지 못한 장점을 소소하게 많이 가지고 있다.

 

  서술했듯이 애니는 서포터적인 측면이 거의 없으면서 파괴력만으로 봇을 지배하는 챔피언이다. 그런데 사실 라이엇은 자이라나, 애니와 같은 메이지 챔피언이 봇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에 긍정하는쪽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챔피언들이 '뭐가 문제야?'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다른 챔피언들이 픽될 가치조차 없이 좋은 픽'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 유명 전적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애니의 픽률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가?
반면 쓰레쉬 챔피언은 픽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애니가 픽률이 상승하는 구간에서부터 쓰레쉬의 픽률은 점점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쓰레쉬도 발매이후 OP소리를 들으며 대회에서 아직까지 자주 보이는 챔피언지만 롤챔스의 윈터시즌 애니의 밴픽률은 96%에 육박하는 반면 쓰레쉬는 42% 정도로 꽤나 많은 차이가 난다. 객관적인 자료가 증명하듯 지금 봇라인에서 가장 핫한 챔피언은 애니다.(루시안과 픽밴률이 정확히 일치한다)
 
 순진하게도, 이 시점에서까지 애니가 심판의 철퇴를 피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섣불리 애니를 건드렸다가는 미드 애니에게까지 피해가 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전례는 보통은 이랬다. 기본데미지 너프와 계수의 상향. 라이엇은 시즌 3까지 봇라인에 내려오는 전문 서포터가 아닌 챔피언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대응했는데 시즌4에서는 이런 방식이 먹힐지 의문이 든다. 어쨌거나 라이엇은 수많은 챔피언을 너프해 왔는데, 그렇다면 애니만 너프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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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까불면 때찌할거야!''
 문제는 프리시즌에서의 서포터는 옛날과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애니가 시즌3보다 더욱 무섭게 된것은 이제 애니도 '템'이 나온다! 순수하게 소모품 싸움에 치중하던 지난 날들과는 달리, 라이엇은 프리시즌에 서포터가 주문력에 투자할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주문력 돈템으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며 시야석과 장신구 업그레이드정도만 수행하면 서포터는 비교적 아이템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오펜스에 다수 투자하고 룬을 주문력 관련으로 설정한 애니는 주문도둑의검 스타팅을 했을 때 왠만한 미드챔프 부럽지 않은 초기주문력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빵빵한 초기 주문력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단순히 기본데미지를 너프하고 계수를 올리는 식의 패치가 전과 다르게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말해 붕괴와 소각, 티버는 시즌 3에서보다 훨씬 아파졌다.(오펜스에 적절히 투자했을 경우의 이야기다.) 그리고 봇라인의 흥망에 따라 더 아파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애니가 너프된다고 해도 다음엔 어떤 챔피언이 봇에서 깽판을 칠 지 모르게 되었다. 이런 사항은 봇으로 내려오는, 소위 봇 파괴(라고 주장하는) 챔피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애니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벌써부터 서포터의 돈냄새(?)를 맡은 챔피언들이 속속들이 봇으로 내려오고 있는 추세다. 제 2의 애니, 제 3의 애니... 눈만 뜨면 매일 봇에서 재발견되어 있을 이런 챔피언들, 피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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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떤 동물 좋아해? 곰돌이?"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는 것인가? 사실 라이엇에서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 '기존의 서포터 챔피언들이 버려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성장성을 부여하고 데미지가 아닌 유틸리티로 팀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보다 더한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서포터들은 단순히 데미지가 약해서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애니와 같은 챔피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지 못했지만 윈터시즌에서 애니와 쓰레쉬의 사이의 픽밴률을 가지는 서포터는 소나다. 소나는 그 자체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기에 픽률이 매우 꾸준한 축에 속한다. 이런 면에서 알 수 있듯 서포터에게 기대되는 가치는 오직 데미지는 아니라는 사실에서, 기존의 지원형 챔피언들에게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 
 
 프리시즌 패치 후 떠오른 서포터는 타릭이다. 픽률도 급상승했고 라이엇의 언급에 따르면 승률이 약 4%정도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유물방패가 사기아이템으로 판명나면서 타릭의 고공행진이 유지될 지는 조금 지켜봐야겠지만 너프 후 꽤나 오랜 기간 방치되었던 전문 서포터인 타릭의 부활이 세삼스럽게 반갑게 느껴진다. 문제는 타릭의 성장성이 다른 지원형 챔피언들에 비해 높아도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지만.  그리고 타릭을 제외한 다른 서포터들의 성장성은 보잘 것 없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잔나의 경우는 '망했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라이엇에서도 전문 서포터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흔한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서포터라는 포지션은 들러리에 불과했으니까. 애니 서포터가 흥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기존의 서포터들보다 재미있어서가 아닐까? 들러리로만 여겨졌던 서포터가 봇라인을 흔든다는 것은 일종의 혁명이니까. 사람들은 자이라에서 실마리를 찾고, 애니에서 해답을 얻었다.
 
 프리시즌인 지금은 과도기적인 단계다. 엄연히 말하면 아직 시즌 4라고는 볼 수 없다.  특성마저 한 포인트 한 포인트 공략글이 속출하고 있다. 룬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라이엇에서도 현재의 챔피언들의 1레벨 스탯이 열악하기에 특정 룬이 선호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예를 들면 마방룬이라던가) 서포터에게 좋은 방향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일까?  봇 라인에서 메이지들을 완전히 밀어낼 수 없다면, 최소한 공유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서 메이지들이 아닌 '전문형 서포터'들이 변화의 주체로 선택받았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일 것이다.  봇에 내려오는 다른 챔피언들을 막을 수 없다면, 서포터형 챔피언들 그 자체가 경쟁력을 가지면 된다. 앞으로의 패치로 적당한 경쟁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더 이상 서포터는 농노가 아니며, 와드 자판기도 아니다. 앞으로는 원딜의 듬직한 동료이며 승리의 주역이다. 가장 중요한건 더 재밌어졌다. 애니만큼이나!이제 상대편에서 '서포터가 제일 잘하네'라는 말을 들으며 뿌듯해 할 일이 조금 늘어날 것 같다.